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국수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프로필 사진을 새로 업데이트한 친구 46명 가운데 '아빠'라는 이름이 떠있다. 건배하듯 부딪히고 있는 테이크 아웃 커피 3잔에, 색색이 하트와 우정 영원하자는 손글씨가 써진 사진이 있었다. 내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의 프사가 아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 주소록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기에 살아계신 동안 카톡 친구 목록에 아빠가 뜬 적이 없다. 돌아가시고 일 년정도가 지난 후 카카오톡 새 친구 목록에 아빠란 이름에 알록달록한 애니메이션 프로필 사진이 처음 떴을 때의 묘한 기분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매일을 보고 살다 떨어져 산 건 10여 년. 자주 통화하는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가끔 전화를 걸면 시간에 상관없이 늘 이름을 부르며 전화를 받아주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그 음성과 말투가 잊힐까 봐 아직 지우지 못한 아빠의 번호를 쳐다보며 몇 번이고 되새김했다.
어느 심리학 책에서 읽었는데 자존감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형성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울할 때나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아빠가 생각난다. 자존감이 높아서 멋졌던 아빠, 사랑한다는 말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지만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아빠, 내가 나를 믿지 않을 때조차 나를 믿어주던 아빠. 요즘 아빠가 자주 그립다.
아침부터 아빠 생각을 해서인지 국수가 간절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 배는 고픈데 도통 무얼 먹을 기분이 들지 않을 때, 심리적인 허기가 드는 날, 그런 날에도 국수가 떠오른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빠 생각이 날 때마다 국수를 먹었다. 2017-2018년은 살면서 가장 많이 국수를 소비했던 시기일 것이다. 국수는 나의 소울 푸드다. 좋은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만 고르기 어려워하는 나의 소울 푸드로 국수가 꼽히게 된 것은 이전에 브런치 '국수 이야기'에 썼었다.
소면을 끓는 물에 삶는다. 국수가 뭉치지 않게 젓가락으로 잘 저어주고, 끓어오르면 차가운 물 반 컵을, 다시 끓어오르면 물 반 컵을, 총 두 번 넣어주고 다시 끓어오르면 불을 끈다. 국수를 차가운 물에 씻어내면 된다. 청양고추, 파, 다진 마늘을 넣고 간장, 고춧가루, 설탕, 참깨, 참기름을 넣으면 간장 준비도 끝이다. 그대로 국수를 간장에 비벼 먹는다. 큰 수저로 간장을 두세 푼 듬뿍 넣는 내게 아빠는 늘 짜다고 간장을 조금만 넣으라고 하셨다. 국수에 간장을 넣을 때마다 아빠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아 두 수저를 넣을 것을 한 수저만 넣는다. 잔소리가 많지 않으셨던 아빠지만 음식을 먹을 때 소금을 많이 넣거나 간장을 많이 넣는 내게 꼭 한마디를 하셨다. 그것도 싫어서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아빠 몰래 간장을 한번 더 넣었다. 그 좁은 상에서 못 볼 리가 없는데. 요즘은 간장을 뜨다가 숟가락을 멈칫하곤 그 목소리를 떠올린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비가 오는 날이면 매일 우는 청개구리 같다. 국수를 끓여 엄마가 해주신 섞박지에 먹었다. 청개구리는 오늘도 비오는 날에 운다.
'국수 이야기'는 브런치 북 '안녕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에 실려있습니다. 시간 나실 때 읽어 주세요 ^^
https://brunch.co.kr/@mjx6n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