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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 Sep 06. 2020

삼전 사기, 좌충우돌 아이슬란드 한 바퀴 - 제 4장

불완전한 여행의 미학, 10박 11일 네 번째 아이슬란드 여행기

새로 오신 독자님을 위한 앞 이야기(1-3부)


1부

https://brunch.co.kr/@airspace2010/1


2부

https://brunch.co.kr/@airspace2010/2


3부

https://brunch.co.kr/@airspace2010/3


손에 손 잡고


벌써 어느덧 5일이 지났다. 동부의 끝자락에 위치한 세이디스 피요르드를 지나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데티포스로 향한다. 프로메테우스에서 외계인이 검은 액체를 마시고 분해되었던 바로 그 폭포다. 경치를 감상하며 산 넘고 물을 건너다보니 어느덧 주행거리는 700km를 돌파했다. 도로 상황을 보여주는 어플을 켜보니 데티포스로 향하는 한쪽 길은 통제가 되었고, 한쪽 길은 열려있지만 미끄럽다는 표시가 뜬다. 


고프로로 녹화했던 당시의 데티포스 진입로 상태.


아이슬란드의 자연은 혹독하다. 겨울은 특히 그렇다. 강풍으로 하나밖에 없는 1번 국도가 통제되는가 하면, 내륙 지방은 눈이 오는 10월 초면 통행이 금지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사히 여행을 마치지만 어떤 사람들은 사고를 겪곤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눈길에 미끄러진 차가 길을 벗어나 박히는 것이다. 평지일지라도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견인차를 불러야 하는데, 한번 부르면 비용이 20~50만 원까지 청구된다. 하지만 이런 비용을 내지 않아도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데티포스에 근접했을 무렵 여러 대의 차가 앞에 멈춰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추돌사고라고 생각했다. 비상등을 켜고 주위를 살폈는데 사람들이 한 군데에 모여 있었다. 사고가 났다. 그런데 추돌사고가 아니라, 한 차가 눈길에 빠졌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그 차를 밀어주고 있었다. 심지어 운전석에 앉아 열심히 악셀을 밟던 여자는 차주가 아니었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뒤에서 밀고, 끌어준 덕에 차는 무사히 밖으로 나왔다. 


이 차로 어찌 이 길을 오실 생각을 하셨나이까...


생면부지의 사람임에도 자신의 시간과 몸을 기꺼이 내주어 타인의 아픔을 나누고, 치유한다. 언어가 통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차가 나오면 다 같이 한바탕 웃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유럽 최대의 폭포를 봤지만, 지구 최고의 인류애를 보았다. 뭔지 모를 묘한 감정에 혼자 <손에 손 잡고>를 마음속으로 부르며 아이슬란드 제2의 도시인 아퀴레이리로 이동을 시작했다.


862에서 바라본 데티포스. 864가 진국인데...


모든 기계는 금요일 오후에 고장이 난다


날씨, 차 사고 등 여러 변수가 있지만 아이슬란드 여행의 가장 큰 복병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중간중간 차를 멈추게 만드는 순간이라고 말하겠다. 마지막 목적지인 아퀴레이리(한국의 부산에 해당하는 도시)를 향해 가다 풍광에 취해 차를 잠시 세우고, 그 순간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일정이 조금 밀렸지만, 대수인가? (몇 분 안 되어 이 일이 대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차로 다시 돌아오는데, 뭔가 이상했다. 며칠 전 전조등 하나가 나가긴 했지만 하나로 주행하는데 문제가 없으니 일단 여행을 계속했는데 전조등이 두 개가 전부 다 나가버린 것이었다! 아,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생겼다. 일단 무엇을 해야 하지? 정비소에 가야 한다. 정비소에 가려면, 그래. 렌트 업체에 연락하자! 그렇게 ‘네 번’의 통화 시도 끝에 긴급 지원부서와 연락이 닿았고, 미바튼이란 곳에 있는 정비소를 찾아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람, 돌, 그리고 모래가 만든 흐름의 흔적


문자로 주소를 받은 후 눈이 멀어버린 자동차와 함께 정비소로 향했다. 도착하니 커다란 창고형 정비소에 세 명의 아이슬란드인 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들어가서 얼마나 대기해야 하냐고 묻자 자기는 모르겠다고, 그냥 기다리라고 한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재차 들어가 언제쯤 가능한지 묻자 화를 내며 나가 있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동안 만난 아이슬란드인은 전부 친절했기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빨리 하라고 재촉한 것도 아니고, 언제쯤 가능한지 물어볼 수는 있지 않는가! 


아이슬란드인에 대한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한다. 어쩌면 아이슬란드는 모든 것이 완벽한 내 꿈의 장소였기에 그 실망감은 더 컸을지 모른다. 그렇게 30분을 더 기다려 한 정비공이 나오더니 보닛을 열고 전조등을 살핀다. 30초 정도 봤을까, 자기네 정비소에는 그 전구가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란다. 아니! 해가 짧아 돌아다닐 시간도 부족한데, 이 렌트 업체는 자기네 차를 어디서 정비할 수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된다는 말인가. 분노를 삭이며 상향등과 비상등을 이용해 주행을 시작한다. 속칭 긴급 지원부서는 다음 도시에서 갈 수 있는 정비소를 알려주겠다며, 내일(심지어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북유럽인들이 주말에 일을 할까...?) 다시 연락하라더니 퇴근해버렸다. 아이슬란드에 대한 동경이 또다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마음 같아선 이끼 밭 위를 질주하고 싶지만, 아이슬란드에서 이끼 위를 걷는 것은 자연 파괴 행위이다. (이끼 나이가 채소 수백 살)


원효대사와 피시 앤 칩스


어찌어찌 생존의 문제가 걸린 운전이 끝나 아퀴레이리에 도착하고 나니, 식욕의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삼면 이상이 바다인 나라에 가면 반드시 해산물을 먹어봐야 한다. 맛집으로 랭크되어 있는 피시 앤 칩스 집을 찾아, 문 앞에서 후각으로 2차 검증을 하기 위해 코를 킁킁대기 시작했다. 문을 살짝 열어보자, 엄청난 튀김 냄새가 코를 강타했다. 마치 '이 집은 맛집이 확실하다!'는 말을 코로 듣는 기분이랄까? 


무엇을 시킬지 고르던 중 특이한 것이 있어 설명을 봤는데, ‘Crispy Doritos Cod’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일단 신기한 메뉴가 있으니까 시켜보기로 한다. 십여 분 후, 엄청난 크기와 두께를 자랑하는, 동행이 시킨 일반 피시 앤 칩스가 나왔다. 마치 그 두께가 스테이크만큼 두껍고 살이 부드러워 한 입을 베어 무니 마치 고기를 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더라. 필자가 시킨 음식은 겉보기에는 마치 돈가스처럼 생겼는데,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게 치킨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문제(?)의 도리토스 피시 앤 칩스


한참을 먹다가 이 고소함과 바삭함의 근원이 궁금하여 동행에게 물어봤는데, 겉면에 있는 이것은 도리토스란다. 응? 도리토스? 내가 아는 그 과자 도리토스? 그렇단다. 내가 도리토스 같은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일부로 말을 안 했다고 한다. 과자랑 생선을 함께 튀기다니. 찰나의 침묵이 흐른다. 그제야 입안에 도리토스 냄새가 나고, 치아 사이에 낀 과자 뭉치가 느껴진다. 아,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보았을 때 바로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다음 날 아침, 가득한 먹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맑은 하늘이 나를 맞이한다. 먼지 한 톨 없는 맑은 공기를 원 없이 들이켠 후 정비소를 찾아 떠난다. 정비소는 10시에 연다고 했고 짧은 거리에 있으니 마음 편하게 출발했으나, 역시 우리의 렌트 업체는 또다시 내 여행에 스크래치를 내는 것이었다. 10시에 연다는 업체는 11시가 되어도 열지 않았고,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차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날의 파란 하늘은 마치 운명처럼 나타났다.

그렇게 30분을 더 기다렸더니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아무리 봐도 직원 같지는 않고, 손님으로 온 것 같은데 언제 들어간 건지 모르겠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 사람에게 다가간다. “혹시 여기서 일하세요?”, “아니, 혹시 도움 필요해? 그럼 따라와.” 아, 이유는 없지만 한줄기 따스한 빛이 내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것 같다. 건물 뒤편으로 들어가니 한 남자가 우리를 멀뚱히 바라본다. 둘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차를 가지고 들어오란다.


빙고! 들어가며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자 12시에 오픈한다는 문구가 나를 반겼다. 지금은 열한 시 반이다. 기쁘면서 화가 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지금이 바로 그때다. 문 앞까지 다가가자 그는 나를 차에서 내리게 하더니, 내 운전을 못 믿겠다며 자신이 직접 차를 가지고 정비소 안으로 들어간다. 내리면서 농담이라며 너스레를 떠는데 아마 그보다 더 편안한 농담은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보닛을 열고 전구를 간다. 


레이니스피아라에 위치한 주상절리 동굴


이 모든 작업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작업은 금방 끝났지만, 그 잠시 동안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많은 여행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가 키우는 개와 함께 뛰놀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악수와 함께 다시 자리를 뜨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잃어버렸던 아이슬란드에 대한 나의 감정은 그새를 못 참고 다시 활짝 만개했다. ‘그래, 역시 아이슬란드야.’


오로라, 제발 내게로 오라


산 넘고 물 건너 링로드 한 바퀴가 어느덧 끝나간다. 아쉬운 소리를 덧붙이자면, 수도인 레이캬비크에 다시 도착할 때까지 오로라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구름 어플을 켠다. 보아하니, 일부 지역에 구름이 별로 없고 오로라 지수도 4로 꽤 높았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는 오로라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사실 동행이 오로라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있었기에, 마지막에는 가장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기대와 불안을 안고 오로라 관측 스팟 중 하나인 그로타 등대에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다. 


날이 어둑해지자 구름 사이로 신의 커튼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만감이 교차하며 그간의 아쉬움이 떠오른다. 하루씩만 일정을 미뤘어도 매일매일 오로라를 봤을 텐데. 떠나온 날 그 지역에 엄청난 오로라가 떴다는 이야기를 9일 동안 들었으니까. 그래서 더 간절하고, 더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오로라를 보기 위해 아이슬란드로 떠나고,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 미션은 아이슬란드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경악할만한 구름의 양 덕분에 난이도가 몇 배로 올라간다. 



역대급 오로라가 뜬 날에 동부에 있는 사람은 구름에 가려서 못 보고, 남부에 있는 사람은 인생에 남을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구름이 없는 지역을 찾아 이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구름이 없는 지역에 도달한다면, 하늘에서 초록빛 커튼을 펄럭이는 순간 인생에 다시없을 황홀함을 맛보게 된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지르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그 순간을 조망한다. 혹시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보지 못했더라도 너무 슬퍼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당신이 다시 아이슬란드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으니까!


레이캬비크의 할그림스키르캬 교회에서 내려다본 ㄱ전경. 다시 만날 그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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