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훈 Sep 30. 2020

[수플레 특집호] 작가들의 가을 플레이리스트

무르익어가는 가을의 책장 & 플레이리스트 엿보기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 세 번째 특집호가 돌아왔습니다! 

계절에 한 번씩 이렇게 특집호를 꾸리곤 하는데 벌써 가을호를 보여드리게 되다니 시간이 정말 빠르죠? 이제 제법 선선해진 가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불리는 만큼 이번 호에서는 노래뿐만 아니라 책 추천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는 핑계로 할 일을 미뤄놓고 책도 읽어보고, 가을 산책을 하며 가을에 걸맞은 노래 한 곡을 곁들여주면 이번 연휴도 이번 가을도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무르익어가는 계절에 걸맞은 수플레 작가들의 책과 노래. 보름달이 뜬 밤에 여러분에게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해봅니다:)


영훈 SAYs.
"다정한 시선을 잃고 싶지 않을 때"

책 : 은모든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노래 : 백예린 - 산책

 

 내 머릿속 책방을 상상해보면 책을 읽는 속도보다 읽고 싶은 책이 쌓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 책에 파묻히는 내가 있을 것만 같다. 게으른 호기심 덩어리의 책장이니 그럴 수밖에.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말이 입에 착 붙을 만큼 할게 많은 세상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살피고픈 다정한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을까.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책을 통해 작가가 다정하게 여기는 대상을 면밀히 엿볼 수 있어 나 역시도 조금은 다정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빌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지럽고 지치기 쉬운 세상에서 다정한 시선을 잃고 싶지 않을 때 내게 다정함을 한껏 빌려다 준 책이 여기 있다. 은모든 작가님의 소설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이 소설은 일상적이면서도 묘하게 흘러가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경진은 사흘 간의 휴가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내리라 다짐하지만, 휴가 첫날부터 계획이 어긋나고야 만다. 자꾸만 사람들이 경진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오래 알던 사이처럼 자신만의 사연과 추억을 털어놓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딘가로 흘러가는 경진의 휴가. 그 휴가 속에 잠시 들어갔다 오면 어느새 나에게도 다정하고도 지나치지 않은 씩씩함이 담백하게 스며듬을 느낄 수 있다. 여러분도 이번 연휴나 가을을 활용하여 후루룩 읽히는 이 소설을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다 읽고 나면 가을에 걸맞은 산책을 마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내게 선물한 느낌과 많이 닮아있는 노래 한 곡 역시 추천한다. 백예린 - 산책. 가을에는 노래든 책이든 거리든 하늘이든 어디론가 산책을 부지런히 해야지!


https://www.youtube.com/watch?v=fwFl1Fx4yow




BONNIE SAYs.
"가볍고도 즐거운 에너지, 패션의 세계로"

책 : 임성민 <지식인의 옷장>

노래 : KT tunstall - suddenly I see


 어릴 때 오랫동안 가졌던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옷 입는 걸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다른 요소의 영향이 컸다. 그것은 처음으로 부모님 없이 영화관에서 본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갖게 된 설레는 꿈이었다. 영화를 보고 한동안은 ost만 들어도 너무 설레고 좋았다. 그때의 기분 때문일까 지금도 우연히 ‘suddenly I see’를 들으면 뉴욕의 번잡한 시내를 빠르게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노래를 들으며 읽기를 추천하는 책은 ‘임성민’ 작가의 ‘지식인의 옷장’이다. 패션 분야에서 석박사를 지낸 작가는 패션은 ‘재미있고 가벼운 것’이고 패션에서 ‘아방가르드한’, ‘엘레강스한’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건 ‘있어 보이기 위해’라는 걸 인정하며 책을 시작한다. 이처럼 ‘지식인의 옷장’은 가볍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자 가볍고 재미있는 패션 시도를 통해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는 책이다. 


[패션에는 변화하기 위한 에너지가 있고 변화해야 하기 때문에 패션은 가볍다. 그 가벼운 속성이 우리의 무거운 삶에 재미를 준다. 현대인들의 대부분은 사소한 것에도 몸을 사리고 미움받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패션을 아는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느낀다.]


https://www.youtube.com/watch?v=9AEoUa0Hlso



JUDY SAYs.
"자연스럽고 편하게 풀어내는 어른의 경험"

책 : 박웅현 <여덟 단어>

노래 : 파벨헬 - 캐논 변주곡(이미경 가야금 Ver.)


 저는 여태껏 해요체와 합쇼체로 쓰인 책 중에서 이 책만큼 힘 있게 쓰인 글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박웅현 크리에이터의 <여덟 단어>라는책 인데요. 감히 조금 과장해서 인생의 바이블 중 하나로 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라테는 말이야~’라는 말이 유행하고, ‘꼰대가 될 거다.’ ‘꼰대는 싫다’라는 표현을 대놓고 널리 쓰는 지금 사회에서 본인의 경험이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여겨지지 않게끔 후배들에게 나눈다는 일은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책의 저자처럼 본인이 꼭 무언가를 충고하고 싶은 의도는 없지만, 어느 정도 살아보니 이러이러한 것들이 중요한 것 같더라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읽기 편하게 풀어내 준 어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든든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캐논의 가야금 버전이 새삼 궁금해지는 대목이 나옵니다. 저도 처음 읽었을 때 그 대목에서 슬쩍 책을 덮고 캐논의 가야금 버전을 찾아들었어요. 마음속에 묵혀있던 정체모를 덩어리가 가야금의 띵~ 띵~ 하는 음색에 쑥 밀려 내려가는 기분. 9월의 마지막 주, 가을의 문턱에서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https://youtu.be/gFw1alKTl9U 



CORE SAYs.
"고독과 함께 가을이라는 계절에 감응하다"

책 : 김소연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노래 : 자우림 - 스물 다섯, 스물 하나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곤 하지만 사실 가을만큼 독서하기 힘든 시즌도 없다. 날씨는 좋지, 연휴는 길지, 나가 놀 곳은 많지, 이 좋은 계절을 방구석에서 책만 읽기는 너무 억울하다. 그래도 굳이 한 권을 뽑아 들어야 한다면, 두꺼운 연애소설도 아니고 유익한 자기 계발서도 말고 무용한 산문집이 가을엔 가장 좋다. 사랑, 꿈, 미래 같은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한 깊은 논의들이 듬뿍 담겨있는. 그런 가을 냄새 물씬 풍기는 책들 중, 김소연 시인의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를 가볍게 추천한다. 사랑의 이면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풀어내는 책. 가끔은 이별 후의 심연으로 끝없이 빠져들어가는 책. 적확한 단어를 세밀하게 구사하는 작가의 탁월함 역시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려준다. 글을 읽고 있자면 어딘가 고독해지는 건 피할 수 없지만, 그것 역시 계절과 책에 함께 감응했다는 증거일 테다. 


이런 때에 듣는 노래로는 자우림의 <스물 다섯, 스물 하나>가 적당하다. (랜덤 재생으로 자우림 혹은 김윤아의 앨범을 틀어놔도 좋다) 그녀의 쓸쓸하고도 애처로운 보이스는 정말이지 가을 감성 치트키다. 약간 쌀쌀해진 가을 저녁, 음악은 나를 먼 곳으로 데려가고 문장들은 때맞춰 마음을 후벼 파는데, 당신은 상념에 젖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가끔은 그렇게 절절한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게다가 비 맞으며 울 때는 티가 나지 않듯, 가을엔 그 정도의 고독쯤은 용서받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fslaJu2-RA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네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구독과 공감, 댓글은 더 좋은 매거진을 위한 원동력이 됩니다. 매주 수요일 '수플레'를 기다려주세요! (비슷한 감성의 음악 공유도 환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플레] 사랑을 태도로 전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