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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뱅이 쫄면

언제나 입맛을 돋우는 치트키

by MJ

동네 한구석에 있을 법한 평범하디 평범해서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치킨집을 좋아한다. 그 치킨집은 살짝 어두컴컴하고 조금 덜 정돈이 되어 있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있는 곳이다.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우스갯소리로 인간사료라 말하는 손을 뗄 수 없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뻥튀기 과자를 내어주며, 십중팔구 직접 담근듯한 치킨무가 아삭하고 맛있다. 그저 머리에 딱 떠오르는 치킨집을 상상으로만 얘기하지만 누구나 이런 집 하나는 단골로, 혹은 단골 삼고 싶은 집으로 가지고 있지 않을까. 사실 내가 그러하다. 나의 로망 속 치킨집은 이런 집이다. 돌고돌아 순정이라고 하더니, 나이가 들수록 멋보다는 맛이, 그중에서도 기본에 충실한 집이 좋아진다. 로망이란 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취향의 탑, 혹은 좋았던 경험이 쌓인 탑일지 모른다.

그 치킨집은 당연히 치킨이 바삭하고 맛있어야 하며, 꼭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안주 중 하나가 골뱅이 무침이다. 바삭하고 고소한 치킨을 먹다가 느끼할 때쯤 입에 넣으면 딱 좋을 매콤 새콤한 골뱅이 무침. 나의 경우 치킨집에 가면 첫 번째로 주문하는 것이 치킨이지만, 동시에 첫 번째로 생각하는 메뉴는 골뱅이 무침이다. 두개를 동시에 다 주문하고 싶다는 거다. 욕심이 보여 부끄럽지만 둘의 궁합이 그리 잘 어울리니 하는 수 없다. 체면을 던지고 궁합이 잘 맞는 음식들을 탐해본다. 파채가 잔뜩 들어가 쌉싸레한 파향이 퍼지고 오징어채가 잘근잘근 씹히는 을지로 스타일의 골뱅이도 좋지만 치킨집에서는 오이나 양배추, 깻잎 같은 채소들이 들어간 좀 더 진한 고추장 양념맛이 나는 아삭한 골뱅이 무침이 좋다. 채소가 잔뜩 있어 많이 씹힐수록 좋다. 누구에게나 치킨 맛집 하나쯤은 있을 텐데 나의 치킨 맛집은 청담동 (현재는 논현동)에 있는 현정치킨이란 곳이다. 튀김옷이 두툼한 편인데 굉장히 바삭하고 살짝 매콤하다. 골뱅이는 소면이 아닌 쫄면이 함께 나오는데 처음부터 양념에 잘 무쳐 나온다. 좋아하는 오이와 깻잎이 들어간다. 거진 20여 년이 다되어가는 워낙 오랫동안 자주 다니던 단골집이지만 요즘은 사무실 위치상 가끔씩 가게 된다. 살짝 맛이 변했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 가슴속 원탑이자 그저 있기만 하는 것으로 고마운 느낌이 드는 곳이다. 언제고 그리울 때 바로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곳.


현정치킨을 그리워하며 오늘은 골뱅이무침을 만들어 보기로 한다. 소면도 쫄면도 좋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쫄면이 더 좋다. 그래서 오늘은 골뱅이 쫄면! 어디서 다친 지도 모르게 여기저기 손에 상처를 달고 사는 나는 캔을 딸 때 조금 긴장이 된다. 원터치 캔을 여니 짭짤하고 감칠맛 있는 국물에 절여있는 골뱅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딱히 쓸모가 있지 않아 다 버렸지만 예전부터 이 골뱅이 국물을 좋아했다. 그러다 어느 요리 채널에서 골뱅이를 만들 때 오징어채를 국물에 적셔두라는 팁을 알려줘서 쓸모가 생겨 매우 반가워했지만, 오징어채는 여간해서 구비하고 있지 않아 팁을 제대로 활용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현실. (하하)


<골뱅이 쫄면>

준비물 : 캔 골뱅이, 쫄면, 채소 (양배추, 오이, 당근, 양파 등등 무침에 어울릴만한 채소를 냉장고에서 찾아내면 좋다. 개인적으로는 양배추, 오이는 꼭 넣어서 먹고 싶어 하는 편), 고추장 3T, 고춧가루 5T, 다진 마늘 1T, 설탕 3T, 꿀 (혹은 올리고당) 3T, 식초 10T (T는 밥숟가락 사이즈이고, 식초는 맛보면서 조금 가감.)


1. 골뱅이는 체에 받쳐 국물을 뺀다.

2. 채소는 먹기 좋은 사이즈로 썬다. 이번에는 냉장고에 오이만 있어서 오이만 넣었다. 보통은 반달 모양으로 써는 편인데 이번에는 길게 채를 썰어서 넣었다. 여담이지만 채칼 성능이 좋아서 요즘 모든 야채를 채 썰어 먹는 중이다.

3. 양념을 잘 섞어서 삶은 쫄면과 비벼준다. 이때 참기름 두 방울 떨어뜨려 같이 비벼주기.

4. 오이와 골뱅이도 양념을 묻혀서 내주면 되는데 채소가 많지 않길래 양념장을 위에 얹었다. 깨를 뿌리고 마무리!


쫄면은 따로, 골뱅이와 채소는 따로 양념을 묻혀주는 것이 단골집인 현정치킨 스타일인데, 나도 이렇게 하는 편이 입에 착 붙는 느낌이라 이렇게 만든다.


골뱅이 쫄면에 어울리는 술은 정말 많지만 일단은 맥주. 맥주 한 잔을 마셔주고, 매콤한 한식 메뉴의 특성상 막걸리, 소주, 전통주 어느 것과 마셔도 좋다. 이 날은 화요를 곁들였는데 화요는 그냥 먹는 것보다 얼음 하나 정도 떨어뜨려서 시원하게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시원한 화요와 함께 먹은 새콤 달콤 골뱅이 쫄면,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만드는 치트키 같은 메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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