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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Apr 11. 2024

슬픈 욕

그날 나는 정말 화가 났고, 동시에 무척 당황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나는 십 몇 분을 허둥댔다. 

1학년 아이들은 찡그린 얼굴로 귀를 막고, 무서워했다. 

미닫이인 뒷 문을 있는 힘껏 열었다가 다시 닫기를 반복하는 미주 때문이었다. 


수업 초반부터 미주는 내가 하는 말에 사사건건 

'싫어요', '안 할 거예요.', '재미없어요.'라고 대꾸했다. 

거슬렸지만 참았다. 

그러나 문제는 짝활동이 시작되고였다. 

미주의 "난 얘랑 하기 싫어요. 너무 못생겼어요."라는 말을 듣자, 

내 머릿속에서 억지로 누르고 있던 뭔가가 '핑'하고 끊어졌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키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런데! 다른 친구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무슨 짓이야!"

벼락같이 소리쳤다.

일순간 모든 것이 정지했다. 

눈이 동그래진 아이들, 

숨을 몰아 쉬는 나, 

그리고 멍한 미주.


"퍽, 퍽" 

침묵을 깬 건, 뭔가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였다. 

미주가 인정사정없이 자기 머리통을 주먹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이어 "나 같은 건 죽어야 돼! 죽어야 돼! 나가 죽을 거예요!"

어이가 없어 갑자기 멍해졌다. 

그 사이 미주는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실 가장자리를 빙빙 돌며 점 점 더 크게 말하고, 머리를 쳤다. 

더 이상 수업은 의미 없었다. 진정시켜야 했다. 


당황한 나는 일단 머리를 때리지 못하게 미주의 손을 잡았다. 

힘이 대단했다. 

그만하라는 나와, 죽을 거라고 악을 쓰는 미주가 실랑이하는데 

갑자기 "*팔!"미주가 말했다.

뭐라고?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잠시 내가 주춤한 사이 자기 손을 비틀어 내 손에서 뺀 미주는 뒷문에 붙었다. 

미주는 뒷 문을 여닫으며 쾅 쾅 소리를 내는 동시에

 '*팔! *팔!"을 점 점 더 크게 고함질렀다. 

나의 제지에도 계속하던 미주에게 팔을 뻗어 문을 못 움직이게 하자, 

미주는 "*팔!!!!" 하며 복도로 뛰쳐나갔다. 


믿을 수 없게 고요해진 교실, 뒷 문 바로 옆에 앉은 대운이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 선생님 미주가 *팔이라고 욕했어요." 

"... 그래, 욕하네...." 


그날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지금 상세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 이후로 대부분 그랬듯, 

교실을 뛰쳐나간 미주가 웅크리고 있는 층계참에 가 한참 구슬려 교실로 데려왔을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그즈음부터 나는 교실에서 웬만해선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처럼,  내 기대와 다를 때 화가 나기 마련인데, 

수업을 한 지 20년이 지나니 아이들의 실상이 파악되어  나는 아이들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다 꼼꼼하고 걱정 많은 내 성격은 수업하기 전, 

비고츠키가 말한 비계를 정말 촘촘하게 짜두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아이들이 빠져나갈 수 없었다. 


운이 좋았던지 교실에서 내가 겪은 큰 일이라 봐야  

아이가 옷에 용변을 실수하거나,  토하거나, 식판을 들고 가다 넘어지거나, 

준비물로 가져온 과일 같은 것을 사물함에 꿍쳐둬 구더기가 생기거나, 

놀이 중에 넘어져 찰과상을 입거나 하는 정도였다. 

처음 겪을 때는 나도 당황했지만, 무슨 일이건 자꾸 겪으면 나름 노하우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하나만 예를 들면, 일단 아이들이 '선생님 어디서 방귀냄새나요.' 혹은 '똥 냄새나요'라는 민원이 접수되면 나는 즉시 알아차린다. 아, 누가 실수 했구나. 냄새와 표정으로 실수한 아이를 찾아낸다. (대부분 실수한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뭉개고 앉아있다. 얼마나 부끄럽겠는가. )그리고 즉시 tv에 아이들이 좋아하고, 안전교육도 되는 '위기탈출 넘버원' 같은 동영상을 켠다. 냄새난다고 난리였던 아이들의 모든 관심이 동영상에 쏠리면 얼른 교실 창문을 연다. 그리고 보건실에 여분으로 있는 체육복과 속옷을 챙겨서 아이를 살짝 교실밖으로 불러낸다. 가정에  전화하고, 화장실에서  아이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비닐봉지, 휴지, 물휴지 같은 도구를 준 후, 옷을 갈아입도록 한다. 신발까지 버렸으면  옷과 같이 비닐에 꽁꽁 싼다. 손과 발을 비누를 사용해 씻는 것을 도와준다. 보건실에 있다가 조용히 집에 갈 수 있도록 한다. 동영상이 끝날 때쯤 아이들이 누군가가 교실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챌 때까지 이 일련의 과정은 물 흐르듯 진행된다. 

아이들이 물으면 아파서 조퇴했다고 알려준다. 

그러면 그 일은 배가 지나간 강물처럼 아무 흔적 없이 지나간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났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실 미주네 반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뭔가를 해보려고 결연히 각오했다. 

입학 후, 1학기 내내 담임 선생님이 너무 힘들어 한 아이가 미주였다. 

수업에는 아예 참여하지 않고, 책이나 학습지는 발기발기 찢어버리며, 조금이라도 주의를 주면 소리를 질러대고, 옆친구하고 짝하기 싫다고 자기 책상을 뒷 문 바로 앞에 딱 붙여 둔다는 아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요지부동이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내가 한번 바로잡아보리라 마음억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겁도 없이. 

어쩌면 수석교사라는 무게 때문에 가져야 했던 만용이지 않았을까.


나의 만용은 대실패로 막을 내렸다. 

미주의 행동을 바로잡는 훈육도, 반 아이들과 재미있게 하려고 준비한 수업도 다 망했다. 

정말 어설프게 벌집을 건드려 된통 혼이 난 모양새였다. 

어찌나 용을 썼던지 학습준비물 바구니를 드는데 두 팔이 덜덜 떨렸다. 

그렇게 강렬했던 첫 만남 이후, 나는 수업할 때 되도록 미주에게 참견하지 않았다. 

크게 수업을 방해하지 않은 선에서 무엇을 하건 그냥 두었다. 

그러자 미주도 첫날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뭔가 못마땅할 때마다 "*팔!"이라고 크게 말하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건 여전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안 좋을 것 같아 그게 참 거슬렸지만, 구슬려 데리고 올뿐 그냥 넘겼다. 


그렇게 그렇게 2학기가 지나고, 담임 선생님은 너무 후련하다는 말을 남기고  다른 학교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듬해, 미주가 홈스쿨링을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당시 유명한 미주를 알고 있었던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좋아했고,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고작 1학년 짜리가 어째서 그런 말을 입에 담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이 떠오르다 사라졌다. 


바쁜 3월 막바지로 치닫던 어느 날, 

2학년 미주 담임이 미주가 홈스쿨링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온다며 울상을 지었다. 

나는 몇 주간 홈스쿨링을 했던 미주가 어떨지도 궁금했지만,  

자녀 교육이라는 정말 중요한 일을 그렇게 쉽게 번복하는 부모도 궁금했다.


2학년 담임은, 

미주 엄마가 '학교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고, 앞으로 기대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왔으니  선생님이 책임지고 잘 가르치라'했다 전해주었다. 

가슴속에 찬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아, 그런 엄마구나....  그랬구나.....


돌아온 미주는 한 주 정도 학교를 떠나가라  울었다. 

당시 2층에 수석실이 있어서 2학년 교실에서 가까웠는데 

가끔 미주 엄마가 일과 중간 시간에 와서 팔을 질질 끌듯이 미주를 데리고 나가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4월 중순, 나는 2학년이 된 미주를 다시 만났다. 

양갈래 중 한쪽이 풀어져 산발이 된 머리, 

몸에 비해 너무 작은 쫄바지, 

소매 부리가 새카맣다 못해 반들반들해진 윗도리, 

연신 흘러내리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사시인 눈으로 초점을 맞추기 위해 찡그린 표정까지, 

조금 자란 듯했지만, 미주는 여전했다. 

여전히 책상 위에는 물통, 마커펜, 여러 권의 교과서,  그림 그리던 종이, 풀, 필통  등등으로 어지러웠고, 

주변은 온갖 쓰레기로 지저분했다.


나는 더 이상 미주를 어찌해보려고 마음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못 본척하려고도 안 했다. 

다만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그 긴 수업 시간동안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보기로 했다. 


미주는 수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며  

내 말끝마다 "싫어요", "재미없어요", "안할 거예요", "보기싫어요" 등 몇 가지의 말을 크게 했다. 

한결같았다. 

내가 거기에 대해 별 반응없이 무심히 책을 읽어주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느 순간 허리를 바짝 세우고 고개를 삐닥하게 해서 정신없이 듣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유심히 바라보면 흠칫거리며 마치 처음부터 관심이 전혀 없었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그림을 그리며 앞의 몇 가지 말을 주워삼켰다. 

그러나 "*팔!"은 하지 않았다. 


문제의 "*팔!"은 늘 스스로 해야 하는 과제와 관계가 있었다.

학습지나 책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거나 뭔가를 그리거나 만들어야 할 때, 

혹은 몸짓을 해야 할 때 설명의 시작과 동시에 여지 없이 크거나 작게 "*팔!"이 나왔다. 


어느 날, 식물을 채집하고 관찰 분류한 후, 나뭇잎을 붙여 도화지에 꾸미는 수업을 했다. 

작은 나뭇잎들을 모아 붙여 공작의 꼬리도 만들고,  큰 나뭇잎을 이용해 배도 표현하는 등, 

아이들은 기분 좋게 마음껏 도화지를 꾸몄다. 

미주 옆에 앉은 승주가 "선생님, 미주는 나뭇잎 말고 꽃만 따왔어요."라고 했다. 

돌아보니 미주 책상에는 장미, 라일락 등이 놓여있었다. 


미주는 발작버튼이 눌린 것처럼  "으아악! *팔!" 자기 머리를 퍽퍽 쳤다.

이어 "죽어야 돼! 나같은 건 죽어야 돼!"를 반복했다.

미주의 급작스런 행동에 말한 승주가 놀라 울상이 되었다. 


나는 승주에게 괜찮다고 말한 뒤, 

"얘들아, 식물에는 나뭇잎만 있을까? 꽃도 있지요? 다음 시간에 꽃 관찰하려고 했는데 미주가 미리 했네? 미주가 멋지게 만들면 우리 그걸로 예습하고 다음 시간에 또 꽃 관찰하러 나갈까?"했다.

사실 나뭇잎만 관찰하면 되는 교육과정이었다. 

어쨌거나 다음 시간 또 운동장과 학교 뜰에 나갈 수 있다는 말에 아이들은 입이 귀에 걸려 외쳤다. "예!" 

미주는 얼떨떨해진 표정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던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아이들을 궤간지도하던 나는 미주 쪽으로 다가가 

"미주야, 예쁜 꽃을 많이 따왔네. 네가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해, 이걸 보고 다음 시간 우리반 모두가 공부해야 하거든." 

미주는 내 말에는 대꾸를 않고 

"나는 꽃을 좋아해요"라며 꽃을 스카치 테이프를 사용해 이리 저리 붙였다. 

지저분하고 얼룩덜룩했지만, 미주는 맨 위에 "요아조 꼳"라고 꾹꾹 눌러 썼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또 '꼳'의 디귿의 모양이 꺼꾸로 된 것으로 봐서는 아마 난독증이 아닐까 싶었지만, 내 생각이야 어떻든 미주는 몹시 진지했다. 


아이들이 실물화상기로 자기 작품을 발표하며 마무리할 때였다. 

갑자기 미주가 쓱 다가왔다. 

그리고는 불쑥 자기 작품을 실물화상기에 비췄다. 

발표하던 민국이가 머쓱하게 서 있자, 

내가 미주에게 "민국이 끝나고 잠시만"했다.

미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민국이 뒤에 서 있었다. 


미주는 작품을 실물화상기 밑에 둔 후, 

꽃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수줍게 

"이건 장미예요. 냄새가 좋아요." 말했다. 

열심히 봐야 다음 시간에 또 나갈 수 있다는 내 말 때문이었는지, 

비슷비슷한 나뭇잎 작품만 보다 다채로운 꽃을 보니 신선했는지 아니면

평소답지 않은 미주가 신기했던지 아이들이 정말 집중해서 발표를 들었고, 

끝나자 "와" 하며 환호해주었다. 

미주는 처음으로 배시시 웃었다. 


그해 1학기 마지막 수업까지 미주는 계속 "*팔" 했다. 

그러나 크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내 주변을 빙 빙 돌았다. 

마치 고양이가 머리로 사람 몸에 부딪히며 호감을 표현하듯, 

미주는 "나는 분홍색을 좋아해요.", "나는 공주 그림책을 좋아해요."라고 

일방적으로 자신에 대해 말하고 훌쩍 가곤했다. 


그러면 나는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  

"음 그래? 왜 좋아해?"질문했다. 

미주는 그에 맞게 대답할 때도 있고, 아무말 하지 않거나 엉뚱하게 말할 때도 있었다. 


어느 정도 나와 친해지고 난 초여름 즈음, 

미주는 조용히 다가와 내 팔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나는 욕을 싫어해요"

"그래? 그런데 왜 해?"

 "....나는 바보예요. ...나는 나가 죽어야 해요...."

작게 읊조리고 나서 미주는 고개를 숙여 자기 손을 보았다. 

"....."

나도 고개를 숙여 빨간 매니큐어가 군데군데 벗겨져 손톱 밑의 까만 때가 보이는

고사리같이 작은 두 손을 보았다.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그 귀여운 두 손을 한참 꼭 잡고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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