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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Oct 07. 2020

사랑을 담아, XOXO

ep. 32 carla bruni_quelqu’ un m’a dit


10월의 첫 수플레입니다. 완연한 가을이라고 할 수 있는 10월은 유독 더 짧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 ‘와, 가을이다’라는 말을 내뱉은 지 고작 2주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아침 출근길에 니트 한 겹이 춥게 느껴지니 말입니다.


긴 추석 연휴를 맞아 모두들 고향으로 향할 때, 저는 독립 이후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명절을 부모님과 따로 보냈습니다. 가족들과 풍성하게 보내는 연휴도 좋지만 고독하고 차분하게 보내는 명절도 꽤 괜찮더라고요. 물론 하루에 특선 영화 한 편씩은 꼭 챙겨봤고요. 새벽 무렵 흘러나오던 ost를 듣고 바로 채널을 멈추게 한 명절 특선 영화는, ‘500일의 썸머’입니다.


https://youtu.be/upsaDA0ZzmE



영화를 열 번 가까이 보면서도 매번 썸머와 톰의 관계에만 집중했는데 이번에는 왠지 영화 속 톰의 직업에 눈길이 가더군요. ‘I Love Us(난 우리를 사랑해)’처럼 낭만적인 편지 문구를 쓰는 사람이죠. 그러고 보니 비슷한 일을 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또 있습니다. 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의 직업도 편지를 대신 써주는 사람이죠.

주인공 톰에게 ‘오래 못 봤더니 보고 싶다’는 말을 편지에 어울리게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물어본다면 ‘초록이 짙어지는 걸 보니 여름이면 비를 좋아하던 네 생각이 났어’로 바꾸라고 하지 않을까요. 일반적인 글과는 다르게 조금 과한 감성도 허용되는 [편지]가 주인공의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면을 별다른 묘사 없이도 보여주는 장치로서 사용된거라 생각해봅니다.










하고 싶은 말을 전할 때면 말보다 글이 편하다. 급한 성격 탓에 하고 싶은 말을 오목조목 정리해서 내뱉지 못하고 불필요하게 ‘더’ 내뱉고 후회하는 경험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말은 뱉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쓰고 난 뒤에 보고 고칠 수 있으니까. 수신자가, 독자가 최대한으로 쉽게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고를 반복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비즈니스 메일을 쓸 때에도 문맥이 자연스럽고 단어가 완벽한지 검열하고 나서야 발송 버튼을 누른다.


그런 내가 고치고 다시 쓰기엔 불편하지만 굳이 손으로 쓰길 고집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일기, 그리고 편지다. 일기를 10년 넘게 매일 써온 건 내가 지켜온 유일한 습관이었으니 이제 와 메모장이나 어플로 갈아탈 수 없다 치자. 손가락으로 두들겨서도 충분히 긴 장문의 문자나 메일로 마음을 전하기 쉬워진 시대에 사회활동을 시작했음에도 나는 쭉 손으로 편지 쓰기를 고집해왔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 많은 글들이 잉크가 아닌 모니터 위의 활자들로 대체될 수 있다고 해도 손편지에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 게 좋았다. 특히 연말에, 한해의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다 괜히 마음이 벅차오를 때면 근처 큰 서점에서 엽서를 가득 샀다. 그리곤 서점 근처 카페에 몇 시간 동안 앉아 손이 뻐근하도록 편지를 쓰곤 했다. 다 쓴 편지는 직접 전해주기보다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집어넣는 게 재미였다. 그렇게 국내외로 편지를 보내고 나면 우표값도 꽤 들었다.


부지런히 주고받아 온 덕분인지 지나온 해들의 일기장을 펼치면 편지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발치에 작은 언덕처럼 쌓인 편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 꽤나 사랑받았구나’ 하는 순수한 즐거움마저 느껴진다.

오랜만에 잊고 있던 그 기분을 느껴보려 일기장을 펼쳤는데 생일 무렵 받은 엽서 두 장만이 툭 떨어졌다. 올해가 두어 달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편지를 쓴 기억이 드물어서인지 수확도 별로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쓸데없이 정성스럽고 고전적인 행위들(편지를 주고받는다던지 계절에 맞는 새로운 술 종류와 꽃병으로 장식하고 집에 사람들을 초대한다던지 하는, 그러니까 일상에서 무심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의도적으로 실시해야만 하는 행위들)은 그것을 주로 행하는 누군가 한동안 무심해져 버리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휘발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어떤 행위에 무심해져 버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 쓸데없이 정성스럽고 귀찮은 즐거움이 일상에 끼어 들 여유가 없어서, 함께 동참해 줄 사람이 없어서, 또는 부지런히 공유해오면서도 상대방이 쓸데없다고 여기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어느 날 사라지게 되는 경험을 해서 등등. 그런 이유들 중에 나의 편지 쓰기는 어떤 이유로 잠정적 휴업이라는 결말을 맞게 된 건지.






‘500일의 썸머’ 주인공의 직업에 대한 관심이 생긴 무렵, ‘익명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컨셉으로 매일 어딘가로 발송되는 편지 어플을 발견했다. 새벽에 전등 하나만 켜놓고 손편지를 써 내려가던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편지는 200자 이상 작성되어야 하고 손으로 삐뚤빼뚤 쓴 것 같은 폰트를 사용할 수 있다. 매일 저녁부터 밤 사이에 어딘가로부터 도착하고, 또 어딘가로 보내진다. 디지털에 아날로그를 한 스푼 더한 편지라. 흥미로워 보여 곧장 어플을 설치하고 첫 편지를 썼다.


문득 다들 무얼 기대하고 이 쓸데없고 정성스러운 고전적 행위에 동참한 걸까 궁금해져 어플 이용 후기를 검색했다. 생각 외로 꽤 걱정스러운 후기들이 올라와있었다. ‘힘들고 죽고 싶어서 자해 시도까지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내용이었다. 답장을 하자니 주제가 너무 무거워서 힘들고, 안 하자니 답장을 받지 못한 누군가가 더 힘들어할까 봐 고민이라는 내용. 다음 날 내가 받은 두 통의 편지도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오랜 연애가 끝나서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와 ‘졸업을 앞두고 너무 막막하고 두렵다’는 이야기. 그제야 느낀 건 사람들이 이 어플을 찾아오는 이유는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또는 너무 많이 말했기에 더는 들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허수아비라도 붙잡고 슬픔을 배출하고 싶은 마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감성에 젖은 채 써 내려가도 괜찮을 것 같은 [편지]라는 매체에 기대어, 누가 들을지 모를 말들을 주절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편지는 편지를 받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다. 특히 손편지는 보내고 나면 받은 사람이 다시 보여주지 않는 이상 내가 무슨 말을 적었는지 알기 힘들기 때문에 수신인에게만 남는 관계의 기록이다. 보낸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무슨 말을 썼는지 잊어버리지만 받은 사람은 그 편지를 갖고 있는 한 늘 기억할 수 있으니까.

수신인이 있다는 점에서 편지는 감정의 배출구로 사용하는 일기와는 다르다. 받는 사람을 떠올리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는 게 편지의 정석이 아닐까.


한동안 쓰지 않던 편지를, 익명의 누군가에 보내는 답장으로 ‘편지 어플’을 통해 보냈다. 고치고 또 고치진 않았지만 수신자를 생각하며 정성을 담아 XOXO. 나도 내일은 조금 다른 내용이 담긴, ‘나’라는 수신인을 위한 편지를 선물 받길 기대해본다.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네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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