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적 아프리카 ep.13
불안함과 걱정, 민폐를 끼쳤다는 죄송함 등의 생각이 한데 엉켜 복잡하고 속이 뒤틀리던 밤이었다. 잠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뒤척임이 얼마간 지났다. 내 뒤엉킨 심사와 상관없이 시계의 초침은 정확히 한 번에 한 칸씩 움직였고, 어김없이 아침이 밝았다. 철근 덩어리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제 우리가 향할 곳은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휴양지 중 한 곳이라는 점이었다.
세상에.
아프리카에서 작은 비행기를 탄 일이 잦았지만, 이번 비행기는 그중 제일이었다. 경비행기를 겨우 벗어나지 않았을까 싶은 작은 기체에 바람개비 같은 프로펠러, 게다가 열린 문짝으로 기어올라가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빠지는 곳 하나 없이 궁색했다.
가끔 프로펠러가 돌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착각에 불과했으므로 목적지였던 잔지바르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탄자니아의 자치령인 잔지바르는 본토와는 달리 인구의 약 95% 정도가 이슬람 신자이고, 스스로를 탄자니아인이 아닌 잔지바르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이 사실은 하나도 모른 채 그저 '인도양의 흑진주'라는 별칭 하나만 보고 이곳까지 왔다. 여행의 마지막을 휴양지로 마무리하기로 한 것을 보니, 계획을 짜던 당시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예지가 있었던 셈이다. 어렴풋이 이 여행이 아주 고될 것이라는 예지.
영사 협력관님과 만났을 당시, 잔지바르는 이슬람 문화권이니만큼 복장 등에 유의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와 정말요?' 하고 도 터지는 소리를 내는 우리를 보시고는 협력관님께서 혀를 내두르셨음은 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2013년 경에 영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테러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일부 과격한 분리 독립주의자의 소행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조심할 필요성은 있었다.
사실 이런 위협적인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여행지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여행자라 불릴 자격이 있는 거라 생각해왔다. 그렇지 않은 여행은 초대받지 못한 방문이고, 일종의 침략일 것이므로.
그러나 이 '관습'은 확실히 당혹스러웠다. 형광 조끼를 입은 공항 직원, 산더미 같은 캐리어들.
그렇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수하물 찾는 곳'이었다.
마치 허물기 직전의 건물 같았다. 금가고 칠마저 다 벗겨진 벽 위로 걸린 파라다이스의 사진은 이질적이기 그지없었다. 뚫린 벽 너머로는 방금 전에 날 내려준 비행기가 보였다. 뭐랄까, 상영 중인 연극의 백스테이지를 함께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역설적으로 짐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몹시 짧았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어딘가를 거쳐오지 않으니 가능한 속도였다. 게다가 도착한 비행기가 우리가 타고 온 것밖에 없었다는 점도 한몫을 보태고 있었다.
그렇게 다소 어리둥절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택시를 잡아탔다. 곧장 호텔로 향했다. 흰 터번을 두른 택시기사님은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까 말까 한 좁은 도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했다. 정작 우리 입이 바짝 탔다. 곧이라도 사이드 미러가 벽에 부딪혀 깨질 것처럼 보였다. 잔지바르에선 렌트를 좀 해볼까 했던 생각이 쏙 들어갔음은 물론이었다. 그 조마조마한 길을 운전하는 와중에도 기사님은 쉬지 않고 잔지바르에 대한 소개를 계속하셨다. 거의 잔지바르 택시 투어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비록 우리가 절반밖에 못 알아듣긴 했지만.
그러나 그 베테랑 기사님도 호텔 입구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지는 못했다. 도저히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길이 좁았다. 하는 수없이 내려 울퉁불퉁한 길을 얼마간 걸었다. 캐리어가 달달거리는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잔지바르에서 하루를 묵을 호텔은 몹시 독특했다. 이곳의 건물들은 '인도와 유럽 스타일이 가미된 아랍식 구조'라고 하는데, 그 말이 어려운 만큼 어떤 구조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오래되고 특이한 호텔이었다.
짐을 풀고 에어컨을 틀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물러나길 기다리며 발코니로 나가보았다. 옆방까지 시원하게 뚫려있었기 때문에 발코니라기보단 복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프라이버시가 있는 듯도 없는 듯도 한 것이, 꼭 누군가의 대저택에 초대된 식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발코니로 선선한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고 있었다. 오후의 볕이 좋았다.
지난 며칠간 줄곧 더운 곳을 여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더위에는 좀체 적응이 되질 않았다. 결국 샤워를 하고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챙겨 온 옷이 동나고 있었다. 이래저래 나라와 숙소를 옮겨 다니는 통에 세탁을 맡길 기회가 없었다. 속옷과 양말은 손빨래해서 입은 지 이미 꽤 되었다. 고난의 신혼여행이었다. 방금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섰건만 금세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아무래도 옷을 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호텔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올라올 때는 힘들어서 못 봤던 안뜰이 보였다. 몇몇 투숙객이 나무 그늘 아래 신선놀음 중이었다. 나중에 꼭 가보리라 다짐했다.(당장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안뜰'이라니, 단어만으로도 낭만적이었다.
낭만은 안뜰에만 있지 않았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도 없는 수많은 갈래길들은 아주 오랜 시간의 산물이었고, 낡은 추억과 낭만의 냄새를 풍겼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차가 없었을 무렵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길이었다. 곳곳이 파이고 까진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길을 따라 걸었다. 돌멩이가 발에 차여 굴러갔다.
길을 잃는 것, 특히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몇 없겠지만 스톤타운에서는 길눈이 아무리 밝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목적지를 단박에 찾아갈 수 없었다.
누구라도 이곳에서는 길을 잃었다. 헤맬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망설임 없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몇 번인가 같은 길을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모든 골목은 비슷하게 보였고, 방금 지나간 길조차 분간이 어려웠다.
그리고 아는 얼굴 하나 없는 곳을 스쳐 지나갈 때 비로소 이것이 여행임을 깨달았다. 완벽히 새로운 곳을 완벽히 새로운 마음으로 걸어보는 것. 구글맵을 들여다 보아도, 나보다 먼저 이곳을 지나간 이들이 남긴 사진을 아무리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길을 걸으며, 오래된 지도 달랑 한 장 들고 걷는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묘하게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으리라는 확신에 차 발이 닿는 대로 걸었다. 전에 느낀 적 없는 자유로움이었다.
신기하게도 스톤타운의 골목길은 우리를 목적지로 이끌었다.(물론 김남편은 본인이 길을 찾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지인과 여행객 사이의 테이블을 비집고 이름 모를 음식을 먹었다. 눈물 나게 맛있었다. 발밑에선 고양이들이 혹시나 떨어질지 모를 음식을 기다리며 얌전히 기대어 있었다.
밥을 먹는 사이 해는 자취를 감췄다. 스톤타운에선 밤이 오면 가야 할 곳이 있었다. 바닷가 근처에 열린다는 야시장이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밤이 되면 본능적으로 두려워 숙소로 돌아와 웅크린 기억밖에 없었다. 그러나 잔지바르라면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잔지바르는 본토에 비해서 치안이 상당히 확보된 곳이기도 했다.
역시나 가는 길은 복잡했고, 우리는 헤맸고, 그 와중에 기념품점에 들리기도 했다. 그래도 방향만은 정확했던 건지 멀리 야시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워질수록 짭조름한 음식 냄새가 바닷바람을 타고 실려왔다. 다들 어디에 있다가 나왔는지 음식을 하나씩 손에 쥔 벽안의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지나갔다.
소심한 여행자의 치안 걱정을 비웃듯, 야시장은 활기로 가득했다. 밝게 불을 켠 상인들이 소리 높여 고객을 모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투박한 큰 손은 쉬지 않고 재료를 자르고, 양념을 바르고, 튀겨 냈다. 객지에서는 배가 더 고프다고 했던가.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다들 들떠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는지, 바닷바람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곳곳에서 들리는 제각각의 언어 때문이었는지 비현실적인 밤이었다. 빈대떡처럼 생긴 '잔지바르 피자'와 문어 구이를 사들고 아무 데나 걸터앉았다.
갓 나와 뜨거운 요리를 후후 불며, 우리는 언젠가 꺼내어 볼 추억을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