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J Mar 22. 2024

과메기가 좋아서

겨울의 힙스터

 


 몇 년 전부터인가 과메기가 힙한 느낌이 되었다. 아마도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계정에 멋쟁이들이 과메기를 올리기 시작하면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확실히 몇 년 전부터 겨울이면 각굴, 방어회와 같이 과메기가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포항 과메기', '구룡포 과메기'처럼 동네에 허름한 간판에서나 봤던, 이름부터도 토속적이기 그지없는 과메기가 갑자기 인기 메뉴가 되었다. 2015-6년쯤 나도 과메기를 제대로 먹어보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어른들 술자리에서 한 두 번 얻어먹어 보고는 물컹한 식감이나 푸른 생선 특유의 꿈꿈 한 냄새가 별로였다는 희미한 기억이 있을 뿐 좋다는 것도 싫다는 것도 아니었다. 질색까지는 아니어도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어렴풋한 기억으로 먹는 후보지에 두지 않는 음식이 있는데 과메기가 그랬다.

 

 나에게는 제철 음식을 잘 챙겨 먹는 술친구가 있는데 말 그대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멋진 분이다. 철마다 그때에 가장 맛있는 식재료를 각지에서 주문하여 집으로 초대해 떡 벌어지는 술상을 차려 준다. 나에게 제철 음식과 술의 조화를 알려주는 고마운 스승 같은 술친구다. 과메기를 먹기 얼마 안 되었을 때도 그분이 과메기를 차려두고 나를 초대해 주었다. 음식은 조리법에 따라 맛이 다른 것처럼 어떤 도구를 쓰느냐, 어떤 사이즈로 자르냐에 따라 맛이 다르기도 하다. 그날은 과메기를 가위로 자르는 것과 손으로 찢어둔  것이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손으로 결대로 찢어둔 과메기는 확실히 식감이 조금 달랐는데 나는 그것이 그렇게 좋았다. 그래서 이후로는 나도 과메기를 반은 가위로 반은 손으로 잘라먹는다. 비린내가 났던 기억은 조작이었던 걸까, 요즘 과메기는 냄새가 나지 않게 기술이 발전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만큼 나이가 들어서 이 정도는 비린내로 느끼지 않는 걸까. 잘 모르겠다. 다만 과메기가 비리다는 기억은 앞으로는 없을 것 같다.


 과메기는 청어, 꽁치를 냉동과 해동을 반복하여 바닷바람에 건조시킨 것으로 겨울철 별미다. 경북 포항 구룡포 등에서 생산된다. 원래 청어를 원료로 만들었으나 1960년대 이후 청어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청어 대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요즘에는 청어와 꽁치 둘 다 구매가 가능한데 둘을 놓고 비교했을 때 청어는 좀 더 부드럽고 꽁치는 좀 더 고소하다. 난 둘 다 좋아한다. 과메기를 주문하면 야채 세트와 함께 배달을 받을 수 있어서 간편하고 좋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좋다. 예전에는 아는 사람을 통해 포항 죽도 시장에 있는 집에 전화나 문자로 주문을 했는데 요즘에는 여러 온라인 몰에서 주문이 가능해 더 간편하고 좋다. 손질한 야채 세트가 오니 보내주는 그대로 접시에 꺼내서 먹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


지난주에 이번 겨울 마지막 과메기 파티라는 명목으로 친구들과 과메기를 주문했다. 과메기는 알배추, 봄동, 꼬시래기, 해초, 쪽파, 마늘, 고추, 김, 초고추장과 함께 도착했다. 과메기를 즐기지 않는 친구를 위해서 역시나 마지막이 될 수 있을 굴을 준비하고 그에 어울리는 메뉴를 고민하다 수육을 준비했다. 곁들임으로는 이제 익어서 맛이 제대로 들은 김장 김치, 봄이 느껴지는 새콤 매콤한 달래 오이 무침, 씹으면 물이 탁 터지는 고소한 알배추를 함께 준비했다. 겨울과 봄이 함께 느껴지는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이 환절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술상이었다.


알배추나 봄동에 김을 얹고 다시마나 물미역도 좋은데 이번에는 배달이 온 꼬시래기와 해초를 올린다. 초장을 묻힌 과메기를 얹고 쪽파, 마늘, 고추를 넣어 한쌈 가득 입안에 넣는다. 고소하고 쫄깃한 과메기와 알싸한 마늘, 쪽파, 바다맛이 나는 해초, 김, 물기를 머금은 신선한 알배추 등등 여러 가지가 섞이며 입 안에서 하나의 소우주를 만들어낸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시원한 맛이 어우러진다. 쓰다 보니 입에서 침이 고인다. 과메기는 소비뇽 블랑을 페어링 하면 좋다. 화사한 화이트 와인의 향이 과메기와 잘 어울린다. 화이트 와인과 함께 마시다 사케 한 병을 더 마셨다. 술이 술술 들어간다.



이번 겨울 (아마도) 마지막 과메기 파티



이번 겨울 첫 과메기



나의 친애하는 술친구가 준비해주었던 몇 년 전의 과메기 술상







이전 04화 오!이스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