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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Sep 24. 2024

해외 이직기 (2)

호주 취업과 이직 이야기


3. Job Description이 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앞선 포스팅에서 이야기했듯 결국 이직이라는 것이 내가 무얼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지의 문제로 귀결됨에 따라 조금 더 선별적으로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이전에는 "Business Analyst"로 검색해서 나오는 결과를 보고 너무 말도 안 되게 내가 해본 적 없는 일이 아니고 대충 내가 "할 수는 있겠다" 싶은 곳에다 생각 없이 레주메를 제출했다면 이번에는 "Financial Analyst"나 "Cost Analyst" 혹은 "Account Analyst" 등으로 좀 더 자세히 키워드를 넣어 검색을 시작했다. 사실 이쪽은 대다수의 경우가 회계 관련 자격증이나 전공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꼭 "반드시" 회계 관련 전공을 요하는 경우가 아니고 preferred 정도인 경우가 더 많긴 했다. 처음엔 어차피 회계전공이 우대되는 곳이라면 내가 넣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쪼그라 붙은 마음가짐으로 지원하지 않았었는데 나중에 이곳저곳에서 본 이직 관련 글들을 보고 감화되어(?) 그냥 뻔뻔함을 탑재하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영 아니면 알아서 거를 테고 내봐서 손해일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때부터는 Job Descrption을 자세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잘 쓴 Job Description일수록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잘 보였고, 이 회사에서 어떤 사람을 지금 필요로 하고 있는지가 잘 나와있었다. 그리고 그런 경우일수록 내가 잘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이 잘 섰다. 이전과는 다르게 같은 레주메를 대충 넣기보다 내용은 같더라도 Job Description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부분을 레주메의 내 경력사항이나 스킬 부분에서 가장 위로 올린다던지 한 꼭지를 더 만들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약간씩 커스터마이징을 했고 역시 회사 이름만 바꿔서 내던 커버레터도 조금씩 내용을 바꿨다. 기본적인 내 경력이나 스킬이 바뀌는 건 아니니 아예 다른 걸 작성하는 건 아니고 있는 틀 안에서 살짝씩 조정하는 식으로만 변경을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았다.

좀 더 자세한 키워드로 직업을 찾고 선별적으로 레주메를 넣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조정을 필요로 하는 일이 점점 줄었다. 또 내가 딱 원하는 직종은 많이 포스팅되지가 않아서 레주메를 내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내 생각보다도 이직에 더 시간이 걸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다.. 존중하며 버텨본다.


4. 호주의 채용 프로세스


그렇다면 이쯤에서 잠깐, 먼저 호주에서 채용이 보통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상반기/하반기 신입사원 채용이라고 해서 꽤나 많은 신입사원을 한 텀에 뽑곤 했다. 그래서 기수 문화도 있었고 말이다. 물론 경력직은 이때도 채용 공고가 비정기적으로 나서 자리가 나면 지원자들이 지원하는 식으로 진행 되었었던 것 같다.

호주는 이런 문화가 잘 없다. 물론 여기도 Graduate program이라고 해서 대학교 졸업 예정인 학생들을 한 번에 여럿 채용하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대체적으로 채용이 비정기적으로, 그때그때 사람이 필요할 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실 이보다 더 대다수의 경우는 아는 사람을 통해 알음알음 채용이 진행된다(!!!!). 한국인으로서는 그거 학연, 지연, 혈연, 채용비리, 뭐 그런 거 아닌가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영미권 국가들은 reference 가 엄청 중요한 사회라서 이게 당연시되는 곳이다.

일례로 이전 회사에서 일하던 한 직원은 매니저의 소개로 들어온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였다. 이외에도 이전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캐주얼 직원 중 한 명이 이전 학기에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으로부터 지인 회사에 직원을 뽑는다는데 혹시 일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어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와서 면접을 보러 가야 할지 말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럼 작은 회사만 그러냐 하면 큰 회사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이직한 곳의 옆자리 직원 또한 대학을 졸업할 때쯤 자신의 "mate"중 하나가 '너 졸업할 때 되지 않았어? 우리 회사 이런이런 자리 난다는데 면접 볼 생각 있어?'라고 해서 직접 그 부서장과 따로 만나 면접 아닌 면접을 치르고 채용이 결정된 케이스라고 하니까.

이런 식으로 대다수의 자리는 아는 사람을 통해 알음알음 채용이 이뤄진다. 내부에서 아예 현재 사람을 구하는 부서 및 포지션이 포스팅되는 곳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호주의 구인 사이트인 seek이나 혹은 linked in에 올라오는 포지션은 정말 새발의 피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네트워킹이 너무나 중요한 사회인데 이민자로서 사실 이런 부분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어느 정도의 디스어드밴티지를 갖고 시작하는 느낌이긴 했다. 물론 이민자 중에서도 네트워킹 활발히 하시는 분들도 당연히 계시겠지만 나 같은 극도의 I 형 인간에게 네트워킹... 대체 무엇인가... 하, 인생. 영미권 국가들은 내향인에게 지옥을 선사할 때가 종종 있다. 이건 다른 포스팅에서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고.

어쨌든 이런 상황인지라 좋은 자리를 처음부터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한번 이직을 해서 어느 정도 내 커리어의 방향을 잡은 다음 점차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지원을 계속했다.


5. 전화냐 이메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 한 일 년 반 전쯤 홧김에(?) 여기저기 레주메를 냈던 적이 있었었다. 이 때도 대다수가 똑 떨어지긴 했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온 곳이 한 곳 있었더랬다. 이때의 경험과 지금의 경험 중 공통된 것은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할 거면 "전화"를 주고 탈락이면 이메일이 온다는 것이다. 호주도 한국과 마찬가지라 스팸전화가 정말 많이 와서 나는 대다수의 일반 전화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잘 받지 않는 편이다. 그날도 점심을 다 먹었을 때쯤 전화가 걸려왔는데 왜인지 이상하게 받고 싶은 거다. 사실 지원서를 여러 곳에 내 두었으니 조금쯤의 기대감도 있기도 했고. 그런데 내가 받으려고 할 때 전화가 끊어졌고 아닌가 보다, 하려는데 띵! 하고 보이스메일이 남겨졌다는 메시지가 온 것이다. 설마설마하며 확인하니 웬걸? 기대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나에게 면접을 보러 오라는 게 아닌가?

심박수가 상승하여 회사 밖으로 잠깐 뛰쳐나가 씁씁후후 한번 하고 남겨진 번호로 전화를 했다. HR에서 근무하는 직원이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짧은 통화를 끝냈고 약 일주일 정도 후로 면접이 정해졌다.

일 년 반 전이었지만 (말아먹은) 면접 경험이 있으니 대충 어떤 분위기로 진행될지는 감이 왔다. 이번에야 말로 준비를 철저히 해가서 원샷 원킬 하고야 말겠다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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