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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unny Oct 25. 2023

#이탈리아 사람과 결혼하기

5년 연애의 끝은 결혼이었다.

1년이라는 내가 글을 쓰지 못했던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작년 9월의 어느 날, 자주 가던 공원에서 남자친구와 걷고 있는데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청혼을 받았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부끄러워서 빨리 수락하고 지나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일상에서 자주 가는 장소여서 지나갈 때마다 기억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그 후 1년간은 결혼 준비로 바빴다.


일단 눌라 오스타라는 이탈리아 결혼 서류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독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밀라노 영사관과 베를린 이탈리아 대사관, 한국 영사관 세 군대를 오가야 해서 서류 준비하는 데에 오래 걸렸다.



두 번째로는 장소를 선정해야 했는데, 정말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이탈리아에는 일반 레스토랑도 있고, 어그리투리스모(레스토랑의 농장을 겸비한)와 자체 와이너리 레스토랑도 있고, 오래된 빌라를 빌려서 케이터링을 부르는 방법도 있었다. 우리가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면 괜찮겠지만, 베를린에 살면서 주말마다 결혼식 투어를 하러 오는 우리 입장에서는 여러 장소를 예약 잡고 방문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고, 가격도 너무 천차만별이어서 장소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끝에 우리는 총 5군데를 방문했고, 최종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오래된 빌라에서 결혼을 하기로 하였다.


와이너리 레스토랑에서의 저녁
레스토랑의 분위기
우리가 최종 결정한 빌라


세 번째로는 드레스 피팅이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결혼할 때 웨딩드레스 피팅을 결혼 날짜에 가깝게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드레스는 한번 입을 건데 빌려야겠다 하고 안일하게 있었던 나는 4개월 전에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일을 경험했다. 베를린에 드레스 렌털샵 드레스는 가격은 저렴했지만 너무 촌스러웠다. 한국에서처럼 많은 선택지가 없었고, 마른 몸이 아닌 나에게도 드레스들이 너무 커서 등 뒤에 빨래집게로 집으면서 피팅한 날에는 정말 집에 오는 길이 우울했다. 

결정하지 않았던 드레스, 샵 분위기는 좋았다.


그래서 구매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많은 드레스 샵들이 지금은 주문하기에 늦었다고, 피팅 후 1-2일 안에 결정하고 답을 달라고 했는데, 원피스가 아닌 드레스 자체를 처음 입어보는 나로서는 입어도 이 드레스가 내 드레스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9번째 샵인 크루즈베를린이라는 샵에서 샘플 드레스를 입어봤는데, 딱 맞고 마음에 드는 드레스가 드디어 나타났다. 그리고 이 샵에서는 샘플 드레스가 맞으면 저렴한 가격에 바로 구매가 가능해서 마음에 드는 베라왕드레스를 일반 판매 가격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네 번째로는 한복이었다. 엄마가 한복을 입기로 결정한 후에 남자친구와 나는 2부에는 한복을 입자고 했고, 엄마와 영상통화로 사이즈와 천 색상, 디자인 등을 체크했다.



다섯 번째로는 헤어와 메이크업이었는데. 이때 다시 한번 뒤집어지는 경험을 했다. 일단 헤어는 잘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유럽 사람들은 머리 땋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서 확실히 머리는 테스팅으로 해주었을 때에 헤어 아티스트가 레퍼런스 사진을 보자마자 그대로 예쁘게 해 주었다. 문제는 메이크업이었다. 내가 결혼하는 이탈리아 도시는 크지 않아서 한국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없었고, 중국인도 아무리 인스타와 구글을 서치 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중국모델과 협업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한테 1시간 반씩 차 타고 스튜디오 가서 테스트 메이크업을 받았는데, 내추럴 메이크업으로 부탁한 다했더니 서양식 태닝 메이크업을 해줘서 누렇고 눈썹 진한 최악의 메이크업을 해주었다. 그래서 결국 메이크업은 친구와 같이 온라인으로 배우고, 친구가 결혼식날 메이크업을 도와주었다.



여섯 번째로는 메뉴 선정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결혼하는 사람도 결혼 초대받는 게스트들도 정말 결혼 메뉴에 진심이어서 메뉴로만 양면 A4 3장에 달하는 페이지를 읽으면서 아페리티보 뷔페(해산물/프로슈토/치즈/그릴), 첫 번째 접시(리소토), 두 번째 접시(파스타), 리프레셔(샤벳), 세 번째 접시(스테이크), 곁들일 와인(레드/화이트/디저트)을 골랐다. 1차로 케이터링 업체에 방문해 메뉴를 고른 후에, 2차로 레스토랑에 초대받아서 선택한 메뉴랑 혹시 선택하고 싶은 다른 메뉴들을 먹어보았다. 2차로 방문한 날에는 4종류 리소토에 2종류 파스타에 스테이크에 와인 6병 정도 시음하고 집에 배를 잡고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끝없는 메뉴 선정


일곱 번째로는 결혼반지를 고르는 것이었다. 이탈리아는 결혼반지를 보통 신랑 친구랑 신부 친구가 돈을 모아서 해주는데 우리는 남자친구 누나랑 친구가 돈을 모아 해 주었다. 우리는 가서 외부 디자인만 선택했는데, 디자인 외에는 보통 다 똑같이 반지 안에 상대방의 이름과 결혼날짜를 새긴다.



여덟 번째로는 결혼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결혼식에 온 게스트들한테 봄보니어레라고 작은 선물을 꼭 주는데, 우리는 한국에서 자개로 만든 컵받침을 주었다. 결론은 하객들 다 너무 좋아했다.



이 외에도 결혼식날 번역할 사람도 부르고, 부케 꽃도 고르고, 여러 일을 했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우리는 결혼식 하는 빌라로 그 지역 시장님이 오셔서 오피셜 한 결혼식에 결혼파티까지 한 번에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점이다. (아니면 시청 혹은 교회에 가서 오피셜 한 결혼식을 하고, 다른 곳에서 결혼 파티를 해야 하기에 하루종일 결혼식을 해야 한다.)



준비 과정은 할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였는데, 결국 잘 마쳤다. 한국 가족과 친구들한테는 7시간 가까이 되는 이탈리아 결혼식이 달라서 좋았고, 이탈리아 가족과 친구들한테는 2부의 한복과 게스트 선물이 특별해서 좋았다고 들었다. 


이렇게 5년 연애의 끝은 결혼이었다.

앞으로도 잘 살아보자고! (아직 이탈리아 다녀온 짐도 다 못 푼 채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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