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쉴레

'영혼을 그린 화가'라고 하지만 그는 쓰레기였다

by 남지만 작가


1890년대의 툴른, 기차역장 아버지를 둔 소년 에곤은 유난히 창백한 피부를 가졌다.
소년은 또래들과 뛰어노는 대신 역무실 구석에 앉아 미친 듯이 연필을 굴렸다.
소년이 그리는 것은 기차의 외형이 아니었다.
거대한 쇳덩이가 마찰하며 뿜어내는 비명 같은 증기, 그리고 그 열기에 일그러진 공기의 형상이었다.
​아버지는 매독으로 미쳐갔다.
밤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집안의 가구들을 때려 부쉈다.
어린 에곤은 문틈으로 그 광기를 훔쳐보았다.
공포보다는 기묘한 흥분이 앞섰다.
인간의 정신이 무너져 내릴 때 드러나는 그 추악한 본질, 그것이 에곤이 처음으로 마주한 '진실'이었다.
아버지가 전 재산을 불태우고 피를 토하며 죽었을 때, 에곤은 슬퍼하는 대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엔 아버지의 광기를 닮은 자신의 눈동자가 번뜩이고 있었다.

<자화상> 비틀린 신체와 날카로운 눈빛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과 고독을 가감 없이 드러낸 자기 고백적 기록

빈 예술 아카데미의 교실은 에곤에게 거대한 감옥이었다.
"석고상의 선을 따라라", "비례를 맞춰라." 늙은 교수들의 훈수는 쓰레기 같았다.
에곤은 학교를 뛰쳐나와 자신만의 모델을 찾았다.
가장 먼저 그의 사냥감이 된 것은 친여동생 게르티였다.
​"옷을 벗어, 게르티. 더 기괴하게 몸을 비틀어봐."
​열두 살 소년과 여동생은 빈의 싸구려 호텔 방을 전전했다.
에곤은 동생의 미성숙한 몸을 관찰하며 선을 그었다.
그것은 오빠의 시선이 아닌, 포식자의 시선이었다.
근친상간의 소문이 빈의 골목을 핥고 지나갔지만, 에곤은 당당했다.
그는 동생의 알몸을 통해 자신의 혈관 속에 흐르는 '저주받은 피'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는 지독한 자기애에 빠진 '거울 공주'였고, 동생은 그 거울을 비추는 도구에 불과했다.
​당대 빈의 태양은 구스타프 클림트였다.
클림트는 에곤의 천재성을 사랑했지만, 그 안에 도사린 뱀 같은 영악함을 간과했다.
에곤은 클림트의 화실에서 눈부신 금발의 모델 발리 노이질을 발견했다.
그녀는 클림트의 은밀한 연인이었지만, 에곤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가로챘다.
"클림트는 너를 장식품으로 그리지만, 나는 너의 고통을 그릴 거야."

<발리 노이질의 초상> 영원한 뮤즈이자 연인이었던 발리의 복잡미묘한 감정과 연약한 내면을 뒤틀린 선과 강렬한 눈빛으로 담아낸 걸작

열일곱의 발리는 에곤의 그 치명적인 독설에 매료되어 짐을 쌌다.
둘의 동거는 처절했다.
에곤은 돈이 생기면 최고급 맞춤 정장을 해 입고 카페에서 귀족 흉내를 냈지만, 화실로 돌아오면 발리에게 마른 빵조차 주지 않았다.
발리는 낮에는 빨래를 하고 밤에는 에곤의 뒤틀린 욕망을 받아내는 모델이 되었다.
에곤은 발리의 몸을 캔버스 위에서 난도질했다.
그녀의 눈은 휑하게 비었고, 피부는 멍든 것처럼 푸르스름하게 칠해졌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타인을 파괴함으로써 증명받고 싶은 에곤의 비틀린 자아실현이었다.
​에곤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마을의 어린 소녀들을 작업실로 불러들여 누드화를 그렸다.
결국 그는 미성년자 유인 혐의로 체포되어 차가운 감옥 바닥에 던져졌다.
세상 모두가 그를 '성도착자'라며 침 뱉을 때, 발리만이 매일 오렌지를 들고 면회를 왔다.
에곤은 감옥 벽에 침을 발라 그림을 그리며 버텼다.
​석방되던 날, 에곤은 발리의 손을 잡으며 영원을 약속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엔 이미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화가로서 성공하려면 발리 같은 '천한 모델'은 걸림돌이었다.
그는 화실 건너편 집에 사는 중산층 자매, 에디트와 아델레를 동시에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쇼핑하듯 두 자매를 저울질했고, 결국 좀 더 고분고분한 에디트를 신부로 점찍었다.
​"발리, 우리 계약서를 쓰자.
나 결혼은 에디트랑 할 건데, 일 년에 딱 한 번씩은 나랑 여행 가서 자는 거야. 알았지?"
​발리는 대답 대신 에곤의 얼굴에 침을 뱉고 떠났다.
에곤은 황당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정말로 자신의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믿는 소시오패스였다.

<죽음과 여인> 쉴레는 이 그림에서 과거의 연인이었던 발리 노이질과의 이별을 투영, 예술가의 고통스러운 사적인 서사가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

결혼 후 에곤은 승승장구했다.
에디트의 배경은 그를 상류사회로 이끌었고, 그의 그림값은 치솟았다.
발리가 전쟁터에서 병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잠시 충격을 받은 듯했으나 곧바로 붓을 들었다.
슬픔조차 그에게는 예술적 영감의 재료일 뿐이었다.
​1918년, 전설적인 살인마 '스페인 독감'이 빈을 덮쳤다.
임신한 아내 에디트가 먼저 쓰러졌다.
에디트가 고열로 신음하며 죽어갈 때, 에곤은 눈물을 흘리는 대신 스케치북을 폈다.
아내의 일그러진 얼굴, 가느다란 호흡, 죽음의 문턱에서 파들 거리는 손가락...
그는 아내의 임종을 관찰하며 선을 그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도덕마저 예술이라는 괴물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준 셈이었다.

<가족> 에곤 쉴레와 그의 아내 에디트. 당시 임신 중이었던 에디트가 독감으로 사망하고 사흘 뒤 쉴레 본인도 생을 마감하면서, 그림 속 아이는 끝내 현실에서 태어나지 못했음

사흘 뒤, 에곤 쉴레 본인 역시 독감에 걸려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고작 스물여덟.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병든 얼굴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에곤 쉴레가 남긴 그림들은 여전히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 선들은 너무나 날카로워 보는 이의 심장을 벤다.
사람들은 그를 '영혼을 그린 화가'라고 칭송하지만, 사실 그는 그저 자신의 지독한 이기심과 비정상적인 욕망을 숨기지 않았던 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가 그린 것은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가죽 아래 숨겨진 추악하고 비릿한 본능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추악함 속에서 기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에곤 쉴레는 죽었지만, 그가 캔버스에 박아 넣은 그 뒤틀린 괴물들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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