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모델, 사업 운영, 그리고 시장 혁신
1.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말엔 '모델'이라는 표현이 들어간다. 사업을 하나의 구조로 짤 수 있다는 뜻이고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내는 모델링의 궁극적인 모습은 손익계산서다. (정확히 하자면 Free Cash Flow다. 여기서는 논의를 쉽게 하기 위해 손익계산서로)
2. 사업을 한다는 뜻은 매출을 발생시킨다는 뜻이다. 판매량 또는 사용자 인당 판매량이 계산되고, 그 단가들이 반영되어 계산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원가와 비용을 빼면 손익이 계산되어 나온다. 비즈니스 모델은 이것들을 계산할 수 있게 하고, 뒤집어서는 손익을 계산하는 과정 자체가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도 있다.
3. '나는 남들과 다르게 사업을 할거야' 라는 마음을 먹고 사업 구조를 짠다고 생각해보자. 남들과 다르게 라는 뜻은 결국 소비자 1인당 판매량을 기존 업체보다 훨씬 높이던지, 단가를 훨씬 높이던지, or/and 1인당 투입되는 우리의 원가와 비용을 낮춘다는 것이다.
4. 고객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서비스를 얼마의 가격에 판매하고 그 판매를 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설계하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한다는 뜻은 1~3에서 설명한 미래의 손익계산서를 엑셀에다가 그려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5. 사업 운영, Operation은 이 미래의 손익계산서를 현실화하는 과정이다. 판매량을 1년간 1만개, 1천원씩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세웠을 경우 수백원 수준의 원가를 가진 제품 1만개를 1년의 기간 동안 적절히 설계, 생산, 물류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런 공급이 엄청나게 쉬울 수도 있고,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악전고투가 될 수도 있다. 실제 운영에 들어가면 사업이 비즈니스 모델처럼 굴러가지 않을 가능성은 계속 생긴다. 갑자기 외국 공장에 문제가 생겨 조달가가 올라갈 수도 있고, 항구가 파업해서 비행기로 들여오다보니 원가가 예상 판가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현지 QC를 비싸서 포기했더니 제품 문제가 너무 많아서 반품하다가 판매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시작했더니 개발자들이 막상 만들어보지 않았던 기능이 필요해 외부 인력을 쓰다보니 계속 개발비가 커져서 감당이 안될 수도 있고, 알파버전으로 소수 테스트를 해봤더니 UI/UX가 너무 후져서 이 때문에 출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변수들은 매출에서만 생기는게 아니다. 사용자나 구매자가 모이지 않을 수도 있고, 인건비가 갑자기 오를 수도 있고, 경쟁사가 마케팅 비용을 물쓰듯 하다보니 나도 무리해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야 할 수도 있다.
6. 이런 과정에서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비즈니스 모델이 초저가의 제품이었다면 초저가를 구현하지 못할 수도 있고, 고품질의 제품이었는데 QC 등에 비용을 쓰다보니 고품질은 나오지만 가격은 아예 초고가가 되어 가성비가 떨어지게 되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운영을 제대로 못해서 애초에 설계한 비즈니스 모델이 무너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나 온라인 서비스는 이런 일 안생긴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단적으로 배민은 2010년대 중반 판매 금액당 수수료를 받던 구조를 포기하게 된다. 그 당시 붙이던 수수료가 너무 높다고 소상공인들이 반발해서 주력 매출원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런 문제가 처음 제기되었을 때 문제점을 수정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정치권에서까지 문제가 되면서 급하게 사업 방향을 바꾸게 된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 설계 단계에서 정치권 개입을 고려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7. 시장 혁신이라는 것을 손익계산서로 설명하자면 매출, 원가, 비용의 항목들을 유사 업체들과 완전히 다른 구조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테슬라의 매출 항목에는 완전자율주행 같은 식의 소프트웨어 판매액이 포함된다. 기존의 자동차 업체들에게는 없던 매출 항목이다. 또 이 회사는 직접 광고에 돈을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단위 이상의 광고비를 집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자동차 업계와 완전히 다른 길을 간 것이다. 이 과정이 실패했다면 그저 미친 짓이었겠지만 이들은 매출에 소프트웨어를 추가하고 비용에서는 광고비를 절감함으로써 자신들의 높은 R&D 비용을 감당하면서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더불어 고객들에게 테슬라 제품에 대한 충성도를 오히려 높혀서 시장을 혁신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이들은 손익계산서 항목을 남들과 완전히 다른 구조로 만들어내겠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세웠고, 실제 운영에서도 이 모델을 실현함으로써 혁신자가 된 것이다.
8.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누구나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대부분은 실제 운영에 들어가서는 남들과 완전히 다른 구조가 아니라 그저 부족한 매출에 인건비나 운영비만 높은, 그저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 이게 비즈니스 모델의 설계 잘못이거나 혁신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운영이라는 것은 이상적인 모델이 현실이 되도록 하는 노력의 과정이다. 이 부분을 우습게 보면 아무리 계획이 좋아도 현실에서는 그저 런웨이에 쫓기는 그렇고 그런 기업이 된다.
9. 심지어는 비즈니스 모델이 남들과 똑같아도 실제 운영의 과정에서 매출액을 확대할 방안을 만들어내거나, 제품력이 더 좋아서 더 비싸게 받거나, 원가를 줄여내거나, 각종 비용을 낮추고, 수 년에 걸쳐서 이 구조를 안정화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시장을 혁신해내는 경우도 있다. 테라로사 커피 같은 곳이 세상에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떠올린 것이 아니지만 그들의 로컬 비즈니스의 씬 자체를 변경해내는데 성공한 업체가 되었다. 운영이 만능은 아니지만 비즈니스 모델만큼이나 운영도 중요한 것이고, 이는 손익계산서 각 항목을 남들과 다른 결과물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10. 사업의 초기 구상은 중요하다. 기왕이면 매력적인 시장에 확실한 고객 가치를 떠올린 모델이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디어보다 그걸 실현해내는 힘이 훨씬 더 중요하고, 이 과정을 버텨내면 혁신자가 되고 버텨내지 못하면 그냥 투자비를 낭비한 허황된 창업자가 된다.
11. 비즈니스 모델과 운영 능력, 그리고 시장 혁신자 사이의 관계가 헷갈린다면 경쟁사들의 손익계산서를 놓고 그들과 각 항목에서 어떻게 다를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막상 각 항목을 놓고 비교하면 남들이 생각보다 사업을 매우 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남들과 완전히 다르게 하겠다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의 구상이고, 이를 현실화시키는 것이 운영이며, 운영의 결과 고객들이 내게 몰려들게 되면 시장을 혁신한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