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ltiple business, Vertical integration & Corporate Strategy
1. 기업의 기본은 하나의 사업을 하는 것이다. 하나의 사업이라는 것에 대한 아주 명확한 정의는 있지 않지만, 제품 기획-생산-판매-매출 등 기업내의 동일한 밸류 체인에서 나오는 사업을 의미한다. 농심의 신라면과 육계장 사발면은 거의 같은 유통 과정이고 맛과 소비 방법은 조금 차이가 있지만 소비자들에게는 라면이라는 범주에 묶이기 때문에 하나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하나의 사업을 성장시키는 방법은 기본이 되는 제품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R&D, 생산, 물류, 마케팅, 영업 등에서 진행하는 노력들이다. 시장이 포화되어 있거나 경쟁사가 매우 강력하다면 기존 제품의 개선만으로는 매출이 충분치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신제품을 내놓게 된다. 다만 관련된 산업 전체의 수요가 크게 늘지 않는 상황이라면 기업은 아예 산업 자체가 다른 영역을 개척하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신성장 동력 전략이 태동하는 것.
3. 여기서 방법은 크게 3갈래로 나뉜다.
4. 우선은 기존 사업과 유사한 사업을 추가하는 것이다. 주로 시장이 존재하는 건 분명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서 우리가 기존 사업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경우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엔터사들이 멀티플 레이블 구조를 갖추거나, 영화사들인 여러 프로덕션을 갖추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은 도저히 하나의 제품이나 하나의 사업으로 독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국가간 장벽도 단순히 수출 정도로는 접근이나 경쟁력 유지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사업을 들고 해외로 진출하는 경우는 이 종류에 해당된다. (수평계열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5. 두번째는 밸류체인의 안정성이 매우 중요하고, 협력사 등과의 유기적 협력이 제품의 성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다. 장기간에 걸쳐 표준을 만들고, 그 표준에 맞춰 수많은 부품을 공급받아야 하는 자동차 등의 중후장대 사업들은 안정적인 밸류 체인 유지 필요성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수직계열화라는 전략을 택하게 된다.
6. 세번째는 여러 이종간의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다. 보통 Corporate Stragtegy 라는 표현을 쓰게 된다. 가령 디즈니의 경우 처음에는 단순한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이었지만, 좀 지나서 여기서 얻은 IP를 가지고 테마파크, 캐릭터 사업, 영화, 드라마 등등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자기들의 IP만으로는 부족할 경우 외부 프로덕션을 사들여서 잠시 멀티플 비즈니스를 했지만, 이들에게 디즈니만의 색채를 입히고 성장시켜왔다. 여기서 만약 디즈니가 디즈니의 색채를 입히지도 않고, 테마파크나 OTT, 각종 캐릭터 관련 사업에 활용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저 멀티플 비즈니스가 된다. 여러 사업체를 유기적으로 묶어서 멀티플과 수직계열화를 동시에 진행하되 매우 강력한 디즈니만의 철학과 특성을 반영하게 되면 이 전략이 Corporate Strategy가 된다. (우리말로는 사업다각화라는 말보다는 아마도 대기업전략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 시스템이야말로 총수 개인의 특성이 수많은 이종 사업 전체에 반영되는 구조이니)
7. 기존 사업의 성장 한계 또는 새로운 기회의 확보를 위해 시작하는 신성장 동력 전략의 종류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기존 사업체의 ‘경영진’과 ‘경쟁력’에 대한 고민이다.
8. 기존 사업의 경영진은 양쪽으로부터 압력을 받는다. 우선 기존 사업이 잘하고 있는데 신성장 동력 발굴을 시도하느라 돈을 쓰게 되면 주주들로부터 기존 사업의 성장에 집중하는게 낫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R&D나 신기술 탐색 등에는 당연히 돈을 써야 하는거 아니냐 생각하기 쉽지만, 높은 R&D 비용이나 신기술 탐색 비용은 기존 기업의 수익을 깨서 불확실한 미래로 이익을 이전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를 싫어하는 주주가 있는 것. 반대로 기존 사업의 성장이 닫히고 있을 경우에도 역시 비슷한 압력을 주주에게 받는다. 늘상 언급하는 사례지만 Kodak 경영진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이 결국 자기들의 주력 사업인 필름 사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점이 명확해졌을 때 어떻게 했어야 할까?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주주중심적 사고에 기반한 경영 전략 교수들의 설명은 코닥 경영진은 사업 성격이 너무나 다른 디지털 기술은 외부에 팔고, 그냥 필름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뽑은 후 시장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축소되면 그 때 회사를 해산하고 주주들에게 남은 돈을 돌려주는게 최선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는 정확한 원리까지 설명하려면 MBA 클래스가 되니 깊게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논리적으로는 이 결론을 벗어날 수 없다. 코닥이 디지털 기술을 계속 끌고가서 미국 시장 1위에까지 올랐지만 이는 결국 경영진의 에고 충족을 위한 일이었을 뿐 주주들을 위한 최선은 아니었던 것이다. 예전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LG가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한 것도 LG 자존심에는 큰 상처였겠지만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느 경우든 기존 사업의 주주에게 신규 성장 엔진 발굴을 위해 경영진이 돈을 쓰겠다는 선택은 매우 정교한 설득 논리가 요구된다.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가 되었건, 혹은 기존 사업 경영진의 ‘인사이트’나 ‘유명세’든 뭔가 기존 사업의 경영진이 신규 사업에 나가야 하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 근거가 없거나 명확하지 않으면 기존 사업의 주주들은 주식을 팔고 다른 기회를 찾아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9. 신성장동력 발굴 관련해서 기존 사업 경영진이 받는 또다른 압력은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인력들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쉽게 말하면 본진을 떠나서 먼 타지에 파견된 독립 부대 또는 그 새로운 지역에서 고용한 용병같은 존재다. 신사업의 영역에서 자리를 잡고 경쟁력을 갖추어 기존 사업의 경영진, 궁극적으로는 기존 사업의 주주들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기존 사업의 경영진이나 주주들은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사업에 대해 돈을 대주는 존재’ 정도로 여기지기 십상이다. 특히 기존 사업의 많은 경영 자원 중에서 이 신사업에서 가져다 쓰는 자원이 적을수록 신사업 경영진은 자기 사업의 ‘주주’들에 대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분명 신사업이 망할 경우 이 신사업 경영진이 주주들에게 책임을 지는 것은 사임과 성과급의 포기 정도로 끝날테지만, 만약 신사업이 예상외로 크게 성공할 경우 기존 회사의 경영진 (=신사업 회사의 주주)에게는 Management Buy Out (MBO) 같은 전략에 대한 유혹이 커진다. ‘내가 이 고생해서 이 사업을 지들 도움도 없이 키웠는데 투자금 좀 줬다고 발생한 수익 다 가져간다고 하네?’ 상황이 생기기 쉽다는 뜻이다.
10. 이런 문제가 안생기게 그냥 한 회사로 둔 상태로 그저 사업부 정도만 늘리는 식은 어떨까? 이런 경우엔 자기가 독립적 권한을 가지고 신사업을 만들고 싶은데 능력도 그만큼 좋은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왜냐면 경영진으로서의 독립성은 없이 월급쟁이로서의 보상만 기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엔 기존 사업의 인력들의 반발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죽도록 해서 벌어놓은 돈을 가지고 신사업 한다는 양아치들에게 엄청 주네. 그럼 우린 뭐야?’ 라는 문제에 부딪히는 것이다. 또 산업의 문법이 아예 다르거나, 해외 사업 등을 할 경우엔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기존 사업의 사업부 정도로만 놔두게 되면 조직내에서의 갈등도 당연히 생긴다. 야구 구단에 축구팀 추가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뻔히 보이는 것. 때문에 신사업의 성격이 기존 사업과 매우 다른 경우엔 결국 법인 단위로 나뉘고 기존 기업은 대주주, 신사업 담당자는 경영자가 되는 관계를 갖게 된다.
11. 물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기존 사업에서는 신규 사업체의 이사회에 이사를 파견하거나 좀 더 타이트하게 관리하기 위해 CFO (이사회 당연 멤버) 를 본사 사람이 임명되기도 한다. 아예 전체 임원 인사권 자체를 본사가 갖기도 하고.
12. 핵심은 본사, 즉 기존 사업의 경영진과 기존 사업이 단순히 자금만 대는 liquidity provider가 아니라 ‘다른 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는 경쟁력있는 경영 자원을 가지고 있냐는 것이다. 본사 경영 자원이 경쟁력있고 본사의 사업이 좋은 상태일수록 이들 신사업체는 본사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고, 신사업 경영진 입장에서는 자기들의 쓸모가 별로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본사로부터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에 도망가지 못한다. 본사 경영 자원의 경쟁력이 자기 사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면 탈출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기 쉽다.
13. 정리해보자면, 신성장 동력 발굴이라는 것은 단순히 ‘저 사업 우리가 하면 좋겠다’는 정도의 나이브한 생각이 아니라 이해관계 구조도 매우 복잡하게 바꾸고, 그에 따라 다방면의 갈등이 생기기 쉬운, 진짜 어려운 선택이라는 것이다. 선택 자체는 쉽지만 뒷감당은 엄청난 일이다.
14. 이럴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기존 사업이 가진 경영 자원의 경쟁력이 정말 문제가 되고, 이 경쟁력 요소가 의미없는 시장에 들어갈 경우 기존 사업체는 그저 재무적 투자자가 될 뿐 신사업의 경영진에게 별 의미없는 존재가 된다는 점이다. 당연히 기존 기업의 주주들에게도 ‘주주들이 알아서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된다. (기존 사업의 경쟁력이 너무 형편없어서 아예 새로운 사업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앞서 코닥 사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주주들에게 최선은 수익을 최대한 확보한 후 이를 주주들에게 돌려주고 회사를 해산하는 것이다. 예전 두산이 소비재 회사였다가 중공업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를 완전히 뜯어 고친 것은 주주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경영진의 과욕’이거나 좀 더 노골적으로는 총수 자본주의니 가능한 선택이었던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