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훈 Aug 26. 2020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보고

비건적 삶의 기록 #4 - 지금 우리의 관계는 틀렸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잡식 가족의 딜레마>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책을 통해 공장식 축산의 잔인함을 알게 되어 시작한 비건이었건만, 텍스트로 접하던 진실을 영상으로 마주하는 것은 또 다른 슬픔이었다. 영화 자체가 채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랑하는 아이에게 돼지고기를 먹이던 한 엄마가 살면서 살아있는 돼지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돼지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 담겨있다. 돼지를 만나러 간 곳에서 마주한 공장식 축산의 진실들, 돼지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모색하는 모습, 돼지가 어떻게 우리의 식탁까지 오게 되는지의 기록, 그것들을 마주한 뒤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갈등 등을 그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끝에서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돈가스가 더 이상 음식이 아닌 생명으로 보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영상 끝에서 앞으로의 삶을 자연스레 고민하게 될 것이다. 


사진 출처 - <잡식가족의 딜레마>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보고, 최근 광화문에서 ‘동물 권리장전’을 외치는 직접행동 DxE의 행보를 마주하며 책상 앞에 앉아 쓴 그날의 단어들.


 

살 처분


네모난 화면에서 그들이 너희들을 산 채로 묻는다고 했다

우리들이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커피를 맛있게 마시려면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하라고 알려줬다

돼지를 맛있게 먹으려면

돼지고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아기돼지 삼 형제를 읽어주다가

돼지를 반찬으로 내오는 당연한 인간


당연한 인간은 이토록 인간스럽게 사는데

당연한 돼지는 어디에도 없다


자주 빛의 1등급 마크

임신 성적표

호르몬 촉진제

차가운 포크레인

리본 포장된 선물 박스 안의 살점

처리할 일


네모난 화면 밖에서 우리들이 너희들을 산 채로 묻는다

우리들이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데

우리일 수밖에 없는 나는

나는


돼지의 눈동자

시뻘건 핏줄

그 안에 새겨진 지우지 못할 상처들

지워져서도 안될 우리의 고통들


지금 

우리의 관계는 틀렸다.


*살 처분 : 가축의 법정전염병중 특히 심한 전염성 질병의 만연 방지를 위해 실시하는 예방법의 일종.

감염동물 및 접촉한 동물, 동일 축사의 동물 등을 죽여서 처분하는 것을 영어로 'stamping out'이라고 표현한다고 하는데, 이 단어를 번역한 말이 '살처분'이다.

'살'은 '죽임'을 나타내는 말이고, '처분'은 '일을 처리함'이란 뜻이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매거진의 이전글 자취도 비건도 어렵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