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채권관리사입니다

작가와 채무_연재를 마치며..

by 남지만 작가


나는 지금 경제적 자유라는 고지를 향해 분투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끝에 닿으려는 가장 간절한 이유는 오직 하나다.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내 안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꺼내놓는 '창작 활동'에만 온전히 내 삶을 전념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채권관리사다.
빚을 진 사람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그들의 심리를 잘 알고 그들에게 많은 시달림을 당하기도 한다.
나도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빠질 거 다 빠져 이달엔 남는 돈이 없지만 다음 달을 기약하고 또 열심히 일했다.
그렇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역시 마찬가지였다.
희망도 없고 의욕도 없었다.
계속 돌다 보면 구원의 빛은 꺼져 버렸다.
결국 파산이었다.
최근에는 파산, 개인회생, 신용회복위원회 등이 생겨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죽으란 법은 없다.
돈에 쪼들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거창한 계획도, 작은 계획조차도 생각뿐이지 실행할 수 없다.
돈에 쪼들리고 쫓겨 본 경험이 있었다면 알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오로지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그 궁리만 할 뿐이다.
오늘은 위대한 작가들의 빚에 대해 한번 들어가 보기로 한다.


문학과 예술의 역사를 통틀어, 위대한 작가들의 삶은 종종 빚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덮여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가난했던 것이 아니라, 창작을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해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이들에게 빚은 절망의 굴레였지만, 동시에 창작의 불씨를 지피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빚에 쫓기며 살았다.
그의 채무는 주로 도박 중독과 방만한 소비 습관, 그리고 가족 부양의 책임에서 비롯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1863년 룰렛 게임에 빠진 이후 1871년까지 도박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당포를 드나들고 빚에 쪼들리는 비참한 생활을 했다.
심지어 자신이 돈을 따고 도박장을 떠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모든 돈을 잃고 빚에 허덕이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의 작품 《도박꾼》은 이러한 자신의 경험과 심리 상태를 반영한 것이다.
그는 소설 집필로 상당한 돈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지니고 있지 못하는 낭비가 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돈이 생기는 대로 써버리는 소비 패턴은 그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1864년 아내와 형을 연이어 잃은 후, 그는 형의 유족을 포함한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까지 떠안게 되면서 빚이 더욱 불어났다.
도스토옙스키의 채무 문제 해결에는 두 번째 아내 안나의 역할이 매우 컸다.
안나는 도박 중독을 단순한 의지박약이 아닌 병으로 보고 남편을 이해하고 도왔다.
그녀는 채무자를 직접 만나 협상하고, 소설을 출판사에 위탁하는 대신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도입해 인세를 최대한 확보했다.
안나의 이러한 노력과 경제적 수완 덕분에 도스토옙스키는 점차 빚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돈의 자유를 갈망했으며,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는 그의 작품에도 깊이 투영되었다.
그의 소설에서는 돈의 가치와 돈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자주 다뤄지며, 돈이 지배하는 현실과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상적인 관계를 동시에 그리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그는 죽기 1년 전쯤 빚을 거의 정리했지만, 죽기 직전까지도 선금을 받기 위해 출판사에 편지를 쓰는 등, 평생 돈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과 도박으로 엄청난 빚을 졌다.
그는 도박판에서 밤을 새우고 재산을 탕진했으며, 이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영지 일부를 팔아넘기기도 했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던 그는 결국 글쓰기만이 유일한 탈출구임을 깨달았다.
도박 빚을 청산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소설이 바로 '전쟁과 평화'다.
그는 빚의 압박 속에서 나폴레옹 전쟁의 대서사를 구상했고, 치밀한 인물 묘사와 방대한 스토리를 완성했다.
어쩌면 빚이 없었다면, 톨스토이는 안락한 귀족의 삶에 만족하며 '전쟁과 평화'와 같은 걸작을 탄생시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빚은 단순한 재정적 곤경을 넘어, 인류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유산을 낳는 원동력이 되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화려한 생활과 무리한 투자로 인해 평생 빚에 허덕였다.
출판업, 인쇄업, 심지어는 은광 투자에까지 손을 댔다가 실패하면서 막대한 빚을 졌다.
빚을 갚기 위해 엄청난 양의 작품을 써야 했다.
그의 대표작인 '인간 희극' 시리즈는 그의 끊임없는 창작 욕구와 함께 빚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함에서 탄생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밤낮으로 글을 쓰며 하루에 16시간 이상씩 집필했다.

찰스 디킨스는 본인이 빚을 진 것은 아니지만, 그의 아버지가 빚 때문에 감옥에 갔던 경험이 있다.
어린 시절 겪었던 가난과 아버지의 채무로 인한 충격은 디킨스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같은 작품에서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은 이러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글쓰기 외에 다양한 사업에 투자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자동 식자기를 개발하는 회사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입었고, 이로 인해 파산 선언까지 했다.
그는 빚을 갚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며 강연 활동을 해야 했다.
그의 강연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덕분에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그의 후기 작품에 영향을 주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통찰을 담아내기도 했다.

제임스 조이스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율리시스'와 같은 대작을 집필하는 동안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많은 빚을 졌다.
조이스는 파운드, 헤밍웨이 등 다른 작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집필을 이어갔다.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경제적 궁핍함과 개인적인 고뇌가 녹아들어 있다.

채만식은 한국 근대 문학의 대표적인 풍자 작가로, 일제강점기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문학적 명성과 달리 무척이나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는 도박과 낭비벽 때문에 평생 빚에 시달렸다.
채만식은 돈을 버는 대로 아낌없이 썼다.
도박과 술을 좋아했고, 기생집을 드나들며 흥청망청 돈을 썼다.
작품을 써서 돈을 벌면 얼마 못 가 모두 탕진하곤 했다.
한 번은 돈을 갚지 못해 형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가 쓴 글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풍자와 자조적인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빚을 갚기 위해 신문사에 연재소설을 썼고, 돈이 급할 땐 짧은 소설을 여러 편 써서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채만식의 작품 '태평천하'에 등장하는 윤 직원 영감은 지주 계급의 탐욕을 보여주는데, 이는 작가 자신이 돈에 대한 집착과 빚으로 고통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풍자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단편 소설가 김유정은 짧은 생을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다.
그는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재산을 탕진하면서 극심한 빈곤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병든 몸으로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는 일이 잦았고, 이 빚은 그를 평생 따라다녔다.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기침이 나와 밤에도 잠 못 이루며 배가 고프다"는 절절한 내용이 담겨 있다.
'동백꽃', '봄봄' 같은 명랑하고 해학적인 작품들을 썼던 그의 이면에는 이처럼 지독한 가난과 빚이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작품 속에는 자신이 겪었던 빈곤과 시골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배고픔과 빚의 고통을 잊기 위해, 혹은 그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펜을 잡았고, 그 결과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단편들을 탄생시켰다.
김유정에게 빚은 단순한 채무를 넘어, 삶의 비극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효석은 '메밀꽃 필 무렵'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자연 묘사가 특징이지만, 그의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는 소설가로서는 명성을 얻었지만, 재정적으로는 안정되지 못했다.
특히 도박에 손을 대면서 빚이 쌓이게 되었다.
이효석은 낭만적인 삶을 꿈꿨지만, 현실은 빚과 가난으로 가득했다.
그는 빚을 갚기 위해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연재하고, 원고료를 미리 당겨 받는 일도 잦았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그의 작품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상은 폐결핵으로 총독부 기사 일을 그만둔 후, 다방을 차렸다.
'제비'와 '학'이라는 이름의 다방이었다.
그는 이 다방을 통해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자 했지만, 사업 수완이 없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사업을 시작할 때 자본이 필요했을 텐데, 이 과정에서 빚을 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평생 친구들의 도움에 의지하며 살았다.
그의 친구였던 화가 구본웅은 이상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이상이 도쿄로 건너갔을 때도 구본웅의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끊임없이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은 그에게 심적인 빚, 즉 채무감을 느끼게 했다.
당시 문인들은 글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특히 이상의 난해한 글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힘들었기 때문에, 인세나 원고료로 충분한 돈을 벌기 어려웠다.
그가 폐결핵으로 병상에 있을 때, 병원비는 그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고, 이는 그에게 갚아야 할 또 다른 빚으로 남아 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이상은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를 넘어,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는 채무 관계에 놓여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내면은 단순히 가난 때문만이 아니라, 빚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염상섭은 젊은 시절,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여러 신문사에 몸담았다.
그러나 그의 넉넉지 않은 수입은 늘어가는 가족의 생활비와 맞물려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그는 지인들에게 손을 벌리거나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리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특히 그의 방탕한 생활 습관, 술을 좋아하고 손님을 자주 맞이하는 기질은 빚을 더욱 불리는 원인이 되었다.
염상섭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당시 지식인들이 겪었던 궁핍과 좌절의 모습은 바로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소설 『삼대』는 염상섭의 채무 문제와 깊이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조부, 아버지, 그리고 손자 삼대에 걸친 가족의 갈등과 몰락을 다루는데, 작품 속 주인공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빚 문제는 염상섭 자신의 고뇌를 반영한 것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빚 때문에 고통받는 모습은 작가 본인의 삶과 겹쳐 보인다.
염상섭은 빚을 갚기 위해 작품 활동에 매달리기도 했지만, 글쓰기만으로는 늘어가는 빚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염상섭은 해방 이후 한국 전쟁을 겪으며 잠시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기도 했지만, 종전 후 서울로 돌아와 활발한 문학 활동을 이어간다.
특히 1950년대에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는 등 문단의 원로로서 존경받았으며, 이때부터는 경제적으로도 점차 안정을 찾게 된다.
그의 말년은 젊은 시절을 괴롭혔던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 비교적 평온했다고 전해진다.
염상섭의 삶은 한때 빚에 쫓겨 불안정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작가로 기억된다.

'토지'라는 거대한 대하소설을 완성한 대작가 박경리 역시 평생을 빚과 싸웠다.
그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글을 쓰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녀는 원고료를 미리 받는 선인세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글을 썼고, 늘 다음 작품의 마감일에 쫓기는 삶을 살았다.
특히 '토지'를 집필하던 시기에는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렸다.
그녀는 빚을 갚기 위해 신문 연재소설을 매일 마감해야 했고, 때로는 여러 편의 원고를 동시에 쓰기도 했다.
"내게 글쓰기는 숨 쉬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지만, 그 숨 쉬는 행위는 빚이라는 압박 속에서 더욱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과 치열함이 있었기에, 한국 근현대사의 모든 것을 담아낸 '토지'와 같은 위대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박경리에게 빚은 단순한 채무가 아니라, 인내와 성실함의 증표였고, 거대한 역사의 서사를 완성하게 한 힘이 되었다.

이처럼 작가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다양하다.
작품 활동만으로는 충분한 수입을 얻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출판 계약금이나 인세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부족한 경우가 있다.
또한, 작품 활동 외의 다른 사업을 시도하다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가지, 남자 작가들의 방탕한 생활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채무와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렸으며, 이는 그들의 작품 세계와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때로는 작품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작가를 깊은 고통에 빠뜨리기도 했다.​


지금도 순수 문학 작가들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웹툰이나 웹소설 작가들도 양극화가 심하지만, 순수 문학 분야는 특히나 생계유지가 힘든 경우가 많다.
순수 문학 작가들의 주요 수입원은 책 판매로 인한 인세와 원고료다.
그런데 책 시장의 불황으로 인해 판매 부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과거에는 밀리언셀러가 드물지 않았지만, 지금은 1만 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로 인정받을 만큼 독자층이 얇아졌다.
신인 작가의 경우, 초판 1쇄(1,000~2,000부)가 모두 팔리지 않아 재고로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반적으로 작가에게 돌아가는 인세는 정가의 10% 내외다.
책 한 권의 정가가 15,000원이라면 작가에게는 1,500원 정도가 돌아오는 셈이다.
책이 한 권 팔릴 때마다 겨우 1,500원씩 버는 셈이니, 수입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문예지 등에 실리는 시나 소설 원고료 역시 생계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시 한 편에 5만~15만 원, 단편소설은 80만~120만 원 수준이다.
계간지에 꾸준히 작품을 실어도 연간 수입이 500만 원을 넘기기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순수 문학 작가들은 다른 직업이나 부업을 병행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한 조사에 따르면, 문학 활동만 하는 전업 작가의 연평균 수입은 약 1,189만 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다른 직업을 겸하는 작가는 이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유명 소설가는 "상상에는 돈이 든다"라고 말하며, 소설의 소재를 얻기 위해 자료 조사에 수천만 원을 썼지만, 정작 소설은 적자를 기록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처럼 작품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은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꺾는 큰 요인이다.
한 조사에서 가장 연봉이 낮은 직업 1위로 시인이 꼽히기도 했다.
시인의 연평균 소득은 542만 원, 한 달 평균 수입이 45만 원 수준으로, 소득 상위 시인일지라도 한 달에 50만 원밖에 벌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통계도 있다.
이처럼 순수 문학 작가들은 명예와 예술적 가치에 비해 경제적인 보상을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노벨상이나 유명 문학상 수상 등 극히 일부의 성공 사례를 제외하면, 창작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연재를 마치며..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빚’이라는 단어를 가까이서 마주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조용히 지나가는 소나기 같은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을 통째로 흔드는 폭풍
이 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빚을
싫어하면서도 결국 빚과 함께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고,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돈을 빌리고, 심지어 카드 한 번 긁는 순간에도 우리는 작은 빚 하나를 만들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은 어쩌면 ‘작은 빚들의 연속’
인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한 채무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관리사님, 저는 왜 이렇게 빚이 많을까요?”
그의 얼굴에는 죄인 같은 표정이 떠 있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되물었습니다.
"혹시 집 있으세요?”
"네… 대출이지만요.”
"차는요?”
"있습니다… 그것도 할부지만요.”
나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축하드립니다. 평범하게 사는 겁니다.”
그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사실 빚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묘한 존재입니다.
나쁜 것 같지만, 또 완전히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세상에 빚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누군가는 평생 집을 살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고,
누군가는 가게 하나 열지 못할 것이며, 누군가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빚이 미래의 시간을 미리 당겨 쓰는
제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서 조금 빌려 쓰는 것.
그게 바로 빚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그다음에 생깁니다.
미래의 내가 생각보다 부자가 아닐 때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내년에는 괜찮아질 거야.’
'이번 사업만 잘 되면 금방 갚을 수 있어.’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오면 해결될 거야.’
그런데 인생이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계획표를 싫어합니다.
월급은 늘 그대로인데 지출은 계획보다 빨리 늘어나고, 사업은 계획보다 늦게 풀리며, 인생은 계획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갑니다.
그때부터 빚은 조용히 모습을 바꿉니다.
처음에는 도움을 주던 친구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뒤에서 팔짱을 끼고 따라오는 채권자처럼 느껴집니다.
그래도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채권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빚 때문에 망하는 경우보다, 빚 때문에 다시
살아나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빚을 갚기 위해 새벽에 일을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빚 때문에 술을 끊었으며, 어떤 사람은 빚 덕분에 처음으로 돈의 무게를 배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빚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치 운동할 때 드는 아령처럼 말입니다.
무겁지만 그 무게를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근육이 생깁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빚은 우리 인생에서 완전히 없애야 할 존재라기보다
조심해서 다뤄야 할 도구에 가까운 것 아닐까 하고.
칼이 위험하지만 요리를 만들기도 하듯이,
불이 위험하지만 세상을 따뜻하게 하듯이,
빚 역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망치기도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빚의 크기가 아니라 그 빚을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빚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
그리고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일어나는 사람.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출발점은 똑같습니다.
다만 어느 쪽으로 걸어가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는 돈을 빌리고,
누군가는 돈을 갚고,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합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빚을 지고, 갚고,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됩니다.

현업의 분주한 일상을 살아내느라, 독자분들께서
건네주신 소중한 댓글들에 일일이 답글 하지 못한 채 늘 미안함을 품고 지냈습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과 집필의 문턱을 오가며 드디어
연재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들에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이제는 비로소 한 걸음 물러나 제가 걸어가야 할 다음 길을 신중히 그려보려 합니다.
​부족한 문장들 위로 넘치도록 부어주신 성원과 격려, 잊지 않겠습니다.
그 과분한 사랑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고개 숙여
진심 어린 큰절을 올립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