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정 Dec 04. 2017

열심히 질투를 하고 있었다

퇴사일기, 열여덟 번째 : 여행으로 얻은 배움, 남의 떡이 커 보일 때

- 휴학하고 워홀을 와서 관광학 전공을 살려 딜러에 도전한 24세 여자.

- 유명 항공사를 그만두고 캐나다 어학연수를 온 23세 여자.

- 워홀 비자를 받고 캐나다에 왔다가 남미 여행을 비롯해 세계여행 나선 남자 둘.

- 캐나다 워홀 비자로 유치원에서 일하며 1년 만에 영주권을 딴 27세 여자.

- 5년 전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캐나다에 온 뒤 스시집 알바를 하며 생계를 잇다 영주권을 얻고 취직에 성공한 한 아버지.

- 대학 내내 돈을 모아 자신의 힘으로 캐나다 코업 비자를 온 뒤 또 알바를 하며 커리어 준비를 하는 25세 여자.

- 남편의 일 때문에 캐나다에 온 뒤에야 영어를 시작한 30대 여자.


캐나다에 와서 만난 한국인들의 면면이다. 여행을 다니며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다. 기자라는 직업병인지, 오지랖 때문인지 몰라도 여기서 만난 한국 사람들의 사연을 글로, 인터뷰로 담아보고 싶었다. 왜 캐나다에 왔을까, 왜 그런 결심을 했을까, 어떤 노력을 했을까 등등... 실천엔 옮기지는 못했지만, 넓은 세상에 나가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몸소 깨닫는다. 사람들의 사연을 들을 때마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알게 되며 배움을 하나씩 얻었다.


한국에서는 나와 관계된 영역 안에서 여러 사람을 만난다면, 여행에서는 정말로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을 우연히 만난다. 나이나 직업, 성별에 관계없이 한국을 떠나 먼 곳에 오기까지 결심, 사연, 배경을 들으면 더욱 신기하고 감탄한다. 그래서 가끔씩 자조 섞인 생각에 휩싸일 때가 있다. 나는 뭐했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서른인데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백수인 나는 뭘까. 입국신고서에 '무직'이라고 적을 때 한국에 온 것을 실감했다.


그런데 이것이 나만 느끼는 자격지심이나 부러움인 줄 알았다. 대화를 하면서 나와 만난 사람들도 나를 신기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 같은 연예부 기자 출신도 처음 보고, 밴쿠버에만 한 달 여행한다는 사람도 처음 보고, 서른을 앞두고 20대 마지막을 여행으로 채운다는 것도 신기해했다. 오히려 나를 만난 사람들이 내가 긍정적이고 대단한 생각을 가졌다고 칭찬해줬다.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사람은 모두 현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 영역에서 벗어나 항상 새로운 것을 보려고 한단다"라고 말했다. 퇴사 전에도, 후에도 나는 내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내 자존감을 스스로 깎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처럼 열심히 질투를 했다.


문득 퇴사를 앞두고 여러 사람들과 고민 상담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투정을 부릴 때마다 지인들은 자신들의 힘든 점을 이야기해주고, 공감해주며 위로해줬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힘들 때는 가끔씩 못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속으로 삼키는 말, "넌 그래도..."다. 나는 너무 힘들지만, 넌 그래도 어떤 장점이 있으니 괜찮고, 결국 내가 제일 힘들다는 이기적인 투정 말이다. 


넌 그래도 일을 잘해.

넌 그래도 평판이 얼마나 좋은데!

넌 그래도 돈도 많이 모았잖아. 

넌 그래도 결혼할 남자가 있잖아. 

넌 그래도 애도 있고 가정을 만들었잖아. 

넌 그래도 잘 될 거야. 일을 즐기는 거 같아.


이런 식으로 나를 낮추고, 다른 사람의 고민도 낮추는 못된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혹시 다른 사람도 나를 이런 식으로 보지 않을까 싶어 친한 선배께 물었다. 선배가 보기에 저의 '그래도'는 무엇이냐고. 선배는 자신보다 젊고, 좋은 대학을 나온 것만으로도 창창하고 부럽다고 말했다. 여행에서 느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역지사지'의 정신이 상대방에 대한 오해도 풀지만, 나에 대한 자신감도 올릴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여행 덕분에 나도 내 나름대로의 특별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저마다 특별하다는 것도. 이제 나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지 않고, 내 떡을 열심히 먹으련다. 이제 질투가 아닌 응원을 한다. 서로.


캐나다에서 만난 인연은 캐나다에서 맞이한 29세 내 생일을 특별하게 만들어줬다. 고맙다. *치킨을 좋아해서 치킨에 초를 꽂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