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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정 Oct 03. 2017

난 내가 특별하다고 믿었다

퇴사일기, 네 번째 : 평범함의 특별함

이탈리아 피렌체 야경
어렸을 적,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내가 잠든 순간에는 세상도 멈춘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나를 위해 움직였고 나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 없는 곳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그저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다른 사람을 내 세상의 중심에 넣기 시작한 것은. 
간절히 원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깨닫고, 
괜한 마음에 차라리 나를 미워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오늘 나는 다시 아프게 깨닫는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
- JTBC '청춘시대2' 7화 내레이션

나도 그랬다. 일이 술술 잘 풀리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내가 어쩌면 세상의 중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깨달았던 순간도 몇몇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조금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내가 조금은 특별하다고 믿었고, 내 고민까지도 특별하다 생각했다. 


문득 지난해 떠났던 여행이 떠오른다. 3년을 일했던 첫 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이탈리아 여행을 3주 정도 다녀왔다.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목적 아래 훌쩍 여행을 떠났다. 퇴사 후 첫 여행, 나에겐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순간이었다. 내가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으려 했다. 오래 동안 여행을 떠나면, 어떤 깨달음이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여행을 다니며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한국 여행자들을 많이 마주쳤다. 모두가 회사를 그만두고 장기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고민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았다. "나를 찾으러 왔어요."


스스로 부여한 특별한 휴가, 나를 찾겠다고 떠난 야심 찬 여행에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위로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특별하다 믿었던 내 자신이 사실은 그냥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모두가 같은 고민을 갖고 있고, 삶의 무게에 힘들어한다. 퇴사를 하고 나서 '그렇게 특별하다 믿었던 자신이 평범은커녕 아예 무능력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제는 "너는 잘될 거야"란 위로를 받을 때도, 사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고, 밑천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됐다. 이전의 선택을 후회할까 봐 끝없는 합리화를 일삼기도 한다. 만 30세를 앞두고 1년 동안 두 번의 퇴사 기록을 추가하면서 고민은 더욱 커지게 됐다. 그럼에도 퇴사를 선택한 건, 합리화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정 또한 수많은 청춘찬가 중 하나는 아닌가 싶은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특별함을 초월한 평범함의 경지가 오히려 더 특별하단 것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이 순간에 내가 오롯이 서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지우고 또 채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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