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포보, 그 마지막 간이역에서 내린 한 인간
"나 이제 가노라,
나의 시간이 다 하였노라.
땅은 나를 돌려보내고
하늘은 나를 불러 이끄노라.
많은 것을 보았고,
더 많은 것을 알지 못했으며,
사랑을 알았고,
진리를 향해 걸었노라.
모든 것을 버리고
이제는 모든 것을 품으러 가노라.
죽음이여,
너는 나의 문이로다.
영원한 생명의 문이로다."
1910년 10월의 어느 깊은 밤,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 위로는 시린 서리가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야스나야 폴랴나의 드넓은 저택은 죽은 듯 고요했고, 창문마다 짙은 어둠이 덧칠해져 있었다.
그 적막을 깨고 여든두 살의 한 노인이 조용히 집을 나섰다.
그의 이름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라는 거대한 문학적 금자탑을 쌓아 올린 세계적인 문호였다.
그러나 그 밤,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노인의 모습에서 위대한 작가나 고귀한 백작의 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그저 평생을 바쳐 진리를 갈구하다 하얗게 세어버린, 고독한 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의 시작은 남부러울 것 없는 화려함이었다.
1828년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는 슬픔을 겪었으나, 부와 신분이라는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자라났다.
젊은 시절의 그는 방탕한 생활에 몸을 던졌고, 도박과 사치, 그리고 군 생활의 혼돈 속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방황의 끝에서 그는 펜을 들었다.
전쟁터에서 목도한 삶과 죽음의 참상은 그의 문장에 피와 살을 입혔고, 마침내 인류의 고전이라 불리는 『전쟁과 평화』를 탄생시켰다.
러시아의 역사와 인간의 운명을 한데 엮은 이 거대한 서사는 그를 단숨에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이어지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그는 인간의 욕망과 위선을 날카롭게 해부하며 명성의 정점에 도달했다.
하지만 영광이 깊어질수록 그의 내면에는 거대한 공동(空洞)이 생겨났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일기에 절박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사는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이 질문은 지적인 호기심이 아니라 생존을 뒤흔드는 고통이었다.
그는 실제로 삶의 허무를 견디지 못해 집 안의 밧줄을 치우고 총을 숨길만큼 극심한 절망에 빠졌다. 세계가 우러러보는 문학적 성공도, 넘치는 부도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허무 앞에서는 한 줌의 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이 처절한 고백을 『참회록』에 담아내며, 스스로를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이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절벽 끝에 선 그를 구원한 것은 놀랍게도 그가 거느리던 농민들이었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으나 삶을 순명(順命)하며 평온하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톨스토이는 물었다.
“당신들은 어찌 그리 평온할 수 있소?”
농민들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저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이 소박한 믿음은 톨스토이의 영혼을 강타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담은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썼다.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 미하일의 눈을 통해, 사람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진리를 세상에 전했다.
그는 다시 성서를 펴 들었고, 특히 산상수훈의 가르침—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며, 폭력에 저항하지 말라는 메시지—에서 인간이 걸어가야 할 윤리적 등불을 발견했다.
그에게 예수는 신비로운 기적의 주체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를 몸소 실천한 위대한 삶의 스승으로 다시 태어났다.
신념이 바뀌자 삶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화려한 귀족의 의복을 벗어던지고 투박한 노동자의 옷을 입었다.
직접 밭을 갈고, 나무를 패고, 구두를 기우며 농민들과 나란히 서서 땀을 흘렸다.
사치스러운 식탁을 거부하고 마차 대신 두 발로 걷는 길을 택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모든 저작권을 포기하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다.
이 지점에서 그의 가장 가까운 반려자인 아내 소피아와의 비극적이고도 처절한 심리적 대립이 시작되었다.
48년을 함께하며 열세 명의 아이를 낳고, 남편의 악필 원고를 일곱 번이나 정서하며 가문을 지켜온 그녀에게 남편의 '성자 되기'는 성스러운 행보가 아닌, 무책임한 파멸로 보였다.
소피아는 남편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며 그의 변해가는 사상에 경악했고, 톨스토이는 아내의 시선을 피하려 자신의 진심을 숨긴 별도의 일기를 썼다.
"당신은 성인(聖人)이 되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굶주리게 될 거예요!"
소피아의 절규는 현실의 비명이자 가족을 향한 처절한 모성애였다.
반면 톨스토이에게 아내는 자신의 영혼이 진리를 향해 비상하는 것을 막는 무거운 모래주머니와 같았다.
두 사람 사이엔 더 이상 대화가 아닌 날카로운 의심과 원망만이 오갔다.
소피아는 남편이 전 재산을 포기하겠다는 유언장을 쓸까 봐 밤낮으로 그를 감시했고, 톨스토이는 밤마다 아내가 자신의 서류를 뒤지는 소리에 가슴을 졸이며 절망했다.
사랑했던 연인은 이제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는 적이 되어버렸다.
야스나야 폴랴나는 더 이상 평화로운 숲의 저택이 아니라, 두 영혼이 서로를 할퀴는 숨 막히는 감옥이었다.
1910년 10월 28일 밤, 마침내 노인은 결단했다.
아내가 잠든 사이, 그는 떨리는 손으로 외투를 걸치고 성서 한 권만을 챙긴 채 연기처럼 집을 빠져나왔다.
그것은 위대한 사상가의 거창한 출가가 아니라, 한 노인이 감당할 수 없는 갈등으로부터 도망친 처절한 탈출이었다.
세속의 모든 인연과 증오의 굴레를 뒤로하고 고요한 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싶었으나, 여든두 살의 노구에 겨울의 문턱을 넘는 기차 여행은 가혹했다.
기차 안에서 시작된 고열과 폐렴은 그의 의식을 흐려놓았고, 결국 기차는 시골의 작은 간이역인 아스타포보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역장의 작고 초라한 방으로 옮겨졌다.
낡은 침대와 희미한 등불만이 놓인 그 소박한 방은, 역설적으로 그가 평생 갈구했던 '무소유의 안식처'를 닮아 있었다.
위대한 문호가 이름 없는 역에서 죽어간다는 소식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고, 문 밖은 기자와 의사들로 북적였지만, 방 안의 그는 오직 창밖의 고요만을 응시했다.
비극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소피아는 특별 열차를 타고 아스타포보에 도착했지만, 제자들과 의사들은 남편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녀의 출입을 철저히 막았다.
그녀는 남편이 누워 있는 창문 밖에서 까치발을 들고 안을 들여다보며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11월 7일 새벽, 톨스토이가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도 두 사람은 끝내 마주 앉아 화해의 말을 나누지 못했다.
평생 사랑과 용서를 설파했던 대문호의 마지막은 정작 가장 사랑했던 이와의 불화라는 지독한 아이러니 속에 머물렀다.
그가 남긴 숱한 문장 속에서 우리는 이런 고백을 읽어낼 수 있다.
“나는 많은 것을 보았으나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랑을 알았고, 늘 진리를 향해 걸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삶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다.
가족과의 불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죽음의 순간까지 그를 괴롭힌 가시였다.
그러나 그는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질문했다.
그의 무덤은 야스나야 폴랴나의 숲 속에 있다.
화려한 비석도, 십자가도, 이름조차 새겨지지 않은 그저 작은 흙무덤이다.
그곳은 그가 어린 시절 '행복의 비밀이 묻혀 있다'라고 믿으며 뛰놀던 장소였다.
백작으로 태어나 농민의 무덤을 택했고, 거장이었으나 무명의 방랑자로 죽기를 원했던 톨스토이.
그의 마지막 여정은 비록 추운 간이역에서 끝났지만, 그것은 길고 긴 여행을 마친 나그네가 비로소 모든 애증을 내려놓고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는 평온한 뒷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