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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 Oct 03. 2020

몽마보다 무서운 목마(木魔) 이야기

빈대를 잡으려면 초가삼간 정도는 태워야지.

※ 본 글에는 다소 징그러울 수 있는 이미지(벌레 물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을 원치 않으시는 분께서는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거나, 글을 읽다가 (주의!)라는 메시지가 보인다면 실눈을 뜨시거나, 빠르게 스크롤을 내려주세요.


이 세상에는 꿈과 희망에 가득 찬 여행자의 멘탈을 잿더미로 만드는 몇 가지가 있다. 작게는 비행기 놓침, 소매치기, 사기, 바가지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여권 분실, 고립, 카드 복제, 강도, 인종차별까지. 납치나 폭행 등 극단적인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여행지에서 이 모든 것들을 겪어보았지만, 그래도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썩 좋지많은 않은) 꽤 괜찮은 술안주 거리가 되는 경향이 있다. 이건 당하는 사람은 지옥 같지만 구경하거나 듣는 사람 입장에선 이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할만한 소재가 있다. 이건 추억거리랍시고 꺼내봤자 주변 사람들이 웃으며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나 자신도 유쾌한 구석이라고는 떠올리기 힘든 소재다. 그 누추한 분의 존함을 감히 이 귀한 곳에 소환하자면...


<마케도니아의 숙소에서 커튼을 젖히자 나온 빈대, 하얀 것은 알이고 검은 것이 빈대의 흔적인 똥(?)이다.>


한글 이름: 빈대
영문 이름: Bedbug


'빈 선생'과의 첫 번째 조우


'빈 선생'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곳은 모든 것이 녹아내릴 것 같던 6월의 나폴리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빈대라는 그 존재와 위험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거의 박멸하다시피 한 존재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과장 좀 보태서 속담에서나 나오는 고대의 벌레 정도로나 생각했지. 내가 나폴리에서 묵은 5만 원짜리 낡은 호텔의 엘리베이터(라고도 부르기 민망한)는 두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차는 정도였고, 보물상자라도 열 수 있을 것 같은 열쇠를 받아 체크인을 하니 낡은 목재 가구와 엔틱함이 나를 반긴다. 저녁이 늦었기에 근처 가게에서 맥주와 브리또를 사 와서 안락한 시간을 보내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포지타노를 방문해 점심을 먹으러 전망 좋은 음식점을 찾아 바다가 훤히 보이는 뷰에 앉았는데 갑자기 팔이 따끔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내 옆의 난간에 꽃이 있었고, 작은 날벌레들이 마구 모여든 것이었다. 그래서 자리를 반대편으로 바꿨는데, 천장에 펼쳐진 천 그림자가 닿지 않는 곳이었기에 햇볕에 계속 내 팔이 노출한 상황이었다.

<남부 이탈리아의 꽃 포지타노. 이때까지만 해도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지.>

날아다니던 벌레가 없어졌는데도 계속 팔이 따끔거리자, 햇볕 알레르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강한 햇볕에 피부를 오래 노출하면 가끔 그럴 때가 있다더라. '별 일 아니겠지' 하고 여유를 즐기는데, 이제는 따끔거리는 것을 넘어 팔이 부풀어 오르며 갑자기 가렵기 시작한다. 하루가 지나면 괜찮아 질거라 생각하고 숙소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 날 소시지가 되어버린 팔을 보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검색을 시작하자 나온 것이 바로 빈 선생의 이름이었다. 주로 습하고 어두운 곳, 나무와 천이 많은 곳에 주로 서식하며 낡은 숙소 등에 주로 서식하지만 5성급 호텔에서도 가끔 출몰한다는 이야기. 연필로 콕콕 찍은 듯 한 똥 자국을 남김. 시력이 없어 혈관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찔러보며 혈관을 따라 물기 때문에 생기는, 좁은 간격과 일열로 나열된 특유의 자국. 낮에는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밤만 되면 스멀스멀 나와 나의 철분을 뺏어가는 행태. 마지막으로 아디다스 모기는 비교도 되지 않을 극강의 가려움. 영어 이름이 'Bedbug'인 이유가 있었다. 심각하게 당하면 여행 접고 집에 가기도 한단다. 실제로 필자도 후유증 때문에 에티오피아행 항공권을 취소했다. 그곳에 가면 빈대는 기본 옵션이라길래... 아, 이거였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틀이나 저기에 더 머물렀구나.


(주의!)





<이때부터 뭔가 사람의 손이 아니게 되었다.>

베니스를 거쳐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로 이동하는 기차에서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뒤늦은 방역작업을 실시했다. 신체를 가릴만한 최소한의 섬유 조각만 남겨놓고 가진 모든 소지품을 근처 빨래방으로 가지고 간다. 전자기기를 제외한 모든 것을 90도로 건조하고, 가지고 있는 것은 일일이 후레시를 비춰 상태를 파악한다. 일단 1차적 조치는 취했는데, 부품과 가려움이 도저히 멈추지 않아 결국 오스트리아에서 응급실 행을 택했다.


(주의!)




<차마 전신사진은 올릴 수 없어 아주 일부분이었던 팔(소시지 아님) 사진으로 그때의 참상과 가려움을 대신한다.>
<이탈리아에서 손이 구슬동자가 되어버린 썰 푼다.>


택시를 타고 간 병원에서 의사가 나를 대뜸 보더니, 경멸의 눈초리와 함께 '너 이거 언제부터 이랬어.', '지금까지 놀다가 이제 왔지?'라며 반 협박조로 진료(취조)를 시작한다. 별 거 아닌 줄 알았다는 나의 변명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호통에 묻혔고, 한국이었으면 당장 책상을 뒤엎고 뛰쳐나가 카카오, 네이버, 구글 지도에 1점 평점을 줄 일이지만 여기는 그게 통하지 않는 곳이니까. 체념하고 처방해주는 연고와 히스타민제가 적힌 처방전과 200유로를(그때는 비싸다 생각했는데 한국의 응급실 비용을 생각하면... 의외로 괜찮은 수준?) 맞교환해 병원을 나섰고, 아침이 되자마자 근처의 약국을 방문해 약을 처방받는다.


몽마보다 무서운 목마(木魔)


그렇게 약을 받아 상태가 조금은 호전되나 싶었지만, 빈 선생의 존재 디테일하게 알고 난 다음부터 진정한 지옥이 펼쳐졌다. 바로 언제든지 빈대가 나타날 수 있다는 극한의 공포였다. 자다가 조금이라도 무언가 느낌이 싸하다 싶으면 온 방(독실의 경우)의 불을 켜고 일어나 침대를 이 잡듯 뒤진다. 조금의 가려움, 무언가 지나가는 느낌이 들면 자연스레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꿈에서 나타나는 녀석이 몽마라면, 나무 침대 위를 지배하는 빈 선생의 위용은 가히 목마라고 불릴만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나의 행동 변화를 나열해보자면,


1. 나무가 있는 엔틱한 분위기의 숙소는 무조건 거른다.

2. 최소 3개 숙박 예약 사이트에서 후기에 'bedbug'라는 키워드를 조건으로 검색해본다.

3. 체크인 시, 짐은 무조건 매끄러운 바닥이 있는 화장실에 풀고 가장 먼저 매트리스, 침대 보, 베개 보, 시트 등 모든 것을 뒤집어 베드버그의 흔적(똥 자국, 탈피한 흔적)을 살핀다.

4. 침대 시트에 비오킬을 뿌린다.

5. 잠을 잘 때는 항상 손전등을 옆에 놓고 잔다.

6. 항히스타민제와 연고는 상비약으로 챙겨간다.

7. 주변 코인 세탁방의 위치와 영업시간을 알아놓는다.  


<카사블랑카의 4성급 호텔의 침대에서 찾아낸 빈대로 추정되는 허물(상)과 분비물 자국(하). 아님 말구...>


빈 선생과의 두 번째 조우, 그리고 사투에서 살아남는 법


3번의 과정은 짧으면 30분, 길면 한 시간 정도 소요됐고, 자연스레 체력 소모를 어느 정도는 동반하는 일이었으며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것 또한 여행의 커다란 장애요인이었다. 여하튼, 가려움은 1달 정도 지속되었으며 6월 말에 생긴 흉터는 9월 말쯤이 돼서야 사라졌다. 그 후에도 스위스의 인터라켄(그것도 아주 유명한, 한국인으로 바글대는 호스텔이었다!), 마케도니아의 스코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모로코의 이름 모를 한 경유지와 카사블랑카에서 빈 선생과의 끈질긴 악연을 이어갔다. 심지어 오흐리드에서는 철제 침대로 골랐는데 도미토리 내에서 내 침대를 가려주는 간이 커튼에서 튀어나왔으며, 광택을 내뿜는 좁쌀만 한 알들이 가득했지. 모로코에서는 3박 4일 투어에 포함된 숙소에 묵었는데, 방 문을 여는 순간 느낌이 싸해서 모든 구석을 이 잡듯 뒤져보니 내가 여태껏 본 빈대 소굴 중 끝판왕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딱 봐도 빈대가 잔뜩 서식할 것 같아 보이는, 3박 4일 사막 투어 중 묵은 한 숙소. 침대 뒤 구석을 살펴보니...>
<멘붕의 순간. 숫자는 베드버그, 동그라미는 알을 표시해 놓았다. 만약 이거 발견 못했다면, 진짜 집에 갔을 거다.>


이미 주인 내외는 깊은 잠에 빠진 상태였고, 남는 방도 없었으며 사막이라는 열악한 인프라를 자랑하듯 밖에는 주먹만 한 벌레들이 우글우글 돌아다녔다. 결국 잠을 안 잘 수는 없으니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한다. 내가 언젠간 이럴 줄 알고, 잔뜩 준비한 게 있지. 외국에서 사용하는 종량제 봉투와 비슷한 개념의 Bin Bag(or Plastic Bag)이 있는데, 빈대에 한번 호되게 당한 후로는 이걸 꼭 사서 종이테이프와 함께 배낭에 챙겨뒀다. 혹시 빈대를 발견한다면 나의 커다란 80L 배낭으로 숨지 못하게 재빨리 봉투로 싸매기 위해서. 10개 들이 묶음 중 첫 번째 봉투에 배낭을 집어넣고 단단히 동여맨다. 이후 가히 내부 인테리어(?)라 불릴 만한 작업이 진행됐는데, 3개의 침대 중 가장 빈대가 접근하기 힘들며 덜 붐비는 지역으로 예상되는 침대의 탐색을 마쳤다. 남은 9개의 봉지를 꺼내, 빈대가 올만한 곳을 전부 막기 시작했다. 빈대는 미끄러운 곳은 오지 않는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침대에 올라갈 수 없으면 천정으로 기어 올라가 침대 위로 떨어진다는 어마 무시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 결과...

<짜잔~>
<아마 가방에 이런 거 갖고 다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거야.>


아늑한 보금자리가 완성되었다! 사실, 이 정도로 베드버그에 대한 대비가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 없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도박을 해본 것인데, 다행히도 이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로도 가끔 몸이 간지럽거나 하면 눈이 자동으로 떠지는 것을 보니, 어쩔 수 없는 한 평생의 트라우마로 안고 가야 할 것 같다.

<베드버그 방어 침낭. 이거 사러 영국행 비행기표 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gapyeartravelstore.com/vango/>


나의 여행이 끝나며 빈대와의 전쟁도 끝났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여행 시장이 다시 활성화하면, 이 놈과의 전쟁도 다시 시작이겠지. 옛 말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언제 등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빈대 퇴치 난이도를 고려해보자면 그 옛날,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으로 마무리한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초가삼간 태운다고 잡힐 놈들이 아닐 것 같아서…. 더불어, '빈대 같은 놈'이라는 욕이 얼마나 심한 것인 지도 알게 되었고, 잘만 먹던 빈대떡도 이제는 싫다. 국립국어원 피셜로는 '빌붙다'의 '빌'의 어원이 명확하지 않다는데, 빈대가 붙은 것처럼 징그럽다는 '빈대 붙다'라는 말이 '빌붙다'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3류 찌라시급 이론을 제시해보며 글을 줄인다.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들께서는 빈대와 평생 조우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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