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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Dec 06. 2016

보더행성 총리실종사건

1.

루드카야비 은하력 3424년, 루드카야비 은하연맹의 상임이사행성 보더에서 최악의 범죄자 태마자마 정신분실 사건이 발생한 후, 1년이 지났다. 태마자마 사건도 그렇거니와 보더는 다른 연맹 가입행성에 비하여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많았는데, 그 중에도 특히 행성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경제 권력과의 유착이 심각한 문제였다.


최근 보더에서 생산 및 수출되는 각종 광물 및 자연 자원에 대한 채굴권을 독점하고 있는 거대자원기업 ‘보더 에너지 코프’의 관계자가 보더의 자원국 국장 및 고위관리들을 만나 뇌물을 전달하는 것이 발각되었다.


보더 검찰은 당장 수사에 착수하여 ‘보더 에너지 코프’의 회장 랭글러를 소환하는 한편, 보더의 자원국에 대한 집중조사에 들어갔다. 검찰이 ‘보더 에너지 코프’와 자원국을 조사하는 동안 보더의 언론들이 연일 특종을 터트리는데 그 과정에서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우선 보더 자원국장이 받은 뇌물의 액수는 다른 관리들의 열 배에 달했는데 그러한 엄청난 돈이 특정계좌로 흘러나간 것이 포착된다. 그리고 계좌의 주인은 여성, 연령 134세로 보더에선 중년에 속하고, 이름은 시리로 밝혀진다.


언론은 끈질긴 추적 끝에 시리가 자원국장 뿐만이 아닌 정부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연락 혹은 만남을 가졌다는 걸 알아내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시리라는 여인이 정부 관계자들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명령을 내리곤 했다는 사실이다.


언론은 결국 시리와 보더의 최고 권력자인 총리와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현 보더의 총리는 연령 135세, 보더 행성 최초의 여성 총리인 라마드로 그 아버지인 새마 역시 총리였다. 라마는 일신의 능력이 총리 직무를 수행하기에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았으나, 과거 심복에 의해 암살당했던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총리가 되었다. 헌데 그 아버지가 한 때 보더의 적국이었던 하카 행성의 첩자였다는 소문이 있어 총리 자리에 오른 뒤에도 논란이 되곤 했다.


아무튼 언론은 시리와 라마드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행적을 쫓기 시작했다.       


2.

엄청난 사고가 발생했다. 보더에서 카이트로 가던 우주유람선 ‘스페이스’호가 소행성 구름 지대를 통과하는 도중, 꼬리 날개 부근에 거대한 바위덩어리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이후 표류하던 스페이스호는 거대한 소행성의 2차 충돌로 반파되고 만다. 그러나 반파 직전 대부분의 승객은 비상탈출캡슐을 타고 스페이스호를 빠져나왔다.


이와 같은 소식이 루드카야비 은하 행성들에 흘러들었다. 상황은 급박했다. 원체 위험한 지역에서 일어난 사고인지라 비상탈출캡슐들이 얼음덩어리, 바위에 맞아 제어장치를 잃고 추락하거나 폭발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장 구조에 나서도 모자랄 판국에 보더의 구조선들은 늦게까지 출격 승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작 보더의 비상상황실은 우왕좌왕하며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이런 비상시국에 최고책임자인 총리와 연락이 닿질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보더보다 앞서 루드카야비 연맹이 움직였다. 연맹의 평화유지군에 소속된 구조선들이 스페이스호가 사고를 당한 지점을 향해 쏘아졌다. 그러나 이미 때는 많이 늦어 연맹의 구조선이 구해낸 캡슐은 13기에 불과했다. 나머지 287기의 캡슐은 전부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파괴된 것으로 보였다.


보더의 구조선은 연맹의 구조선보다도 늦게 현장에 당도했으며 역시 헛걸음만 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 총리 라마드는 여전히 연락두절상태였다. 상황실로 보더의 국회의원 무리가 들이닥쳤다. 야당의원 포리나가 비서실장을 다그쳤다.


“대체 총리는 어디로 사라진 거요!? 비서실장!”


비서실장 드루카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우물쭈물했다. 포리나가 재차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말을 해보시오!”

“그게 저........... 모릅니다.”

“뭐요!???”

“어디에 계신지 저도 잘.”

“비서실장이 모르면 누가 안단 말이요!? 지금 보더인 287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판국에!”


사실상 287명은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소행성 구름 지대에서 작은 캡슐에 몸을 싣고 사라진 이들의 생환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터였다. 다른 의원들도 분통을 터트렸다.


“총리에게 연락해보시오!”

“이런 시국에 총리가 자릴 비우다니!”

“지금은 총리의 업무시간이요! 그런데 누구도 총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답을 못하는 게 말이 됩니까?”

“당장 데려오시오!”


그러나 총리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연락조차 되질 않았다. 보더 최악의 사고가 난 이 날, 보더의 총리마저 사라져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3.

언론은 온갖 권력형 비리는 물론 충격적인 스페이스호 침몰 사고와 총리 실종사건 뒤에도 역시 시리라는 여인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시리를 더욱 집요하게 쫓았다. 마침내 보더검찰에서도 시리를 중요 참고인으로 인정, 시리를 강제소환하기에 이르렀다. 시리는 보더에서 멀리 떨어진 이치 행성에 잠적했다가 루드카야비 연맹의 공조 덕에 보더로 소환될 수 있었다.


이어진 언론과 검찰 조사에 의해 드러난 시리의 행각은 그야말로 놀랍기 그지없었다. 시리는 총리인 라마드의 절친한 친구였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무엇보다 충격적인 일은 라마드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뒤에서 라마드를 조종해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단지 친한 친구여서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시리는 라마드의 두뇌에 나노봇을 주입하여, 거의 껍데기만 보더인인 허수아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시리의 꼭두각시가 된 라마드는 온갖 정치적, 자치행성적 권력을 이용해 시리의 배를 불려주는 한편, 간악한 기업인들이나 정치인들은 그런 시리의 존재를 알고는 되레 그것을 이용해 권력과 행성의 자원을 독점하려 들었다.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라마드 총리 체제의 부패한 보더 행성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죄와 과오를 따져 물어 벌을 받아야 할 총리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나노봇에 조종당했다지만, 보더인의 두뇌는 매우 복잡하고 상호유기적인만큼, 나노봇의 작용은 한계가 있다. 라마드가 가진 내면 깊숙한 욕구와 강인한 의지만은 보존할 수 있었을 터였다. 결국 라마드에게도 책임은 분명한 것이다. 그것도 매우 위급한 시기에 자리를 비우고 사라져 숱한 보더인을 우주장 당하도록 한 죄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4.

최악의 사고와 최악의 권력형 비리 스캔들에 총리 실종, 보더 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에 또 하나의 무시무시한 사건이 표면에 떠올랐다. 바로 보더의 행정수도 리모브라스에서 발생한 5건의 연쇄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붙들린 것이다.


나이는 99세, 이름은 피타스. 정신감정 결과 전형적인 반사회적 인물로 드러났으며 왜 살인을 저질렀냐는 질문에 “부자, 권력자에 대한 반감.”이라고 답했다. 피타스는 이미 절도와 강도 행각으로 징벌행성 후프에서 3년의 노동형을 살고 풀려난 전과자였다.


피타스는 나름의 노력으로 돈을 벌어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출소 초기 리모브라스의 식당에서 일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허나 피타스는 원체 게으른데다 충동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식당에서 많은 시비가 있어 결국 해고당했다고 전해졌다.


결국 다시 거리를 떠돌게 된 피타스는 어쩌다 전광판에 나오는 뉴스를 봤다고 한다. ‘보더 에너지 코프’ 사건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피타스는 천문학적 금액이 정치인과 기업인 사이의 이권청탁, 뇌물로 오가는 것을 보고 참으로 허탈했다고 한다. 자신은 당장 끼니를 때울 일이 걱정인데 누구는 수천만, 수천억에 달하는 돈을 아무렇지 않게 서로 주고받는다. 피타스는 자신이 돈이 없고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이 어쩌면 저들이 저렇게 더러운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기 때문인 것 같다는 나름의 타당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피타스는 어차피 이렇게 살다 죽을 거라면 저들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반사회적 경향을 가진 연쇄살인범들의 전형적인 자기합리화 과정을 거친 것이다.


피타스는 그렇게 리모브라스의 부자들이 자주 이용한다는 고급 헬스클럽, 호텔, 피부미용실 주변을 탐색하며 마땅한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계획적으로 살인에 임한 것이 감시카메라와 감지센서, 인공지능 경비시스템을 무력화하기 위해 살인을 시작하기 전 암거래상을 통해 메타수트(meta suit)를 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암거래상은 피타스에게 당한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메타수트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스텔스 장비로 특수부대에 쓰이곤 한다.


아무튼 그렇게 피타스는 완벽한 투명인간이 되어 부유층 여성을 노렸다. 대개 살인마들이 그렇듯 건장한 남성을 상대로는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총 네 명의 여성이 희생되는데, 피타스의 살인 및 사체유기 방법이 너무도 잔혹하여 처음 사체를 확인한 형사들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흉포한 살인과 피, 살점에 중독된 피타스의 복수심은 단순히 살인에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피타스는 두 번째 살인 이후 희생자들을 먹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세 번째 희생자부터 그 시신을 토막 내어 자신의 집 냉장고에 보관을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결정적 증거가 되기도 했는데 실제로 몇몇 사체 일부를 요리해서 먹기도 했다. 그러던 피타스는 결국 메타수트가 발생시키는 특유의 자기장을 추적한 경찰에 붙들리고만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이 극악무도한 연쇄살인사건으로 인해 총리 실종사건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5.

피타스에게 희생된 마지막 다섯 번째 희생자,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었던 가장 신선한 사체토막의 유전자 분석 결과, 그것이 총리 라마드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다. 실종된 총리가 연쇄살인마에게 끔찍하게 희생당했던 것이다.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피타스는 마지막 희생자 즉 총리를 납치한 곳이 리모브라스의 최고급 피부미용실 엘리시움이라고 자백했다. 공교롭게도 납치한 날 또한 다름 아닌 스페이스호 침몰 사건 당일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총리는 스페이스호가 소행성에 충격당해 보더인 300명이 우주미아가 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당시 피부미용실에 있었다는 반증했다.


거기다 조사 중인 시리 또한 엘리시움의 특별회원임이 드러났고, 엘리시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역시 총리 라마드와 시리에게 레이저 피부미용 시술을 했음을 증언했다. 총리는 평소에도 업무시간에 자리를 비우고 헬스장이나 피부미용실 따위를 수시로 들락거린 것으로 보였다. 심지어 시리와 함께 이용한 적도 많다는 증언 또한 속속 나왔다.


앞서 밝혔듯 두뇌에 주입된 나노봇은 한계가 있다. 깊은 의지 혹은 욕망 따위는 나노봇으로 어찌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라마드 총리의 그러한 변치 않고 남은 강렬한 의지나 욕망은 결국 허영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니 두뇌를 잠식당해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와중에도 저러한 미용시설만은 제 발로 찾아가곤 했던 것이다.


결국 드러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라마드 총리는 사건 당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업무시간 도중 홀로 집무실을 나섰다. 총리실에서 근무하는 자들 대다수가 라마드 총리의 이러한 업무시간 중 외유에 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거기다 라마드 총리는 비서실장이나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고, 홀로 움직일 때도 많았다. 이는 최대한 이런 식의 외유를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고, 시리와의 만남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홀로 찾은 엘리시움 피부미용실에서 서비스를 받던 도중, 스페이스호 침몰 소식을 듣게 된다. 당시 관리사의 증언에 의하면 총리는 받고 있던 나노주름관리 서비스를 모두 완료한 뒤에야 자리를 떴다고 한다. 그리고 때마침 엘리시움 피부미용실 근처를 탐색하던 살인마 피타스가 뒷문으로 홀로 나오는 한 중년의 여인을 보게 되고, 메타수트를 착용한 피타스는 손쉽게 총리를 납치하게 된다. 다음 수순은 같다. 피타스는 총리를 집으로 데려와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 냉장고에 유기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끔찍한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나 한편 행성의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온갖 중대사를 처리하는 권력자가 엄청난 위기상황에 고작 피부미용을 위해 사적으로 자리를 비웠다는 것 역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최고위 공직자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도덕과 윤리가 완전히 바닥에 추락한 것이다.


허나 이제 죄를 따져 물을 라마드는 죽고 없었다. 허나 시리는 불법적으로 최고 권력자를 조종한 혐의와 각종 뇌물수수 및 이권행사에 대한 죄를 물어 보더 법정 최고형인 영원한 징역형을 받았다.


한편 피타스는 다섯 건의 살인에 대해 모두 유죄가 선고되었으나 피타스가 항소했다. 어쨌거나 중대한 시기에 사적으로 자리를 비우는 직무유기로 287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총리에 대한 살인은 인정할 수 없다고 따져 물은 것이다. 이는 큰 죄에 대한 작은 죄는 물을 수 없다는 보더의 법에 의거한 것으로 결국 법에 따라 마지막 총리 살인에 대해 피타스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허나 앞서 저지른 살인행각에 관해선 여지가 없어 모두 다시 유죄를 선고받아 시리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징역형에 처해졌다.


다행인 것은 총리 라마드가 피타스에게 당한 마지막 희생자였던지라 사체조각은 전부 회수되어 원래의 모습을 찾아 장례 정도는 제대로 치러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비록 커다란 과오를 범하고 참으로 불명예스런 죽음을 맞았지만, 보더의 법에 의거 죽은 자에게는 따로 죄를 묻지 않았으니 장례만은 전 총리에 대한 예를 갖춰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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