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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Jul 01. 2024

우리가 감당해야 할 힘듦

작년부터 한 달에 한 번 다섯 분의 선생님들과 독서모임을 한다. 

교육청에서 소정의 예산도 지원받아하는 모임이다. 

교육청 공문의 정식명칭은 "교직원 독서토론 동아리"지만, 

꼭 토론의 형식을 고집하지 않고 함께 읽고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교직원 독서동아리 모임은 그냥 이야기 마당이었다. 

책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지만, 그때는 그럴 수 없었다. 

멤버 중 한 분인 보건 선생님이 속상한 일을 겪었고, 그것을 나눠야 했기 때문이었다. 


3학년 남자아이 서진이는 보건실 단골손님이다. 

큰 눈망울에 시원하게 뻗은 콧대, 호리호리한 몸집은 누가 봐도 잘 생겼다고 할 만하다.

그런 외모 때문인지 선입견이지만, 첫눈에 무척 똑똑해 보이는 서진이다.  


올해 환갑인 보건 선생님은 아이들이 귀엽기만 해서 보건실 단골들에게 친절하다. 

그중에 서진이는 유독 눈에 띄었고, 마음이 갔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서진이가 급식실에서 식판을 집는데 위에서부터 가져가지 않고, 

식판 중간을 들어 억지로 꺼내는 모습을 보건선생님이 보게 되었다. 


다른 식판이 오염될 수도 있고, 

서진이나 곁의 아이들에게 위쪽 식판이 쏟아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보건 선생님은 서진이의 어깨를 짚어 뒤돌아보게 한 후, 그러지 말라고 주의 주었다.


서진이는 굉장히 화를 내며 왜 어깨를 짚냐고 보건 선생님께 항의했다. 

순간 당황한 보건 선생님은 "네가 잘 못했잖아, 뒤에 아이들이 기다리니 밥이나 먹자" 한 후,  

노려보며 화를 내는 서진이를 뒤로 하고 배식을 받아 교직원 자리로 갔다. 


그날 방과 후 서진이네 담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진이가 오후 수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 때문이라 했다. 

꼭 사과를 받아야 한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이게 사과할 일인가.

하지만, 어깨를 짚은 건 사실이었고,

요즘 학교분위기상 아동학대니 뭐니 하며 시끄러워질까 걱정되었다. 


보건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과 함께 서진이를 보건실에서 만났다. 

서진이는 도끼눈으로 노려보며 사과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웅얼거렸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한 참 들어보니 


첫째 다른 아이도 식판을 들고 중간에서 빼갔는데 자기만 야단쳤다는 점 

둘째 어깨를 짚었는데 즉시 사과를 하지 않았던 점 

셋째 평소 보건 선생님이 자기를 미워해 제대로 치료해주지도 않고 빨리 교실로 가라 했다는 점을 들었다. 


보건선생님은 첫째 이유에 대해서는 못 봐서 그랬지 너만 문제 삼은 게 아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항변할 수 있었지만, 둘째와 셋째 특히 셋째 이유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담임이 이미 전화로 간곡히 부탁했던지라 그 자리에서는 서진이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보건 선생님은 두고두고 그 일이 속상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서진이가 보건실에 와서 고집을 피워 곤란했던 적이 많았다. 

열이 나지 않는데 머리가 아프다며 개인 폰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하거나

(학교전화로 하면 엄마가 받지 않는다고 했다) 

다리에 작은 찰과상을 입어 약을 발라주었는데 팔요 없는 붕대 드레싱을 해달라고 하거나 

아침마다 배가 아프다며 침대에 누워 쉬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보건 선생님은 번번이 서진이에게 졌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교실에 돌아가지 않고  대기 의자에 앉아 버텼기 때문이었다. 

보건 선생님 생각에 똑똑해 보이는 아이가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예뻐하고 잘해줬는데 이게 뭔가?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간호장교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후, 학교와 연이 닿아 60 평생 아이들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살아왔다. 

눈에 보이는 외상만이 아픈 게 아니라는 걸 경험적으로 터득해 아이들 마음까지 헤아리려 애썼다.

서진이 일로 그동안의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서러웠다. 


독서 동아리의 다른 멤버들은 보건 선생님이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잘 들었다.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한 보따리씩 꺼냈다. 

규칙에 저항하고, 분노를 참지 못하는 아이들과 거기에 가세하는 학부모들.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기엔 이런 이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그럴 때마다 교사가 느낄 수밖에 없는 자괴감과 싸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가 하는 것까지. 


그리고 보건 선생님이 마음을 추스르자 그 달 함께 읽은 책 이야기를 잠시 이어갔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그날 모임은 "올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깊이 이해받은 느낌이라 감사했다"는 

보건 선생님의 마지막 말로 마무리되었다. 


모두가 흩허지고 난 후, 사무실에서 퇴근을 잠시 미룬 나는

그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 구절에 계속 머물렀다.  

멤버 중 한 명이 공감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선택했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나는 그 구절과  우리의 삶이 겹쳐져 다가왔다. 

모든 직업마다 감당해야 할 힘듦이 있다. 

세상이 변해가면 그 감당해야 할 부분도 달라진다. 

우리 사회는 유래가 없는 저출생 현상과 함께 급속하게 개인주의화 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앞으로 서진이 같은 아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서진이 들을 앞으로 어떻게 만나갈 것인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뒤로하고, 

천천히 사무실 문을 잠그는 내 손은 그날따라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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