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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Sep 04. 2016

그대의 빈 테이블

소시민적 아프리카 ep.07


 바닥에 떨어진 사탕을 본 적이 있다. 빠알간 사탕 주변으로 까맣게 모여들던 개미들. 그게 우리가 빅토리아 폴스 국제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의 감상이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우리가 짐바브웨를 떠날 때까지 몇 번이고 느끼게 되는 감정이기도 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비행기 도착시간에 맞추어 공항 앞에서 대기하던 택시 기사들이 구름 떼처럼 우리에게 몰려들었다. 제각기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를 자기 택시로 데려가려는 차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유독 적극적이었던 한 택시기사를 따라 대피하듯 자리를 옮겼다.



 길은 지나칠 정도로 뻥 뚫려 있었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 할 도로였다. 내가 비록 면허가 없지만 이 정도 길은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사는 능숙하게 호텔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에어컨을 가동하자 금방 차 안의 온도는 내려갔다. 좀 전의 번잡함과 더위에서 겨우 해방되어 몸이 시트 속으로 자꾸 빨려 들어갔다.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한결같았다. 참 지루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택시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평범한 이야기였다. 어디서 왔냐, 어디로 가냐, 며칠을 묵느냐 같은. 흡사 한국의 택시를 연상케 하는 대화였다. 차 안을 짓누르는 고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택시기사들이 하는 신변잡기성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목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짐바브웨 여행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택시 기사


 그는 우리가 다시 빅토리아 폴스 공항으로 돌아갈 때도 자신의 택시를 이용해 줄 것을 제안했다. 호텔까지 픽업을 오겠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다시 공항으로 가려면 차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종이 한 장 없는 예약 시스템이었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은 채 스무 명이 되지 않았다. 우리를 제외하고서는 단체 여행객이었기 때문에 아마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즉, 비행기 한 대가 내려도 택시를 이용할 잠재고객은 한두 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에 비해 공항 앞을 지키던 택시의 수는 너무 많았다.


 그러니 기사 아저씨는 굉장히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우리 같은 관광객을 왕복으로 공항까지 태워주고 그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모르긴 해도 이곳에선 꽤 큰 돈일 것이므로.


 그러나 곧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삶이 지극히 당연하므로, 그가 특별히 수완이 좋은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타운을 잠깐 들렀다가 호객꾼을 피해 도망치듯 잡아탄 택시에서는 매우 마르고 나이가 많은 아저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그 역시도 공항까지 다시 데려다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마치 택시기사들 사이에 은밀한 약속이 있어서 모두가 같은 제안을 해야만 하는 것 같았다.


 이미 예약을 해두었다고 했더니 그는 쉽게 포기했다. 그의 가벼운 포기에 오히려 내 마음이 시큰해졌다. 그래서일까.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의 검고 거친 손과, 오늘의 첫 손님이라고 말하며 지어 보이던 선량한 웃음이 내내 마음에 남은 것은.





무수한 0을 바라보며





 헬기투어를 마치고서는 곧장 타운으로 향했다. 나름대로 기대하면서 방문한 타운이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별게 없었다. 있는 거라곤 뜨거운 햇살과 호객꾼뿐이었다.


 한 걸음에도 대여섯 명의 호객꾼이 따라붙었다. 잡다한 장신구에서부터 투어상품까지 파는 물건도 갖가지였다. 정말 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걸음을 옮겼는데 호객꾼들은 우리가 흥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물건의 가격이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같은 헬기에 탔지만 다른 픽업차량을 이용해 움직였던 여자 두 명은 아예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호객꾼들이 문을 가로막고 선 탓이었다.


 호객행위에 대한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우리 두 사람은 그저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별다른 목적지가 없는 탓에 이내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그 틈을 놓칠 리 없었다. 순식간에 포위당한 우리는 결국 7달러나 주고 구 짐바브웨 달러를 몇 장 구매하고야 말았다. 0이 10개쯤 표시된 지폐 몇 장을 받아 들고 황급히 택시를 잡아탔다. 원래 기념품으로 사려고 했었던 품목이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사게 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호객꾼은 이미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구 지폐를 팔아 7달러를 벌었으니 나쁘지 않은 장사를 한 셈이었다. 아니, 봉이 김선달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경지였으니까.

 이토록 귀찮은 호객꾼이건만, 마음 한구석에 연민과 일말의 죄책감이 이는 것은 피상적으로나마 이 나라의 경제사정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 까닭이었다.


짐바브웨 지폐를 이용한 머그컵. 헬기투어 사무실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구글에서 Hyperinflation을 검색하면 관련 검색어에 Zimbabwe Hyperinflation이 뜬다. 반대로 Zimbabwe를 쳐도 Inflation이 뜬다. 그렇게 검색된 자료 중에서 몇 가지만 보아도 이 나라의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니, 실은 너무 어마어마해서 오히려 감이 안 잡힐 지경이다.


 2008년도 11월 중순,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율은 79,600,000,000%에 달했다. 미화 1달러가 짐바브웨 달러로는 2,621,984,228,675,650,147,435,579,309,984,228 달러였다. 랜덤한 숫자의 조합 같기도 하고, 로또 당첨번호를 죽 늘어 써놓은 것 같기도 한, 어떻게 읽어야 할지 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돈이 실제로 존재했다.


 '짐바브웨에서는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을 때 내야 했던 돈과 다 자르고 난 이후에 내야 하는 돈이 다르다'는 농담에 더 이상 웃지 못하게 된 것은, 경제파탄으로 인해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본 탓일 게다.




 올해 초, 짐바브웨의 독재자 무가베의 92번째 생일파티가 성대하게 열렸다고 한다. 성대하다고 함은, 미화 8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는 10억 가량을 썼다는 의미이다. 한편, 짐바브웨는 올해 극심한 가뭄으로 국가 재난상태를 선포했고, 국민의 1/3 가량이 식량부족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의 나이와 같다는 92kg짜리 케이크 사진이 차라리 합성이기를 바라는 이유였다.

 80만 달러를 짐바브웨 달러로 바꾸어보려는 머릿속이 아득했다. 삶은 언제나 불공평하다. 정말 그렇다.





Winner, winner, chicken dinner





 저녁은 호텔에서 먹기로 했다. 타운으로 다시 나갈 자신이 없었다.

 호텔의 저녁식사는 훌륭했다. 정중한 웨이터가 식전 빵부터 후식까지 차례대로 서빙하며 틈틈이 불편한 건 없는지, 더 필요한 건 없는지를 물어보았다.


 식사를 끝마칠때 쯤 옆 테이블이 붐비기 시작했다. 백금발에 파란 눈을 한 외국 어르신들 열몇 명이 자리에 막 앉기 시작한 참이었다. 웨이터가 분주히 음식을 날랐기에 테이블은 금방 음식으로 가득 찼다. 경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식사를 즐기는 그들 옆자리에는 혼자만 다른 피부색을 한 현지인 가이드가 앉아 있었다. 가이드는 간간히 질문에 대답해주며 빙그레 웃었다.

 그의 테이블은 비어있었다.


 이곳엔 두 가지 세계가 있었다. 호텔의 담장 바깥과 완벽하게 분리되는 담장 안의 세계. 그래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때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어쩐지 끔찍한 기분이 나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같은 테이블에서까지 투명하게 그어진 선이 보였다.


 불평등과 빈곤은 결코 그들만의 탓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학살도, 자로 그은 듯 나뉘는 국경선도, 그들의 탓만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의 나는 죄인이었다. 모두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므로.


 그의 빈 테이블을 바라보며, 승자만이 저녁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를 빌었다.





 아침에 일어나 암막커튼을 열면 이른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보였다.(나뭇잎을 쓸기 위해 나무를 이용하다니, 어째 좀 모순 같기도 했지만.) 장난을 치며 나뭇잎을 쓸던 그들이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긴 팔다리를 휘적이며 우리 짐을 옮겨주던 아저씨도 부디 조금 더 행복하기를.


 일생에서 단 한 번 스친 이들이 그렇게 마음에 작은 물결을 만들고는 다시는 서로 마주칠 수 없는 영역으로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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