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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틴강 May 25. 2023

지나고 보니 한 달

5월 25일 목요일, 낮잠이 안 오는 오후

4월에 글을 쓴 뒤로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다. 그동안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쓸 여력이 나지 않았다. 컴퓨터는 부팅이 안 되고, 몸과 마음은 피로했다. 한 달 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은 채로 공부를 하고, 운동을 했다. 쓰려고 했던 글의 주제는 잊어버린 지 오래다. 확실한 건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자주 우울했으며, 주기적으로 기분이 가라앉곤 했다. 횡문근융해증의 여파라고 생각하지만,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더 열심히 해야 되는 압박 속에서 나는 점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니 마음도 건강하지 않게 되었고, 그것이 곧 공부의 질을 떨어뜨린 것 같다. 최근 일주일 정도만 조금 나아진 컨디션으로 보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마음 구석진 곳에서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포기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좋은 날, 그러니까 온전한 컨디션으로 즐겁게 공부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그런 '때' 혹은 그런 시기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곤 했다. 그 시간이, 그 시기가 언제 올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시험 전에 한 번은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아직도 믿고 있다. 


한 달 동안 일상이 바뀐 것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원을 가고, 학원에서 책을 부여잡고 공부를 하고, 못 버틸 때는 잠을 청하고, 다시 일어나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운동을 갔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운동이었다. 몸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학원 프로그램에 맞춰 운동을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운동 자체는 할 때는 괜찮은데 하고 나서가 문제였다. 정말 급격히 피로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잠이 아니라 정말 쓰러지듯이 학원에서 잤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체력학원 가는 요일을 줄이고, 그 마저도 안 될 것 같아 체력수업은 듣지 않고 혼자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순환식 체력 측정을 했다. 4분 40초 안에 들어와야 하는데 6분 30초가 나왔다. 그렇지만 당장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필기시험을 합격해야 체력시험도 볼 수 있으니 공부시간을 더 늘리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진작 여자친구 말을 들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항상 주변에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나를 비교한다. 저 친구는 벌써 저 과목을 하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느린 건지 자책하게 된다. 이 친구는 체력이 좋아서 나 보다 일주일에 10시간을 더 공부하고 있는데 나는 몸도 안 좋아져서 더 할 수도 없는 상황에 화가 나기도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하는데 나 보다 성적이 더 잘 나오는 것 같아 우울해지기도 했다. 다른 무엇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더 집중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잘 안 되었던 한 달이었다. 여전히 나는 상위권이고, 순경시험에서 1등을 했다는 자만심도 종종 들곤 했다. 당장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때때로 과거에서 자존감을 찾았다. 11월 처음 신림으로 왔을 때의 절박함이 많이 사그라든 것 같다는 생각도 최근에 들었다. 너무 과거를 미화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지금도 그때처럼 별생각 없이 그냥 그저 앉아서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다시 뱁새를 생각했다. 나는 순경시험을 잘 봤어도, 예전처럼 매번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잘하는 친구들을 따라서 나의 방식과 나의 속도로 차근차근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 마음을 얼마나 잘 유지할 수 있는지가 남은 두 달의 기간을, 7월 시험의 성적을 판가름하게 되지 않을까. 


내 자리 양 옆에 정말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앉아있다. 처음엔 그게 너무 부담스럽고 압박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더 나락으로 가지 않고 버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뱁새고, 남은 두 달도 뱁새일 것이고, 나의 수험기간은 계속해서 뱁새일 거다. 그러니까 피곤하면 피곤한대로, 공부가 잘 안 되면 조금 천천히, 조금 적게 공부하면서, 그냥 남은 시간은 남은 시간대로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자.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듯이 그 친구들을 쫓아가보자. 그리고 가랑이가 찢어지기 전까지만 하자. 할 수 있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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