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처음 와 본 사람들은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겉에서 보면 강당이 있는 앞 동과 각종 교실이 있는 5층 짜리 건물 뒷 동,
2개의 동으로 된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뒷 동은 다시 3개의 동으로 되어 있는 데다가
전체 4개의 동을 세로로 연결하는 하나의 동이 붙어 있다.
거기다 2층부터 모든 동이 연결되고 2,3,4층에 가운데 부분이 대각선처럼
큰 계단이 가로지른다.
실내에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기까지 넉넉잡아 한 학기는 족히 걸린다.
그러나 나는 낯선 이에게 친절하지 않은 우리 학교를 좋아한다.
'건축이란 건축가와 환경의 대화' (유현준 2018, 어디서 살 것인가 중)라는 말처럼
곳곳에 배어있는 건축가의 목소리가 재미있다.
지금도 형체 없는 건축가는
장장 3개의 층을 가로지르는 큰 계단을 통해,
'서로 다른 층에 있는 사람도 소통할 수 있어야 해'
그 계단 끝에 3면이 통창인 햇살 가득한 도서관으로 연결해서 ,
'공부의 가장 핵심은 독서지'
전면 유리로 된 복도 끝 창문들은 자연 채광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에너지를 절약해 하나뿐인 지구를 소중히 하자'
교실 옆 군데군데 넓은 놀이 공간은,
'놀지 않고 공부만 하는 사람은 바보가 된단다. 우리 신나게 놀아볼까?'라고 속삭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되면 교실과 복도에 있는 수많은 창들, 그리고 5층 천창은
각기 다른 풍경을 경쟁하듯 실내에 펼쳐놓는다.
빛의 기울기에 따라 변하는 열기, 바람의 강도에 맞춰 춤추는 조경수를 통해
밖에 있는 것보다 더 빨리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또,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에 뺏겼던 눈을 아래로 살짝 내려보면
여지없이 주인 잃은 실내화 한 짝,
분명 교과 시간 이동하다 흘렸을직 한 공부한 흔적으로 빼곡한 학습지,
그리고 그 짝인 연필과 지우개,
가끔은 학교 앞 문구점 외에 어디서도 구경할 수 없는 조잡한 과자 봉지까지.
자세히 보면 많은 흔적들이 굴러다녀
곳곳에서 여기는 누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곳인지 이야기한다.
나는 가끔 아이들이 집으로 간 다음 이런 속삭임을 들으러 다닌다.
특히 여러 가지가 겹쳐 정신없이 일을 해야 했거나,
사람들과의 부대낌이 힘겨웠을 때,
내 몸과 마음을 추스르러, 나는 학교를 낯설게 감상한다.
이때 학교는 내가 일하는 장소에서 벗어나 예술품이 된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이 고요해진 학교의 늦은 오후를 가슴 한가득 들이마신다.
눈을 감고 숨을 턱까지 가두어 두었다가
다시 게슴츠레 눈을 뜨고 천천히 천천히 내뱉는다.
그러면 아득히 먼 곳에 있었던, 잊었던 낯선 느낌들이 익숙하게 나를 감싼다.
어릴 때 나는 혼자 자랐다.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숨바꼭질, 어미발 새끼발, 오징어가생 등
오전 내내 친구들과 놀아도 시간은 남았다.
집에 돌아오면 일터에 간 엄마대신
방 윗목에 상보가 단정하게 덮인 점심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지근하게 식은 밥과 시큼한 김치, 몇 토막의 구운 생선의 비린내를 맡으며
점심을 천천히 먹었다.
혼자 인형놀이를 해도, 혼자 그림을 그려도 시간은 느리게만 갔다.
내가 살던 20평 남짓한 도시형 한옥 브로크집은 ㅁ자여서
늦은 아침부터 이른 오후까지만 햇빛이 들었다.
해님은 아침 먹고 내가 놀러 나갈 때 문간방 쪽을 비추다가
목이 빠져라 엄마를 기다릴 때쯤엔 아랫방을 비추다 꼴딱 넘어갔다.
tv에서 어린이 방송을 시작하려면 몇 시간 있어야 했고,
각 방마다 세를 얻어 살고 있었던 어른들이 고단한 일상을 마무리할 때까지도 멀었다.
나는 햇빛이 지나간 자리에 뺨을 대고 숨을 쉬었다.
뺨에 느껴지는 온기와 집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의 이상한 고요함이 묘하게 어울렸다.
한 동안 그렇게 있다 보면 혼자 있어도 무섭지 않고, 시간도 빨리 갔다.
하나 둘 어른들이 돌아오고, 집 밖 전봇대에 가로등이 켜지면
집집마다 저녁을 준비하는 소리, 씻는 소리,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로 소란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나도 기분좋게 깨어난다.
엄마가 어두침침하고 좁은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할 때면
나는 방 뒤쪽에 나있는 쪽문으로 엄마를 봤다.
연신 뭔가를 하느라 바쁜 젊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다
tv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만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씻고, 놀다가 잤다.
고요했고, 외로웠고, 한편 따뜻했던 나의 어린 시절
그때와 연결되는 순간이 바로 내가 학교를 감상하는 지금이다.
문득문득 그때의 장면이 빛바랜 수채화처럼 떠오르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학교의 한 부분과 자연스레 겹쳐진다.
가만히 내딛는 발아래로 기분 좋은 냉기를 느끼며 나는 내 자리로 돌아온다.
학교의 속삭임을 듣다 보면 북적거렸던 내 겉과 속은 어느샌가 고요해진다.
짧지만 긴 여행을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