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샐린저
다시봤다. 두번째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책을 묻는 다면 '호밀밭 파수꾼'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추천을 바란다면 주저 없이
'호밀밭 파수꾼'을 권하던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마음의 울림이나 날카로운 여운 같은 문장이 있는 책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쾌감이 있다.
주인공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짧은 호흡으로 툭툭.
그런데 너무 공감이 가거나 내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지하철에서 웃으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젠장. 이건 정말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책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이며 내가 좋아하는 표현들)
하여튼 12월이었다. 날씨는 마녀의 젖꼭지처럼 매섭게 추웠다.
page. 11
너무 알겠는 내가 우습다.
그가 그렇게 끄덕이고 있는 것이 열심히 사색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엉덩이와 팔꿈치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늙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page. 17
팔꿈치를 떠올리니 서글픈 문장이었다.
나라면 누구에게도 "행운을 빈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말은 끔찍한 악담이 아니고 무엇인가.
page. 28
최근에 취업 준비로 고되게 지내는 중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짤막한 나의 근황 이야기는
어쩐지 오랜만에 부리는 괜한 투정 같은 것이 되었다.
엄마는 해맑게 웃으며
"그래~ 잘 할거야~ 행운을 빌어~~"라고 했다.
꽃구경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나는 그런 엄마의 대답에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다.
모든 일이 별 것 아닌 게 되었다.
이 책을 읽었을 당시, 몇 년 전 접어두었을 땐
젠장. 끔찍해. 맞아!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때에 따라서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끔찍한 악담, 무엇이 있을까.
시간 되면 보자~
조만간 보자~
언제 한번 보자~
는 영영 보지 말잔 소리 아닐까.
때로는 기약 없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언정
저렇게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사람 잡는 발언이었다.
page. 30
그 녀석은 별의별 것을 다 가지고 있었다. 축농증, 여드름, 더러운 이빨, 구린내, 게다가 지저분한 손톱, 그 미친놈이 좀 불쌍하다는 생각을 잠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page. 64
순간이라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을지라도
반성한다.
누군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건 조금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누군가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을 비겁하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누군가 나에게 선물을 줄 때마다 항상 슬픈 결과로 끝나기 일쑤이다.
page. 82
선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안타까운 전개'라고 표현하고 싶기도 하고.
요즘은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을 통해
생일에 쉽게 선물을 주고 받는다.
한번은 누군가 '컵'을 보내준 적이 있는데
'거절'을 한 적이 있다.
나에게 컵은
매일 보는 것이므로..
가까운 친구라면 오히려 나는
현금을 택하는데, 이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으므로
어려운 일.
마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머리칼을 한쪽에서 반대쪽으로 빗는 그런 대머리들의 축에 끼는 사람이었다. 나 같으면 그런 수고를 하느니 차라리 대머리로 다닐 텐데...
page. 96
몇 명이 떠오르는데..
저마다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있으니 말이다.
돈이란 항상 끝판에 가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page. 171
끝에서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사나보다.
없어도 있는 것처럼
있어도 없는 것처럼
훈련하며.
그녀의 마음씨는 늑대만큼 부드러웠다. 영화의 엉터리 같은 이야기에 눈이 빠지도록 우는 사람들은 십중팔수 본질적으로 야비한 것들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page. 209
내가 그렇지 않나.
헤어질 생각하고 혼자 울어버리는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달라진 게 있냐만은
야비했는지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나의 경우는
좋게 이야기하면 과도한 죄의식이었고
그냥 이야기하면 과도한 호르몬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내말은 항상 죄 없는 사람의 생명을 구해준다든가 한다면야 변호사도 좋아. 하지만 막상 변호사가 되면 그런 일은 하지 않거든. (중략) 가령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실제로 한다 해도 그것이 정말 사람의 생명을 살려주고 싶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굉장한 변호사가 되겠다는 소망에서 그랬는지 모른단 말야.
page. 255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늘 누군가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불편함을 해소시켜주는 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우스운 이야기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말을 하면 모든 인간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page. 313
떠올리지 말자, 말하지 말자.
우스워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