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건 없어
스무 살 이후로 내 정신연령이 크게 자랐다고 느낀 적은 없다. 나이는 먹어가고, 처세의 기술도 늘었지만, 내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새로운 경험을 쌓아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쩌면 ‘정신연령’이라는, 실체 없는 환상을 품고 사는 건 아닐까?
정신연령에 대해 심리학자 칼 융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나이 들며 현명해지기보다는,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릇이 크고 깊어지기를 기대하며,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타고난 크기의 그릇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신연령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그 그릇이 깊지 않다고, 또는 크지 않다고 실망하거나 더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해 허황된 노력을 계속하면서.
어쩌면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가 없어 성장기의 키처럼 책과 경험이라는 밥을 먹고 내 정신이 자랄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경험을 쌓아가는 건 결국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여정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