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J Mar 08. 2024

오!이스터

겨울이 주는 선물

 최근에 친해진 가방 브랜드 대표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사계절을 다 좋아한다고 하니 놀라며 그런 사람을 처음 보셨다 한다. 굳이 꼽자면 봄을 가장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계절을 다 좋아한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이 없진 않을 테고 이유는 비슷하지 않을까. 각 계절마다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 겨울은 눈, 그리고 해산물이 풍부해서 좋다. 겨울철에 나오는 해산물들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중에 대표적은 것은 굴과 과메기. 이번에 요리할 재료는 굴이다.


 어렸을 때는 굴이 싫었다. 비린내는 가까이 있는 것도 꺼려질 만큼 강했고 흐물 하는 모양새나 말캉거리는 식감도 식욕을 달아나게 만들었다.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로 석화를 먹기 시작했다. 즐겨 먹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굴을 제대로 먹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취직했을 때. 회사 앞에 자주 가는 굴 전문점이 있었는데 막내인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처음에는 굴알밥을 먹었고, 종종 굴국밥을 먹었다. 먹다 보니 굴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 거다. 그때부터 굴에 빠져들었다.


 굴은 여느 해산물들이 그러하듯 식재료이기도 하지만 하나만으로도 완벽한 요리이기도 한다. 요즘은 각굴이라고 부르는 석화에 소스나 약간의 채소를 곁들이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마늘, 고추, 초고추장을 얹으면 그대로 한국의 바다가 내 입으로 들어온다. 레몬을 뿌린 굴에 타바스코 같은 핫소스만 뿌려주면 이미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 어딘가의 오이스터바에 앉은 기분이다. 위스키가 싫지 않은 사람이라면 각굴에 피트 위스키를 살짝 넣어 먹으면 미식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레시피는 간단하다. 다진 마늘, 레몬즙, 핫소스, 피트 위스키를 조금씩 넣어서 먹으면 된다.

                    

 굴은 호불호가 강하다. 그래서 누군가를 초대할 때 굴을 준비하려면 굴을 먹는지 여부를 미리 물어본다. 안 먹는 사람도 있고,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고, 또 익혀서만 먹는다는 사람도 있다. 세 번째의 경우에는 가장 생물에 가까운 조리법으로 각굴찜이 좋겠다. 그냥 찜통에 찌기만 하면 되니 이렇게 쉬울 수가 없다. 비린내를 잡기 위해 맛술이나 청주, 소주 등의 술을 살짝 뿌려서 찌면 좋다. 이 찜은 그냥 먹는 게 제일 맛있고 생굴을 먹을 때처럼 초고추장을 찍어 먹기도 한다. 경리단길 근처 시장골목에 여수식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수를 비롯 산지에서 올라오는 제철 해산물을 먹기 좋다. 제철 식재료를 이용하기 때문에 겨울에 가면 각굴찜을 해주시는데 크고 통통한 각굴을 바로 쪄 따뜻하게 먹을 때의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생굴을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비릿함은 덜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포근한 느낌. 시원하고 명확한 생굴의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의 바다가 입안에서 펼쳐진다. 각굴찜은 일본주 같은 사케나 청하처럼 부드러운 술과 함께 하면 잘 어울리고 좋다. 이렇게 말하고 소주랑도 잘 먹는 사람이지만.


 좋아하는 굴 요리법 중 하나로 올리브 오일에 굴을 절여 먹는 것이 있다. 굴을 살짝 데쳐서 탱글한 상태로 식혀두고 소독한 병에 편마늘과 페페론치노 약간, 월계수잎 약간을 넣고 올리브 오일을 가득 채운다. 여기에 화이트 와인 비니거나 레몬채 등을 살짝 넣어서 먹어도 좋다. 하루 정도 지나서 빵이나 크래커와 함께 먹으면 좋은데 나에게 처음 이 음식을 전수해 준 언니는 인도의 난을 구워서 먹게 해 주었다. 그 맛이 강렬하고 맛있어서 이 음식은 난과 묶어서 생각하게 된다. 맛있고 비주얼도 좋아서 손님이 올 때 접대하기에도 좋다. 어울리는 술은 역시 화이트 와인 쪽이 좋겠다. 시원한 샤도네이나 굴이라면 빠지지 않는 와인인 샤블리와 먹어도 좋다.


 겨울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3월. 절기상 겨울은 이미 끝났지만 아직 쌀쌀한 것이 그래도 굴을 조금 더 즐길 시간을 연장시켜 준다. 남은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 내일 술안주는 굴이다.




그러고 보면 생굴은 각굴로 주로 즐기는 것 같다.



생굴은 역시 김장 수육과 먹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는 한국사람.



손님 초대 식탁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올리브 오일 굴절임.



각굴찜은 크고 싱싱한 것이 좋다. 입 안에 꽉 차는 그 느낌은 어느 것보다 높은 만족도를 주는 음식.






이전 03화 리코타 치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