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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지 들기름 파스타

라면보다 쉽다

by MJ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어느 휴일의 낮.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채소들을 자르고 대패 삼겹살을 구워서 월남쌈을 먹을까. 대패 삼겹살이 없네, 사러 가기 귀찮은데 채소랑 크래미 정도도 괜찮지. 땅콩소스 그건 꼭 있어야 하는데 지금 마트 배달이 되었던가. 다른 건 뭐가 있더라. 먹고 싶은 것들을 찾아 뇌가 바쁘게 돌아간다. 그러나 미루고 미루다 십중팔구 그날의 메뉴는 라면. 혼자 있을 때는 요리하기 귀찮을 때가 많다. 그러나 가끔은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걸 찾게 된다. 그럴 때는 냉장고에 있던 재료 몇 개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요리를 찾아본다. 오늘은 묵은지를 찾아냈다. 들기름을 넣어 파스타를 만들어야겠다.


잘 익은 묵은지가 한통 정도 냉장고에 있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나 김치찜, 들기름에 들들 볶는 김치볶음, 버터를 한 스푼 넣은 김치볶음밥, 잘 씻어내 돌돌 말은 김밥 등. 묵은지만 있어도 몇 끼 식사는 뚝딱이다.


그리고 오늘의 다른 주인공인 들기름. 들기름은 늘 시장에서 짜온 걸로 사용하는데, 갓 짜낸 들기름은 한 스푼 그냥 먹으면 그렇게 신선하고 고소할 수가 없다. 들기름 새 병을 들일 때는 이 걸로 여러 음식을 먹을 생각을 하면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들기름은 올리브오일과 닮았다. 서양 요리에 올리브오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들기름이 있다. 향과 느낌은 다르지만 먹다 보면 어딘가 비슷한 역할을 할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올리브오일이 들어가는 요리에 들기름을 넣으면 의외로 잘 어울린다. 파스타도 그렇다. 들기름을 두르면 배어드는 고소한 맛이 올리브 오일처럼 찰떡으로 잘 어울린다. 여기에 묵은지를 더하면 아삭한 식감과 감칠맛이 더해져 한국식 파스타가 된다.


묵은지 들기름 파스타 만들기

준비물: 묵은지, 들기름, 마늘, 날치알(없어도 됨), 쯔유(혹은 참치액)

1.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편마늘을 볶는다.

2. 씻어서 길게 찢어둔 묵은지를 넣고 같이 볶아준다.

3. 삶아둔 파스타 면을 넣고 쯔유를 넣어 간을 맞춘다. 면수를 조금 넣어 촉촉하게 만들어 준다.

4. 마지막에 날치알을 넣어 잔열로 익힌다. 없으면 생략해도 무방하다.


이런 요리를 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셰프 위에 재료 있다.” TV에서 최현석 셰프가 했던 말인데, 모든 맛있는 요리는 어떠한 기술보다도 좋은 재료가 좌우하는 법이다. 묵은지가 맛있고, 들기름이 신선하면 이미 반은 성공한 거다. 오늘 만든 파스타도 그렇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묵은지의 깊은 감칠맛과 들기름의 고소한 향이 어우러지면서 기대 이상의 맛을 낸다.


이런 음식에는 어떤 술이 어울릴까. 들기름의 진한 향이나 묵은지 속 젓갈향을 감안하면 상큼한 화이트 와인이 잘 맞는다. 가벼운 샤도네이를 곁들이면 묵은지의 개운한 맛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오늘은 친구가 선물한 ‘호기스 라즈베리 드림’을 마셨다. 과일향이 가미된 맥주였는데, 가벼운 산미가 들기름 파스타와 잘 어울려 기분 좋은 조합이 되었다.


요리를 하고, 좋아하는 술 한 잔을 곁들이는 시간. 별거 아닌 순간이지만, 이렇게 나만의 맛있는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다. 내일은 또 어떤 재료로 간단한 한 끼를 만들어볼까. 라면보다 조금 더 손이 가도 마음은 충만해질 요리를 찾아서.



인스타에도 올라갔어요

https://www.instagram.com/p/DBgbqxlB0Ga/?igsh=MW1nbHhzMHloMnlk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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