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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mu Jun 14. 2017

023 나의 첫 요가팬츠

지금껏 내 생김에 자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난 키가 아주 작다. 대한민국 여성 평균 신장(162.3cm)에도 한참 못 미친다. 얼굴은 ‘떡판’이란 별명대로 넙죽대대하다. 다리는 짧고 허리는 길고, 엉덩이는 크다. 가슴은 작다. (뭘 이렇게 상세히…) 그러니 빈말이라도 (‘내 자신에게’ 빈말이라도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몸매가 좋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니 요가학원을 등록할 때도 가장 걱정된 건 ‘무엇을 입는가’ 였다. 쫄쫄이. 그걸 어떻게 입지?


언제나 그렇듯 맞는 옷부터 찾는 게 숙제였다. 상의든, 하의든 내가 구매한 모든 옷은 대개 기장이 길다. 이것은 나의 숙명인데 스포츠웨어를 사본 적이 없어서 더욱 막막했다. “타이즈도 줄여 입을 수 있나요?” 부끄러워 묻지 못했다. 나는 가슴도 없다. (젠장) 반드시 구매 전 입어봐야 하는데 때때로 시착을 거절당한다. 화장이 묻어나면 안 된다고 했나, 어쨌든 합당한 이유에선데 나는 왠지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내 전부를 거절당한 것처럼 무안하고 당혹스럽다. 옷가게에 갈 때마다 쪼그라드는 자신이 나는 정말 싫다. 


결국 첫 요가복은 학원에서 샀다. 선생님이 권해주신 요가팬츠가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선이 어지럽게 그려진 것이어서, 보는 것만으로 심란했다. 이런 바지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데, 그것을 쭈뼛쭈뼛 사버리는 자신에 더 놀랐다. 나는 되레 안심했던 것 같다. ‘이런 바지라면 안면몰수하기에 더없이 좋을 것 같아. 뻔뻔해지지 않고는 시작조차 할 수 없어’ 난 그렇게 자신을 벼랑에 밀어 넣었다. 


문을 밀어 탈의실을 빠져나왔던 순간을 톡톡히 기억한다.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동작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생히 기억한다. 태연한 척 했다.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을 엉덩이라인에 마음이 쓰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셨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기로 했다. 곧장 강의실로 들어가자. 매트를 바닥에 깔고 앉았다. 다소 어두운 조명이 구원이었다. 비로소 마음이 놓였고 그 누구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휴-. 


사실 그 후부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익숙해질 겨를도 없이 익숙해졌고, 문제의 요가팬츠는 더없이 편안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각자 말 안 듣는 제 몸뚱이와 사투를 벌이느라 낑낑거렸고, 그것이 대단히 평등한 분위기를 자아냈으므로 난 조금 웃음이 났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왜 그토록 몸매 가꾸기에 열을 올리는 걸까. 연예뉴스를 볼 때마다 명품몸매, 특급몸매, 끝판왕 몸매 같은 수식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여성의 몸이 볼거리로 간단히 소비되는 데 수치심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그러나 동시에 내 다리가 설현만큼 길지 않아서, 허리가 충분히 잘록하지 않아서 가슴의 골이란 게 보이지 않아서 절망했다. 좋은 몸과 나쁜 몸을 나누는 고정관념이 의식의 껌 딱지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그렇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


하지만 요가를 시작하면서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엔 절대 쓰지 않을 근육들을 늘리고 비틀고 잡아당기면서,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와 애착을 키워갔다. 동시에 타인의 몸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다.      


좋은 몸과 나쁜 몸의 구분도 모호해졌다. 어깨는 둥글고 예뻐서만 다가 아니다. 어깨관절이 유연해야 하고 뭉침이 적어야 하며,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선 안 된다. 어떤 몸이든 오랜 수련으로 완성된다. 요가를 통해 깨달은 것, ‘모든 건 과정 속에 있다.’     


그러니 (당연한 얘기지만) 내 몸을 부끄러워 할 필요도, 타인의 몸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누구나 요가팬츠를 입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결연함, 뻔뻔함, 비장함 없이도 자신의 몸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mynameisjessamyn)


제사민 스탠리는 26만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거느리고 있는 요가강사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엄청난 거구인데(100kg은 훌쩍 넘을 것 같다) 아주 정확하고 아름다운 아사나를 펼쳐 보인다. 그녀는 외친다. “EVERYBODY YOGA 두려움 없이 매트에 서라!” 사진 속 그녀의 몸은 정말 자유로워 보인다.


위 글은 '키친테이블라이팅' 문예계간지 <영향력> 05호에 실었던 에세이입니다.

키친테이블라이팅이란 전업작가가 아닌 사람이 일과를 마치고 부엌식탁에 앉아 써내려간 글을 말합니다.

오늘도 묵묵히 글을 써내려가는 모든 분들께 열려 있는 문예지로,

저에게도 처음 지면을 할애해준 너무나 감사한 곳입니다. 

어느덧 일곱번째 원고를 모집 중이네요. 많은 분들이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http://bit.ly/2rrrtw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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