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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Oct 28. 2023

보름달이 떴네

동산 위에 구멍처럼

퇴근을 하는데 회사 건물 언덕 위에 보름달이 떴더라고. 뭔가 평소와는 달라 보이는 게 구멍처럼 보였어. 왜 옛날 영화 같은 데나 나오는 낡은 로켓을 타고 가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구멍말이야. 아무도 구명을 알아차리진 못한 듯 어른과 아이들은  마냥 즐겁더라고. 외국인 커플은 알까 하고 유심히 봤더니 뭐가 좋은지 할리우드 영화주인공들처럼 마주 보며 웃고 있는 거야. 달에서 노란 국물이 흘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처럼. 계속 보다가 나도 빨려 들어가 지나 않을까 겁을 먹고 황급히 지하철역으로 갔어. 종종걸음으로. 왜 옛날 영화에서 보면 뒤를 돌아보면 안 되는 조연의 그런 걸음 알지? 모른다고? 상관없어. 그런데 옆에 노인 하나가 나처럼 빨리 가는 거야. 거동이 상당히 불편해 보이는 노인이. 마치 재앙이라도 목격한 듯 황망해하는 얼굴로. 나는 인파 속에서 그 노인만이 내가 본 구멍을 봤다고 확신했어.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지팡이를 들고 바닥을 딱딱 치고 있지만 그는 분명 내가 본 것을 본 거라고. 주머니에 있는 하모니카를 달래고 있었어. 어쩌면 울지도 모르기 때문이지. 경망스럽게. 그러면 분명 알게 될 거야. 밖에서는 달이 사람들을 먹어치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럼 약아빠진 사람들이 요리조리 도망갈 때 나와 노인만이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고 덩그러니 남게 될 거야. 그건 너무 불공평한 일이야. 내가 먼저 달의 변신을 목격했으니  모든 사람이 잡아먹혀도 나는 살아야 할 테니. 바로 그런 게 공정 아닐까. 나는 새치기를 살인보다 혐오하니까. 나보다 조금 늦었을 노인은 몸의 어딘가를 내어주는 정도로 살아남아야 할 테고. 달은 모든 걸 먹어치우고 급기야 제 얼굴까지 뜯어먹고 디엔드. 세상은 그렇게 불 꺼진 무대가 되는 거야. 어느 저녁 홀연히.


내가 이야기를 끝내자 그는 달 두 개가 박힌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하려는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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