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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oooz Aug 21. 2020

좁은집에도 어울리는 테이블 구입기

긴 조건을 가진 테이블 세트를 찾아서 

17평 아파트에 식탁은 사치일까?


좁은 거실 안에 길고 넓은 식탁이 들어오는 상상을 했었다. 잠깐의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했다. 가전을 모두 결정한 이후, 몇 안 되는 가구 결정이 가장 늦었던 이유도 좁은 공간 때문이었다. 처음 리모델링을 계획할 때처럼 내 집의 어떤 가구가 있어야 어울릴지 알 길이 없었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식탁을 놓겠다고 하니 남편까지 만류하던 때였다. 


최근에 유행하거나 알려진 가구들은 상판이 둥글고 희거나 아이보리 빛이었다. 다리는 우드 포인트라 어느 곳에나 잘 어울렸다. 인스타그램 속 잘 꾸며놓은 집 뒷 풍경으로 그런 류의 식탁이 자주 등장했다. 나도 그중 몇 개의 식탁을 골라뒀었는데 선뜻 결제를 못하고 뜻밖의 숙고의 시간을 보냈다. 


뭘 모르는 나도 남들 다 가진 그 예쁜 식탁이 우리 집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머리로 이미 알고 있었다. 오래된 집이라 천장이 낮았고 붙박이장을 거실로 뺀 우리 집에서 그만한 높이의 식탁이 들어올 순 없는 일이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리모델링이 끝나도 머리는 계속 아팠다. 비용 때문에 목공소에 직접 의뢰를 해서 테이블을 맞춰보자고 마음먹기도 쉽지 않았다. 


가구도 유행이 있어서 브랜드는 달라도 모두 비슷비슷한 디자인이었다. 사이즈도 거의 통일됐다. 스무 개가 넘는 테이블을 스크랩을 했지만 작은 디테일의 차이일 뿐 우리 집에 둘 수 있는 테이블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그즈음 읽고 있던 책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거실 테이블 세트에 관한 글이 실려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의 높이가 아주 편했다. 다른 곳에 앉았을 때는 한 번도 느끼지 못한 편안함이었다. 그 테이블은 보통의 식탁보다는 낮고, 티테이블보다는 높았다. 의자도 그에 맞게 낮고 편안했다. (중략) 그런데 그날 밤 자려고 누워 있는데 자꾸만 그 테이블과 의자가 생각났다. 디자인이 아니라 거기 앉았을 때의 편안함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었다."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中


글만 읽었는데 나는 이미 테이블 세트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묘사되어 있는 디자인이며, 높이가 우리 집에 완벽히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 날로 테이블 모델을 샅샅이 찾아내 매장으로 달려갔다. 어찌나 열성적이었는지 옆에서 지켜본 남편의 이야기로는 그 테이블과 의자에 반드시 앉아야 하는 사람 같았다고 한다. 


기어코 찾아 간 매장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그 테이블 세트에 앉았을 때 나는 그 책을 쓴 작가가 천재임을 믿게 되었다. 작가의 표현 중에 틀린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쿠션감이 좋아 편안하지만 몸이 불편하지 않았고, 의자와 테이블 간의 높이도 기가 막혔다. 그동안 비슷비슷한 디자인 속에서 이만한 높이의 테이블 세트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건 정말 기가 막힌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테이블을 구입하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나는 그날로 그 작가의 모든 책을 섭렵하게 된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격이 높았고, 요즘 같은 때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 브랜드였다. 남편의 만류로 몇 곳에서 몇 개의 다른 테이블을 더 둘러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높지 않아 천장이 낮은 거실 한복판에 있어도 답답하지 않고 우리 두 사람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여유 있게 둘러앉아 식사도 가능한 테이블'이어야 했다. 그리고 이 긴 조건을 가진 테이블은 세상에 딱 하나뿐이었다.   


남편과의 치열한 수 싸움 끝에 테이블을 들이고 비로소 우리는 바닥이 아닌 테이블에 얌전히 앉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지금 그 테이블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의 식사가 차려지기도 했다가, 손님이 오면 티테이블이 되기도 하고, 남편의 공부책상이 되었다가 때때로 내가 글을 쓰는 테이블도 되는, 집의 가장 중요한 가구가 되었다. 어렵게 구한 이 테이블 세트를 오래오래 가까이 지니고 살 수 있길 바란다.   


His comment

엄청 반대했던 가구 중에 하나인데 솔직히 진짜 끝까지 나는 마음에 안들었거든. 근데 진짜 탁월했다고 생각해, 진짜 우리 집에 이 테이블세트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진짜 너 하고 싶은 거 다해, 이제 반대는 없어.   


나의 테이블 세트는 야밤의 야식 테이블로도 쓰이고,
금요일 저녁엔 와인 테이블로도 쓰인다.

   

코로나가 기승인 요즘에는 재택근무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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