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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정 Nov 26. 2017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퇴사일기, 열일곱 번째 : 일상을 여행처럼 즐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예쁜 카페에서 커피만 마셔도 여행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매 순간 여행자의 태도로 살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에서 기꺼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삶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정혜윤, <여행, 혹은 여행처럼>  

서점을 돌아보는 중 저 문구 하나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남이 쓴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할 때마다 작은 노트 한 권을 새로 사서 그 여행만의 일기장을 만든다. 어릴 때는 단순히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했고, 최근에는 여행하면서 느낀 감상이나 생각들을 두서없이 써 내려갔다. 여행마다 콘셉트는 다르더라도 일기는 꼭 쓴다. 마지막으로 하는 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의 마지막 감상을 쓰는 것이다. 최근 긴 여행을 마치며 지난 여행 일기를 다시 읽었다. 비행기에서 쓴 마지막 일기에 모두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자."

여행을 떠나면, 모든 순간이 특히 소중해진다. 내가 걷는 걸음 하나하나가 그곳에서 내디딜 수 있는 마지막 걸음이다. 오늘 이 순간이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밴쿠버 장기 여행 중에는 모든 관광지를 거의 다 돌아보고 새로이 할 게 없는 데도 일부러 밖에 나가서 바다 한 번 더 보고, 커피 한 잔 더 마시곤 했다. 그래서 여행으로 충만한 감성을 채우고 돌아오는 길에 늘 생각했다. 일상도 여행처럼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좋지 않겠냐고.  

여행에서 돌아온 지 3주가 조금 넘은 지금, 그 다짐은 또 다음 여행으로 미뤄야겠다 싶을 정도로 게으른 삶을 살고 있다. 매일 보는 그 풍경, 내일 봐도 되고, 내일도 있으니 오늘을 쉰다. 집순이의 행복을 누린다는 핑계로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정오가 다 되어가도록 침대에서 꼼지락거리다 문득 정신이 번쩍 들어 몸을 일으켰다. 내가 만약 서울을 여행 중이었다면, 난 이미 집 앞이라도 산책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있었을 텐데!  

인간은 왜 익숙해질수록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나에게 지금 누리고 있는 백수의 삶은 소중하다. 29살의 나이에 일하지 않고, 아직은 잔고에 대한 아주 큰 걱정 없이 이렇게 무위도식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올까. 여행이 끝나고 난 뒤, 새로운 여행을 준비해본다. 퇴사는 내가 나에게 준 인생의 큰 선물이다. 내일도 즐겨보자.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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