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죽음을 부르는 선율, 그 기묘한 일요일의 기록

by 남지만 작가


그 노래는 이상할 만큼 사람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천천히 사람을 심연으로 끌어내렸다.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이유 없이 죽고 싶어 진다는 괴담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곡이다.
헝가리에서만 157명, 전 세계적으로는 수백 명이 이 곡과 얽힌 채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이 노래를 ‘자살의 노래’라 불렀다.

이 기묘한 곡은 1933년, 부다페스트 도하니 거리의 한 작은 술집 ‘쿨러치(Kulacs)’에서 태어났다.
그곳에는 셰레시 레죄(Seress Rezső)라는 남자가 있었다.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적도, 악보를 제대로 그릴 줄도 몰랐던 그는 그저 피아노 앞에 앉아 삶을 버티듯 연주하던 무명 음악가였다.
헝가리식 이름 순서대로라면 ‘셰레시’가 성이고 ‘레죄’가 이름이지만, 훗날 세상은 그를 서구식 이름인 ‘레죄 셰레시’로 기억하게 된다.
​그는 멜로디를 직조할 줄은 알았으나 그것을 기록할 능력은 없었다.
결국 음악 아카데미 출신의 어라니 코르넬에게 부탁해 곡을 완성했다.
문제는 그 선율이 지나치게 어두웠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헤어진 연인이 쓴 가사를 붙여 출판사에 보냈지만, 분위기가 너무 침잠되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는 다시 라슬로 야보르의 시집 『슬픈 일요일』에 실린 시를 가사로 채택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당시 세상은 이토록 짙은 우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래는 사라지지 않았다.
1935년, 가수 팔 컬마르(Pál Kalmár)가 이 곡을 녹음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온 선율은 대중의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느릿하고 낮게 가라앉는 음색, 어딘가로 끝없이 침잠하는 듯한 감정.
그리고 그때부터 기이한 사건들이 잇따랐다.
​한 소녀가 음독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그녀의 곁에는 이 노래의 악보가 놓여 있었다.
​며칠 뒤, 한 재무부 관리가 택시 안에서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유서는 없었으나 피로 얼룩진 〈글루미 선데이〉 악보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 바에서 한 신사가 이 곡을 신청해 감상한 뒤, 조용히 밖으로 나가 스스로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도나우강에서 인양된 열네 살 소녀의 시신은 이 노래의 레코드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신문은 이 곡을 ‘살인곡’이라 대서특필했다.
사람들은 이 노래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죽음을 부르는 주술이라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은 창작자의 삶마저 무너뜨렸다.
명성을 얻은 셰레시 레죄는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을 취했다.
성공한 음악가가 되었으니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튿날,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단 한 줄만이 적혀 있었다.
​“글루미…… 선데이.”
​사태가 심각해지자 헝가리 당국은 라디오 송출을 금지했고, 영국 BBC 역시 가사를 제거한 연주곡만 허용하다가 결국 전면 금지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루이 암스트롱, 프랭크 시나트라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에 의해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어디에서든 비슷한 비극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원인을 찾으려 애썼다.
누군가는 특정 음의 조합이 인간의 감정을 뒤트는 ‘치명적 주파수’를 언급했고, 누군가는 시대를 탓했다.
당시 세계는 대공황과 전쟁의 전조로 뒤덮여 있었다.
국토를 잃고 실업자가 넘쳐나던 헝가리에서,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 노래는 무너지기 직전의 등을 떠민 ‘마지막 한 줄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셰레시 레죄 역시 그 시대의 비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전쟁 중 어머니를 잃고 자신도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다.
그를 살린 것은 뜻밖에도 〈글루미 선데이〉였다.
그가 이 곡의 작곡가임을 알아본 군인이 그를 풀어준 것이다.
수많은 이를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노래가 정작 창작자의 목숨은 구한 셈이다.
​그러나 전쟁 후에도 그의 삶은 회복되지 않았다.
저작권료는 묶여 있었고 시대는 그를 잊어갔다.
결국 1968년, 그는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한 번의 자살 시도 끝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곳에서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마지막은 그가 만든 노래만큼이나 고요하고도 쓸쓸했다.

지금도 부다페스트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가 연주하던 식당 ‘키슈피파(Kispipa)’에서는 여전히 이 노래가 흐른다.
도나우강의 자줏빛 노을 속에서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잠시 현실을 잊고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이제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이 노래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끈 것일까,
아니면 죽음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 이 노래에 기댄 것일까.
​답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글루미 선데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가장 깊은 어둠을 가만히 두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