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요가는 신선한 마음가짐 으로부터
이번 여행은 한라산을 위한 반짝 2박 여행이었으나 입도 일주일 전부터 몰아치던 강풍과 고스란히 남아 있는 대설로 인해 실패할 위기였다. 등산로 개방은 커녕 한라산에 진입하는 주변 도로 마저 통제됐다. 입도 첫 날도, 둘째 날도 1100 도로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다행인 건 먼바다가 보이는 나의 숙소는 몹시 아름다웠고 나는 요가매트를 가져온 것. 숙소 거실에 요가매트를 펴고 내리는 눈을 보며 요가를 했다. 창 밖엔 눈이 펄펄 내리고 방바닥은 펄펄 끓고, 내 숨소리만 들리는 숙소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신나게 땀을 흘리고 나니 오늘 저녁엔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제주는 자/타의에 의해 기습적으로 문 닫는 가게가 많지만 숙소에서 차로 5분 거리 함덕은 번화한 동네라 떡볶이 가게도 많다. 요가복 위에 얇은 플리스만 걸치고 떡볶이집 <주주키친>에 갔다. 이곳은 몇 년 전 골목 어귀에 있을 때도 깔끔한 떡볶이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아했는데 이젠 해수욕장 근처 2층으로 장소를 옮기고 먹기 더 좋은 환경이 되었네.
끓고 있는 즉석떡볶이 속 라면이 익기를 참지 못하고 반쯤 익은 라면을 가져다 문다.(나는 긍정적이고, 라면은 반이나 익었다!) 오독오독 맛있다. 아직 꾸덕히 졸지 않은 말간 떡볶이 국물 속, 양념이 덜 밴 매끈하고 허여멀건 밀떡도 한 입 물어본다. 나는 느꼈다.
이것은 신선한 떡볶이다!
오직 신선한 채소와 신선한 떡, 신선한 어묵, 신선한 라면, 신선한 튀김이 올려진 떡볶이 만이 신선한 떡볶이라고 할 수 있다. 모름지기 제주의 떡볶이라고 하면 전복이나 문어 같은 것이 들어있을 거라고 상상하시겠지만,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도 평범하고 맛있는 신선한 떡볶이다. 딱 내가 원했던 일상 떡볶이의 맛!
나는 여행 갈 때 숙소 안이든 밖이든 매트 펼 공간이 있는지를 꼭 확인한다. 여행까지 가서 왜 요가를 하느냐면, 여행에선 특히 신선한 요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 요가가 익숙하고 맛난 집밥이라면 여행 요가는 신선하고 맛있는 남의 집 밥 같다.
오래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사무직 직장인의 저녁 생존 요가도 물론 즐겁고 유익하지만, 여행지에서 들뜨고 풀어진 마음으로 종일 걷다 숙소에 돌아와 하는 요가는 특히 더 맛있다. 여행와서 다치면 안되니까 특별한 동작대신 평소 하던 동작들을 여러번 한다. 다만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마음, 새로운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설렘, 낯선 소리와 냄새의 느낌 같은 것들이 여행지 에서의 요가를 신선하게 만든다. 평소 하던 동작도 새롭게 느껴지고 더 깊은 아사나를 할 수 있다.
물론 고수분들은 일상의 요가에서도 새로움을 느끼시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경우 전기세를 아끼려고 냉동해 둔 밥을 데워서 반찬 몇 개 꺼내먹는 집밥, 냉동 다이어트 도시락, 배달 즉석 떡볶이 다 맛있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지만 매끼 설레는 마음으로 일상적인 식사를 하는 건 어렵다. 그리고 고수분들도 낯선 곳에서 요가하시면 분명 새로움을 느끼시지 않을까?
제주까지 와서 해물도 안 들어간 즉석떡볶이를 먹었다고 하면 우리 엄마는 "거기까지 가서 무슨 떡볶이냐!"라고 하실 테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저는 떡볶이를 좋아하는걸요~
- 신선한 요가를 맛본 후 혹시나 해서 비행기를 4시간 미뤄둔 덕분에 마지막 여행날 어승생악에서 아름다운 눈꽃을 만날 수 있었다!
1월 28일 토요일
제주 조천읍 동복리 먼바다에서의 아사나
- 신선한 요가는 신선한 마음가짐으로부터! 요즘 연습중인 ㄱ자 머리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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