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는 왜 그랬을까
벚꽃이 지고 있었다.
미타카의 좁은 골목 끝, 오래된 하숙집 처마 밑으로 연분홍 꽃잎이 비처럼 흩날렸다.
바람은 아직 겨울의 냄새를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 차갑고 날카로운 기세로 종이문 틈을 파고들어 스며들었다.
방 안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낡은 다다미 위, 낮은 책상 앞에 앉아 그는 원고지에 연필을 바쁘게 놀리고 있었다.
스탠드 불빛은 위태롭게 노랗게 떨렸고, 그 빛 아래서 그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마치 벽에 위태롭게 매달린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한 번 기침을 내뱉었다.
목구멍 안쪽에서 비릿한 쇳내가 울컥 올라왔다.
하지만 그는 결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연필 끝이 종이를 거칠게 긁는 소리만이, 정적에 잠긴 방 안의 유일한 음악이었다.
그의 이름은 다자이 오사무였다.
그러나 그 이름은,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의 본명은 쓰시마 슈지.
일본의 북단 아오모리에서 태어난, 거대한 지주 집안의 막내아들이었다.
그의 고향 집에는 방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복도를 따라 끝없이 걸어도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만큼 넓고 거창한 저택이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방들 중에서, 어린 슈지가 진정으로 마음 편히 잠들 수 있는 공간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어머니는 늘 병석에 누워 계셨고, 아버지는 정계 일을 이유로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그를 업어 키운 것은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하인들이었다.
하인의 품은 분명 따뜻했지만, 그 온기는 언제나 잠시 빌려온 것에 불과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집에서 자신은 사랑받는 아이가 아니라, 그저 엄격하게 잘 관리되어야 할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는 웃음을 배웠다.
식구들 앞에서, 손님들 앞에서, 그리고 하인들 앞에서까지 그는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른들이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면, 그는 그제야 비로소 안도했다.
“역시 귀여운 아이다.”
그 한마디가 들려올 때, 그는 비로소 막혔던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밤이 깊어 방 안이 조용해지면, 연기처럼 피어오르던 웃음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이불속에서 홀로 생각했다.
‘내가 웃기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그 질문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평생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괴롭혔다.
도쿄로 올라온 뒤, 그는 처음으로 기묘한 자유를 느꼈다.
대학의 강의실은 그에게 너무나 밝았고, 모든 것이 지나치게 또렷했다.
대신 그는 어둑한 술집과 습한 다다미방을 더 좋아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조금 더 솔직해졌기 때문이다.
술에 취하면 모두가 숨겨두었던 어딘가 망가진 모습을 드러냈다.
그 파괴적인 모습이, 그는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친구들 앞에서 늘 광대를 자처하며 웃음을 주었다.
일부러 바보 같은 행동을 골라하고, 과장된 몸짓으로 농담을 던졌다.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어댔다.
“슈지는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야.”
그 찬사 아닌 찬사가 들릴 때마다, 그는 잠시 안도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텅 빈 골목에 홀로 서 있으면 웃음은 금세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그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의 자신과, 혼자 있을 때의 자신이 전혀 다른 존재처럼 느껴져 괴리감에 몸서리쳤다.
그는 어느 날, 한 연인과 함께 강으로 향했다.
깊은 밤이었다.
강물은 잔잔했고, 검은 거울처럼 세상의 모든 빛을 삼키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물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발목을 적시고, 무릎을 지나, 허리를 넘어 가슴까지 차올랐다.
그 절박한 순간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마치 아주 오래전 떠나온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처럼.
그러나 그날, 죽은 것은 연인이었고 그는 비겁하게 살아남았다.
병원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살아 있다는 잔혹한 사실이, 도리어 죽음보다 더 괴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부터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장난처럼 썼다.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세상을 비꼬는 냉소적인 이야기들을 적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종이 위에는 억지로 지어낸 웃음 대신, 절절한 고백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비겁함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거짓말과 방탕함, 질투와 추함까지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적었다.
사람들은 그의 글을 읽고 큰 충격에 빠졌다.
“이건 너무 솔직한 거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그 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처절한 문장들 속에는 단 한 줌의 거짓도 섞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날, 한 문학상을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당대 최고의 영예인 아쿠타가와상이 었다.
그 상을 받으면, 자신도 비로소 세상에 인정받는 작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쓰라린 탈락이었다.
첫 기회에서 심사위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다자이의 문학보다 그의 문란한 사생활을 먼저 꾸짖으며 낙선시켰다.
이에 격분한 다자이가 "찌르러 가겠다"며 독설을 퍼부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두 번째는 심사위원에게 편지를 썼다.
'이번에 상을 받지 못하면, 저는 정말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 편지에는 자존심도, 일말의 체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은 거의 구걸에 가까운 애원이었다.
그러나 그 편지는, 어쩌면 그가 평생 세상에 대고 하고 싶었던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제발 좀 좋아해 달라’고 말이다.
그의 삶에는 죽음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는 생애 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스스로 삶을 등지려 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염세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하며 불렀다.
그러나 사실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살고 싶어 했다.
단지, 자신이 이 땅에 살아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는 늘 누군가와 함께 죽으려 했다.
혼자서는, 그 거대한 죽음의 무게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나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세상은 늘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밀어냈다.
죽음조차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가 살아남아 숨을 몰아쉴 때마다, 원고지의 양은 늘어만 갔다.
그의 문장들은 사실, 죽음으로부터 잠시 빌려온 유예된 시간들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도쿄는 잿더미 위에서 다시 처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구하고, 무너진 집을 짓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 처절하게 애썼다.
그러나 다자이는 더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생의 에너지를 쥐어짜 《인간 실격》의 집필에 매달렸다.
1948년 3월, 그는 아타미의 여관으로 거처를 옮겨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갔다.
이미 폐결핵은 악화되어 수시로 피를 토했지만, 그는 마치 죽음과 경주를 하듯 펜을 멈추지 않았다.
아타미에서 오미야로 다시 자리를 옮기며 이어진 집필 과정은 그 자체로 처절한 자기 고발의 연속이었다.
식욕은 사라졌고, 잠조차 이룰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파헤쳐 종이 위에 수놓았다.
그는 피를 토하는 각혈을 하면서도 원고를 붙들었다.
기침을 할 때마다 하얀 종이 위로 붉은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졌다.
그는 그것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다시 연필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1948년 5월, 마침내 세상에 나온 것이 바로 《인간 실격》이었다.
주인공 요조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 문장은 사실, 다자이 본인이 평생을 바쳐 토해낸 마지막 고백이었다.
1948년 초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 공기는 습기를 가득 머금은 채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한 여인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간신히 기대고 있었지만, 그 의지는 어딘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어느 깊은 밤, 그는 그녀와 함께 마지막 집을 나섰다.
비가 조용히, 마치 흐느끼듯 내리고 있었다.
다마강의 물줄기는 어둠 속에서 검게 흐르고 있었다.
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잠시 흐르는 물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그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며칠 뒤, 두 사람의 시신이 차가운 강가에서 발견되었다.
그들은 밧줄로 서로의 몸을 단단히 묶은 채였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
자신의 생일이 막 지난 직후였다.
그가 육신을 버리고 떠난 뒤에도, 그의 문장은 이 땅에 남았다.
독한 술 냄새가 배어 있고, 뜨거운 눈물 자국이 번져 있는 듯한 문장들.
그러나 그 속에는 결코 변치 않는 진실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방황하는 이들이 그의 책을 펼친다.
사람들 속에서 지독한 소외감을 느끼는 날,
자신이 어딘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지는 어두운 밤,
세상이 지나치게 또렷하고 밝아서 숨이 막혀올 때.
그때 다자이의 문장은 조용히 독자의 옆에 다가와 앉는다.
“괜찮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책을 덮으면, 세상은 여전히 무심하게 그대로다.
아침은 다시 오고, 사람들은 출근을 서두르며, 전차는 제시간에 맞춰 플랫폼에 도착한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이전과 다른 작은 온기가 남는다.
어쩌면 그는 인간이 되지 못한 비참한 패배자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근원적인 부끄러움과 슬픔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은 채 그 심연 속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간 단 한 명의 순례자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무덤가에 누군가 두고 간 빨간 앵두처럼,
그의 문장은 오늘도 누군가의 차가운 가슴 위에서
조용히, 그러나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