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여섯 번째 : 네 꿈이 뭐니?
연예부 기자 시절, 신인 아이돌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은 '꿈'이었다. "가수라는 꿈을 이뤘는데 가수가 된 이후의 꿈은 무엇인가요?", "이번 앨범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3년 뒤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신인뿐 아니라 대부분 인터뷰이에게 단골 질문은 꿈 그리고 목표였다. 질문을 할 때마다 대부분 신인 아이돌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1위' 혹은 '월드투어' 같은 대답을 했다. 그리고 잘될 거란 격려를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하곤 했다.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꿈이 이뤄지지 않을 거 같아서. 사실 음악을 듣고 무대를 보면 그 아이돌이 대박이 날지 아닐지 느낄 수 있다. 나만의 특별한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퀄리티로 어떻게 성공을 노릴 생각을 하는 건지 그 소속사에 되묻고 싶은 안타까운 그룹도 많았다. 예쁘고 끼 있는 아이돌에 엉뚱한 포장지로 재능을 낭비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매년 데뷔하는 아이돌이 50~60팀, 200~300명 정도인데 그중에 성공하는 팀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니 안타까운 마음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기자 시절 아무리 아쉬운 아이돌이라도 그 노력을 봐주려고 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하던 그들의 꿈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돌을 존경한다. 나도 열심히 살았지만, 사실 나는 그냥 주어진 계단을 착실히 오른 것뿐이다. 학교를 가라고 해서 갔고, 시험을 잘 치라고 해서 쳤고, 공부를 하라고 해서 했다. 의문이 드는 것이 있어도 '그런가 보다'하며 넘겼다. 주도적인 삶이 아니라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아이돌은 달랐다. 어릴 때부터 주어진 길이 아닌 길을 찾고, 꿈을 꿨다. 혹자는 공부를 못해서라고 비꼬기도 하지만, 실제로 10대에 아이돌이 된 이들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연예인이 되기 위해 스스로 나선 사람들이다.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춤과 노래 등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주도적으로 나선 것이다. 바로 가수라는 꿈을 위해. 그래서 더 응원하고 싶었다. 그리고 난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꿈이 있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다.
퇴사를 하기 전에 가장 큰 고민은 '난 꿈이 없어'였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이것뿐이고, 잘하는 것도 없는데... 이 나이에 뭔가 다시 시작하려면 미치게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죽도록 열정을 다해야 할 거 같은데 나는 그런 것이 없는 것이다. 퇴사학교, 적성 찾기 프로그램 등이 있지만, 나도 의례적으로 할 수 있는 자기계발서 같은 이야기들의 나열뿐이다. 차라리 고등학생 때처럼 "여기서 이렇게 수업 듣고, 시험 잘 쳐라"는 목표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게 대기업 입사, 목돈 벌기 같은 목표는 아니었으면 하는 복합적인 감정까지도 겹치니 답이 없더라.
꿈에 대한 답을 빈칸으로 남겨둔 채 그만뒀다. 꼭 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인가 의문도 남긴 채... 다만 확실한 건 꿈이든 무엇이든 어떤 것을 향해 쏟는 열정만큼은 멋지다는 걸 알고 있다. 꿈을 찾으라는 말 대신 그냥 '지금을 즐겨'라는 말을 듣고 싶다. 나도 지금의 백수 생활에 열정적이다.
기자는 그만뒀어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어린 친구들을 응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