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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Apr 19. 2024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아이

"수석님~, 잘 지내셨지요?" 

아직은 쌀쌀한 이른 봄날, 어스름한 저녁 무렵이었다. 

교육연수원에서 진행된 연수를 마치고 난 후, 누군가 앞 쪽으로 다가와 내게 알은체를 했다. 

아, 지난 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내가 수업을 지원했던, 

1학년 담임을 여러 해 했던,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미주를 1학년때 담임했던, 그였다. 

반가움에 그간 있었던 일로 잠시 회포를 풀기로 했다. 


교육연수원 1층 장애우 학생들이 바리스타를 실습하는 '나눔' 카페에 들러 따뜻한 차를 마주 했다. 

고소한 우유 크림과 쌉싸름한 커피가 적당히 어울리는 라떼가 

연수를 진행하느라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주었다. 


새로운 학교 이야기, 지난 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의 근황, 

자질구레한 신변 잡기까지 이야기가 한 참 오갔을 때였다. 

올해도 1학년 담임을 하냐는 내 질문에 그는, 잠시 이야기를 멈췄다. 


 "... 아니요, 그때 1학년이 너무 악몽 같아서 당분간 아니, 앞으로 1학년은 안 할 것 같아요."

아, 그랬구나. 충분히 이해한다고, 나는 자연스럽게 2학년 때 본 미주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는, 

"... 그해 미주도 있었지만, 솔직히 저는 강준이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강준이? 강준이 누구였더라. 가만가만 기억을 더듬어 봐도 누구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미주는 워낙 특출 나서 한 학기 정도 지나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할 수 있었다. 

엄마도 전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 이상 교육적으로 방법이 없다고 사고가 나지 않게 

관리만 하는 것으로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강준이는 달랐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될 수 있는 아이 같았다. 

의자에 앉는 것도 힘들어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소근육 발달이 늦어서 글씨 쓰기나 가위질 같은 것은 어설펐지만, 천천히 이끌어 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강준이는 자기가 다 못했으면 반 전체에게 소리를 질렀다. 

사사 건건 소리를 지르고, 울며 화를 내는 강준이를 통제하느라 진땀을 뺐다. 

미주는 그나마 건드리지만 않으면 전체 수업을 방해하지는 않는데 강준이는 달랐다.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갔고, 학교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도 소문이 났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3월이 지나고, 4월 학부모 상담 기간에 만난 강준이 엄마는 아주 부드럽고, 교양 있게 강준이가 어떤지 물었다. 

담임은 강준이에 대해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강준이 엄마의 태도가 수용적이라 판단해 되도록 있는 그대로 그 당시 강준이의 상태를 이야기해 주었다. 

특히 다른 아이들이 힘들어한다고, 강준이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맺었다. 


"그게 실수였어요...." 


그렇게 돌아간 강준이 엄마는 그날부터 교무실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전화의 대부분 아이가 1학년에 적응을 못하는데 담임교사의 강압적인 행동 때문이라는 항의였다.

 어느 날은 복도에 불러내 이야기한 것을 가지고도 다른 아이들과 분리되어 아이가 불안해하는데 정서적인 학대 아니냐고 했고, 

아이들 있는 데서 강준이의 행동을 통제하면 다른 아이들이 강준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있는 대로 스트레스받던 중, 5월 초 카네이션 만들기를 할 때였다. 

색종이 카네이션 꽃잎 주변을 오돌토돌하게 자르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담임은 큰 핑킹가위로 하나하나 잘라주고 있었다. 

강준이는 색종이로 꽃잎을 접지 못해 핑킹가위로 꽃잎 주변을 다듬을 수 없었다. 

강준이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우아아아 나 아직 못했어"라고 백낫같이 소리를 질렀다. 

기가 막혔고, 있는 대로 짜증 났지만, 담임은 강준이에게 그만하라고만 했다. 

그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며,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향해 

'우리끼리 하던 것은 마저하자, 강준이 저러는 건 하루 이틀 아니니 그냥 두자'

라고 아이들을 다독였다. 


"나도 사람인데 강준이 엄마 하는 짓에 넌더리가 나서 애도 보고 싶지 않더라고요..."

며칠 후, 교육청에 민원이 접수되었고, 국민 신문고에도 신고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동 학대로 신고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우리끼리'와 '강준이 저러는 건 하루 이틀 아니니 그냥 두자'는 말이 녹음된 파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강준이 엄마는 얼마 전부터 강준이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보내고 있었다. 일이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해결해야 했던 관리자들은 강준이 부모와 담임교사가 함께한 자리에서 사과하라고 종용했다.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일을 무마하려면 그래야 한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교사가 몇이나 있을까?


담임교사가 사과하자 강준이 부모는 그것 보란 듯, 

당신이 잘 못했다는 식으로 비난하고 자리를 떠났다. 

마음이 무너진 그는, 한 동안 병가를 내고 추슬러야 했다. 


담임이 병가로 공석이 되자 강준이네 학급을 맡아 줄 교사가 갑자기 필요했다. 

도심에서 먼 까닭에 기간제 교사가 구해지지 않아 학교에서는 돌려 막기식 보결 수업으로 겨우겨우 버텼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기간제 교사도 계약 기간만큼 머물지 못해 연일 바뀌었다. 

강준이에 미주까지... 3월부터 맡았던 담임 교사도 힘들어 했던 학급에서

기간제 교사가 수업을 하거나, 훈육을 해서 도저히 교육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다 강준이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인근 군지역으로 전학 갔다. 

우리 학교는 광역시 경계에 있어,  15분 정도만 가면 바로 농촌 지역이다. 

그게 1학기 마지막이었다. 


2학기에 담임도 병가를 마치고 돌아왔고, 나도 2학기부터 1학년 수업을 지원했었다. 

그리고 나는 미주에게만 집중했었지. 

당시 1학기때 있었던 사건의 개요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게 강준이라는 아이 때문인지는 알지 못했고, 그 강준이는 이내 전학을 갔다. 

내가 강준이라는 아이를 몰랐던 것은 그 때문이었구나.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그 후 강준이는 다시 한 학기만에 바로 옆 학교 2학년으로 전학을 왔다고 했다. 옆학교는 공동학군이라서 원하면 전학할 수 있었다. 



그래서 1학년은 이제 맡고 싶지 않다고, 

학부모와 상담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내가 왜 사서 그 고생을 했나 싶다고. 

적당히 시간만 보내다 2학년 올려 보낼걸. 

걔가 학교에 적응하거나 말거나 자기랑 무슨 상관이냐고 

아픈 말을 쏟아내고 난 후,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교사로서 기가 꺾이고, 상처받은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일련의 이야기가 폭풍처럼 지나가고, 

나는 작년에 있었던 서이초 교사 사건이 떠올랐다. 

충격적이고, 마음 아픈 이야기...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뜨거운 여름 여의도의 아스팔트에서 함께 시위하며 아픔을 나누었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당시 서이초 교사를 비롯한 비슷한 젊은 교사들의 사고가 연일 뉴스를 도배했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주로 연배가 있는 학교밖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꼬꼬마였을 때, 

교실이 콩나물시루 같았을 때, 

학부모가 학교 담장을 넘는 일이 너무 부담스러웠을 때, 

선생님이 하늘 같았을 때

그때를 기억 하고 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말했다. 


학교가 당신들이 다니던 그때와 비슷해 보여도 비슷하지 않다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고. 


자기 아이의 권리에 거침없는 학부모들과 

전체 아이들을 생각해야 하는 교사들이 있다고. 

그래서 학부모들이 앙심을 품으면 처음부터 교사에게 말이 되지 않는 대결이라고. 

법도 제도도, 학부모대 교사를 1대 1로 여겨 결판낸다고. 

교사는 어김없이 지고 또 지고 또 진다고. 

여러 번 진 교사의 마음은 너덜너덜해져 있다고. 


그리고 그 사이에 끼여있는 어린아이들이 있다고. 

사람으로서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과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사람으로서 사람과 자연과 온 세상에 품어야 하는 태도를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당신들이 학교에서 여러 가지를 배웠을 때 

쉽지 않았듯이. 편하지 않았듯이 

교육이란 원래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아이들의 부모와 교사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서로를 믿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런데 그 어렵고 힘든 일을 함께 해야 하는 교사와 부모가 아프다고. 


그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하고 싶은 말을 삼킨 느낌이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답답해진 마음으로 연수원을 나섰다. 


이제 완전히 밤이 된 거리엔 가로등과 상점의 불빛과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가득하다. 

불빛으로 희끄무레해진 하늘에 있어야 할 별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별이 보고 싶어진 나는, 어디 가야 볼 수 있는지를 가늠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별이 보이지 않을 뿐, 없는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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