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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Dec 01. 2016

분화구 속 자본주의

소시민적 아프리카 ep.11


 신혼여행은 어느덧 이 주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여러 가지 환경이 맞아 남들보다 조금은 긴 신혼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 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 말라는 걸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약속대로 찰리는 아침 일찍 우리를 데리러 왔다. 조금쯤은 늦어도 괜찮으련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피곤하긴 한가보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잤지만, 여행은 어쩔 수 없는 피로를 수반했다.

 셋 중 쾌활해 보이는 건 찰리밖에 없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인사를 하는 찰리에게 대강 미소를 보내고는 차에 올랐다. 행선지는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이었다.

 마사이 어로 '큰 구멍'이라는 뜻의 응고롱고로는 화산이 분화하여 발생한 지구 상 가장 큰 칼데라였다. 백두산 천지의 30배에 달하는 크기라고 하는데, 천지를 본 적이 없으니 감이 안 오기는 마찬가지였다.



 분화구의 가운데로 내려가기 위해선 산길을 한참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 직선으로 곧게 편다면 꽤나 긴 길이가 될 것이었다.

 위태위태한 좁은 길 바로 옆은 낭떠러지였지만, 찰리는 조심하는 기색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핸들을 꺾었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부질없이 손잡이를 꽈악 잡았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다고 생각했지만 도착하니 제법 사람이 많았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찰리는 뭔가 수속을 하러 갔고, 우리는 하릴없이 주변을 걸어 다니며 기다렸다.

 어찌나 친환경적(?)인지 주차장에도 바분이 돌아다녔다. 하는 행동이 귀여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다만 꽤 사납다는 얘기를 들어서 가까이 갈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찰나, 새끼를 업은 바분 한 마리가 어딘가에서 쏜살같이 뛰어오더니 쿵, 쿵, 쿵, 하는 세 번의 도움닫기만에 주차된 랜드 크루져 위로 올라갔다. 눈 깜짝할 새도 아니었다. 녀석은 미처 눈을 깜빡이지도 못하게 빠른 속도로 랜드 크루져 위에 놓인 프링글스를 낚아챘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닐 텐데 쉽게 뚜껑을 열어버렸다. 너무 빠르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잘 짜인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는 것만 같았다.

 뚜껑을 열자마자 바분 가족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소중히 품에 안은 프링글스


 양 볼에 잔뜩 프링글스를 쑤셔 넣은 것으로도 모자라 야무지게 양 손에 한 움큼씩을 움켜쥐고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오물오물. 찹찹찹.

 어찌나 맛있게 먹어치우는지 광고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절묘하게 로고가 잘 보이기도 했으니까.

 몇 분 걸리지도 않아 프링글스 한 통이 끝장나 버렸다.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던 녀석들은 청소기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손으로 집기 힘들 작은 부스러기만 남긴 채 유유히 떠나버렸다. 사건 현장(?)은 그야말로 격렬한 전투 후의 폐허 같았다.


 사실 국립공원 곳곳에는 식음료 금지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뭐 좀 먹으면 어때서, 하고 생각했는데 이 난리를 보니 역시 하지 말란 건 하지 말아야 하나보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쯧쯧'하는 표정으로 빗자루를 들고 다가와 거의 남지도 않은 부스러기를 쓸어버렸다. 이로써 완전범죄가 되었다.


 국립공원 입구에는 작은 매점이 딸려 있었는데, 미리 먹거리를 챙겨 오지 않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간단한 식음료나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동안은 별 경계심 없이 음식을 사서 차로 돌아오던 사람들이 이제는 옷 속에 꽁꽁 숨겨 최대한 빠른 속도로 차로 돌진했다. 바분 가족의 범죄(?)가 적어도 한 가지 교훈은 남긴 셈이었다.





존엄성의 가격




 바분을 지켜보는 사이 찰리가 수속을 마치고 돌아왔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길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길을 얼마간 달리던 찰리가 은근슬쩍 마사이족 마을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마사이족 마을이라...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었지만 이건 조금 달랐다.


 여행을 떠나기 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마사이족 마을은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거의 다 버리고 오직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있다고 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거절이라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용기 내어 싫다고 말했다. 찰리는 의외로 금방 수긍했다. 아니, 수긍한 줄 알았다.

 조금 더 달려 차가 멈춘 곳은 마사이족 마을이었다. 이 사람, 우리 얘기를 귓등으로도 안 듣잖아!


 - 마사이족은 아프리카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이야. 너희도 이걸 꼭 체험해봐야 해!

 - 아냐. 정말 괜찮아. 사양할게.

 - 너희는 이걸 반드시 경험해봐야 해. 정말이야.


 찰리의 눈빛은 간절했다. '여행사와의 계약이 걸려있단 말이야. 한 번만 봐줘.'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 한 무리의 마사이족이 랜드 크루져로 다가왔다. 가장 나이가 많고 족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앞장서 다가와 찰리와 인사를 나눴다.

 찰리는 우리를 차 밖으로 내몰다시피 했다. 마사이족으로 들어가려면 입장료가 필요하니 족장과 협상(!)을 하라는 거였다.


 세상에나.

 공짜로라도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을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고? 더군다나 사파리 투어를 하는 동안은 딱히 돈 쓸 곳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수중에 몇 푼 챙겨 오지도 않은 터였다.


 손마디가 툭툭 불거진 족장은 형식적으로 우리와 악수를 나누고는 곧바로 흥정에 돌입했다. 무려 USD 100이나 불렀기 때문에 말도 안 된다고 사양했다. 다시 우리가 차로 돌아가려는 액션을 취하자 그는 참으로 관대하게도 20달러를 깎아주었다. 어찌 됐건 찰리가 차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내고 둘러보고 오는 수밖에는 없었다.



 80달러를 빼앗기다시피 한 채로 얄팍한 나무 울타리를 통과하자 마을이 나왔다. 우르르 몰려나온 사람들에게 족장이 마사이어로 무어라고 말을 했고, 그들은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환영의 인사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우리를 환영하고 있는 건 아닌 게 분명했다. 춤과 노래 자체는 흥겨웠지만, 그들은 내가 회사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나 했을 법한 지루하고 일상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간혹 몇몇 청년이 제자리에서 쿵쿵 발을 구르며 점프를 하기도 했다. 전사로서 점프는 상대방을 압도하고 기세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고 했지만, 지금 그들의 점프는 그다지 자랑할 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간단한 춤과 노래가 끝나자 족장은 한 청년을 지명했다. 그가 오늘 우리를 안내해 줄 담당자라고 했다.

 족장이 그에게 우리를 인도하며 마음껏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말했다. 사람이나 집이나 어떤 것이든.


 그 말을 듣는 순간 조금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부터 느껴졌던 찝찝함의 실체를, 우리가 왜 이 마을로 오고 싶지 않았는지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알량한 80달러를 내고 사는 기분.


 그게 우리가 그토록 이 마을을 꺼려했던 이유였다.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사회는 변했고, 예전 방식대로 해서는 부족을 이끌어 나갈 수 없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관광객을 유치하고, 부족원들에게 수익을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떠나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 자존심이나 전통 같은 것을 고수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알고 있다.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이 참담한 기분은 무어란 말인가.



 소똥으로 만들었다는 집은 그나마 이 마을에서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였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집 안은 몹시 따뜻했다. 집 안에 앉아있던 허리가 굽은 노파는 낯선 사람이 들어오든지 말든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적잖이 머쓱해서 쭈뼛쭈뼛 서있기만 하는 우리에게 집주인인 청년은 마음껏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재차 말했지만 어색한 미소만 보내고 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청년은 상관없다는 듯이, 이번엔 '유치원'으로 우리를 안내하겠다고 했다.



 '유치원'은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있었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갑자기 노래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우리 방문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일제히 시작된 노래는 작위적이기 그지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일단 유치원 비슷한 형태이긴 했다. 선생님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책상도 있었으니까.

 문이 열리자마자 한 아이가 익숙하게 걸어 나와 칠판에 적힌 알파벳을 읽어나갔다.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한 박자 뒤에 따라 읽었다. 알파벳을 다 읽은 후에는 원, 투, 쓰리, 포 숫자를 세기 시작했는데, 텐 언저리쯤 간다 싶었을 때 급작스럽게 원 헌드레드!로 마무리하더니 다 같이 와아-하고 탄성을 질러댔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찝찝한 기분이었다고 생각했건만, 이 '유치원'에 비하면 애피타이저 수준이었다. 모든 것이 끔찍했다.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풍경 같기도 했다.

 열 살 무렵, 기름 냄새와 함께하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장학사가 오기 전날은 대청소 날이었다. 기름이 묻은 대걸레로 나무 바닥을 반질반질 닦았고, 책상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줄을 맞춰 정렬했다. 백미는 손을 들고 발표할 학생을 몇 명 섭외해두는 것이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은 오직 장학사만을 위해 상영되는 한 편의 연극과도 같았다.


 아이들의 박수소리가 그치자 선생님은 손끝으로 "Donation for Children"이라고 적힌 통을 가리켰다.

그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무대에 올라있었고, 우리는 장학사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는 걸.



 역시 오지 않는 편이 좋았다. 어떻게 해서든 거절했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이곳을 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연극을 했을 것이다. 내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같은 것을 보았을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같은 광경을 목도하고 있을 것이므로.


 마사이족에게 현대문명의 발전, 자본주의, 관광산업은 일종의 폭력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돈을 주고 그것을 산 우리는 이 폭력을, 분화구 속에 우뚝 선 자본주의를 비난할 자격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유치원에서 도망치듯 나왔을 때, 우리를 안내해준 청년은 마지막으로 기념품 앞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자신의 가족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족장의 역할은 바로 이것이었다. 돌아가며 안내인을 지정해 줌으로써 부족원들이 공평하게 기념품을 팔 기회를 주는 것. 굳이 따지자면 사냥해 온 음식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냥감'이 된 우리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돈마저 살뜰히 뜯기고 나서야 그들은 사냥을 멈췄다.





마음에 추를 달고




 마사이족 마을을 떠날 때 남은 것이라고는-절대 하고 다닐 것 같지 않은-사자 발톱이 달린 25달러짜리 목걸이와 너덜너덜해진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찰리가 즐거운 시간이 되었냐고 물었을 때는 거의 화를 낼 뻔했다. 그저 다시 평화롭게 동물들이나 보러 갈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았다.



 사파리 장소가 바뀌었지만 동물의 면면은 전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특히나 톰슨가젤의 싸움을 목격했을 때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탕! 조용한 응고롱고로에 뿔끼리 부딪히는 파열음이 울렸다. 초식동물이라고 만만히 볼 것은 아니다. 내 안의 소시민이 문득 되살아나 '얘들아 싸우지 마...'라고 웅얼거렸다.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는 몹시도 게을렀다. 당당한 위용을 뽐낼 줄 알았더니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이나 해대는 것이 아닌가.



 사자라고 하면 모 영화사의 로고인 포효하는 늠름한 녀석이 먼저 떠올랐지만, 실제 사파리에서 보니 그저 큰 고양이 같았다. 사자가 고양잇과라는 것이 참말인가 보다.



 숫제 드러눕기까지 한다.

 도무지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관심이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 일이 될 테지만.



 의외로 귀여웠던 건 하이에나였다. '초원의 청소부'라는 별명이 항상 따라다니는지라 왜인지 비열하고 약삭빠른 느낌이 강했는데, 잠시 멈춰 서서 뒤쳐지는 식구를 기다려주는 녀석들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버팔로는 덩치가 무척 컸고, 생각보다 뿔이 더 크고 멋졌다. 역시나 우리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지만.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이틀째라고 꽤 익숙해진 동물들의 일명 '길막'

 부릉대는 차 소리가 시끄럽지도 않은 건지 도무지 비켜날 생각들이 없어 보였다. 찰리는 조금 기다려주다가 인내심이 바닥나면 클락션을 빵빵 울렸다.



 만야라 호수 국립공원에서는 보지 못했던 하마도 보았다.

 보았다고 해야 하는지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물속에 가만히 잠겨있기만 했지만, 간혹 고개를 들어 숨을 내뿜기도 했으니 보기는 봤다고 해야겠다.



'빅 파이브'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코뿔소는 온몸이 오동통해서 너무나도 귀여웠다. 살찐 동물을 좋아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꼭 들어맞는 외양을 가졌다. 그럼에도 뿔은 위협적으로 보였다.

 신난 내가 보였는지, 찰리가 '코뿔소를 보다니 너희 정말 운이 좋다!'라고 말해주었다. 빈말일지라도 기분 좋았다.

 


 하마가 산다는 강 주변의 피크닉 장소에서 런치박스를 먹었다. 한입거리도 안될 부실한 런치박스였다. 주변을 보니 사정이 비슷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 맛이 나지 않는 퍽퍽한 빵을 의무적으로 씹으며 하마가 나오는지만을 기다렸다.



 많은 관광객들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것을 알았는지, 팬서비스 차원에서 겨우 눈만 빼꼼히 내밀어주었다. 아주 값비싼 몸이시다.



 부실한 런치박스는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카메라를 들었다. 마침 한 무리의 흰 새가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한 탓인지 아니면 몸이 피곤한 탓인지 항상 정신이 몽롱했다. 그래서 더더욱 꿈결 같았다.

 계획할 때만 해도 이루어지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아프리카 여행은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여행의 한가운데 서있는데도.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사파리는 내내 그랬다. 마음이 새처럼 먼 곳으로 떠다녔다.



 지구 상에 어느 면적은 동물들의 낙원으로 남아있다는 것. 그 사실이 마음을 달뜨게 했다.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내 인생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였던 부분이 나의 인식 속으로 편입되었다. 이런 느낌을 보편적으로는 '여행을 가면 시야가 넓어진다'라고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천년 전에도 이곳은 비슷한 모습이었을 테다. 너무나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곳에 살고 있기에, 지구 상의 한 곳쯤 이런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잡아줄 묵직한 추가 되기를 바랐다. 마음이 정처를 잃고 떠돌 때 내 두 발을 다시 땅으로 끌어내려 줄 무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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