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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Mar 20. 2023

심해다큐처럼 관조하는 꿈

가끔 암시처럼 나타납니다

요즘 부쩍 악몽을 꿉니다. 그런데 잠을 깨고 나면 스토리가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자는 동안 어딘가에 사지가 묶여 두들겨 맞다가 깨어난 것 같은 느낌만 한가득입니다. 꿈속에서는 여러 가지 스토리가 존재하죠. 갑자기 귀신같은 검은 형체가 벽에서 흐물거리며 내려온다던가, 자동차를 타고 가다 웅덩이에 빠져서 옴짝달싹 못한다던가, 하는 나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잠에서 깨면 스냅숏을 몇 장 연결한 듯한 짧은 영상만 남습니다. 기승전결을 제대로 배운 작가가 제 꿈을 기획한 거 같진 않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저는 여러 상황을 도미노처럼 만나고 깨어나고 또 만나고를 잠드는 내내 반복합니다. 


가끔 신음소리를 내는지, 아니면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지 와이프가 당황한 목소리로 저를 깨우곤 합니다. 이때다 싶어 폭행을 하는 듯한 느낌도 희미하게 남아있습니다. 와이프의 목소리엔 걱정 반가득, 짜증 반가득, 그리고 뭔지 모를 감정이 토핑처럼 얹혀있네요. 


와이프가 부르는 소리는 현실에서 보다 더 또렷하게 들려옵니다. 악몽 속에서 누군가 나를 구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다 보니 자는 순간에도 선명하게 들을 수 있나 봅니다. 아마도 제가 자는 장면을 영상에 담아본다면 제 양 귀는 와이프의 부름에 독립적인 존재처럼 움직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깨어나면 흥건한 꿈의 흔적과 나로 돌아왔다는 자각이 아주 짧게 공존합니다. 늪과 단단한 바닥의 경계에 몸의 반반이 놓인 사람처럼 있다가 완전히 잠이라는 늪으로 다시 빠지거나, 아니면 깨어나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합니다. 아직도 새벽 2시 정도면 조금 안심이 됩니다. 현실이라는 곳이 악몽보다 그리 나을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은 출근을 하려면 멀었다는 안도에 기쁘기까지 합니다.


휴대폰으로 인스타그램의 릴스를 봅니다. 사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먼지 같은 영상들로 몇 시간이나 소비하다 다시 잠들 때쯤이면 자괴감이라는 녀석이 마음에서 튀어나와 하나의 형체를 가지고 등에 들러붙습니다. 저를 애인처럼 끌어안고 있지만 떨쳐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입니다. 와이프는 이런 기괴한 불륜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가롭게 코까지 골고 있네요.


그렇게 잠이 들면 또 기상시간 즈음해서 꿈을 하나 꿉니다. 마치 하루에 소화해야 할 꿈이 컨베이어벨트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통조림 속에 반드시 집어넣어야 할 첨가물처럼. 그런데 기상 시간 즈음에 꾸는 꿈은 와이프가 흔들지 않아도 저절로 깨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같은 순간에 깨어나곤 하는데, 그 극적 타이밍 때문에 암시적인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벽에 금이 가고 터지면서 마치 뚝이 무너지듯이 엄청난 양의 물이 밀려오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낮잠이었는데, 그 후 몇 분 있다가 퇴직금이 입금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찾아봤더니 물과 돈은 연관성이 꽤 깊더군요. 허나 실망했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고 이미 예정되어 있던 걸 뭐 그리 요란하게 암시하던지요.


그 후에 암시적인 꿈을 꾸면 그 꿈이 현실의 버전으로 나타나는 건 아닌가 긴장하게 됩니다. 당연히 긴장입니다. 꿈속에서 여의주로 저글링을 하는 용 두 마리를 보거나 똥을 한가득 묻힌 돼지가 제 품으로 뛰어오는 쾌재를 부를 만한 상황은 거의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서너 차례 암시적인 꿈을 꾼 후에도 한동안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꿈은 현실과 전혀 상관없어, 라고 라이온스 클럽이 애용하는 돌에 새겨 국도에다 내놓고 싶을 때쯤이면 그 신념을 다시 물렁하게 하려는지, 꿈이 현실화되는 경우가 드물게 나타납니다.


프로이트 선생님의 이론을 인용해 보자면 꿈은 예언자적 암시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의식의 빗장이 풀리면 무의식은 현실 세계의 형상을 빌어 꿈속에서 구현되는 것일 뿐이니까요. 우연히 암시적인 경험을 했다면 그것은 어쩌다 욕망이 현실화된 것이지 정해진 미래가 꿈을 통해 드러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현대의학에서 수명이 거의 다한 프로이트 선생의 이론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 번의 경험으로 제 머릿속에선 갓을 쓴 우리 조상님이 프로이트 합리귀신을 물리치곤 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제 결론은 암시적인 꿈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런 꿈을 꿀 확률은 지극히 낮은 셈이죠. 과연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성을 통한 합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객관적으로 검증받거나 남들과 공유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경험의 테두리에만 머물 확률이 크다는 거죠.


그래서 암시적인 꿈을 꾸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착각처럼 취급받거나, 나이 드신 분들의 인지저하 때문에 일어나는 주관적 경험으로만 치부되는 것이겠죠. 답답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직 과학의 영역이 뇌의 어두운 부분에 조명을 완전히 비추진 못한 것을. 


과학의 인정과는 상관없이 저는 때로 암시적인 꿈을 꿉니다. 가급적 달콤한 꿈을 꾸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지만,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에 관여하고 싶진 않네요. 그냥 존재를 인정하자. 하지만 큰 의미를 갖지는 말자 정도. 네 아직 미지의 영역을 관조하는 자세로 지긋이 바라볼 뿐입니다. 심해 다큐멘터리를 보는 마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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