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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rdoc Jul 22. 2020

여행을 잃은 시기에 꺼내보는 여행 사진 1. 량면

타이베이, 량면.

여행이 갑자기 꿈같은 일이 돼버렸다.


허망해진 여름휴가 계획은 고사하고, 언제 다시 해외여행을 갈 수 조차 쉽사리 짐작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은 여행에 대한 갈증을 더욱 부른다.


어차피 넋두리해봐야 달라질 건 없으니 가끔 지난 여행 사진을 꺼내 추억을 곱씹는 것도 도움이 되더라.


외장 하드에 정리도 채 못한 사진들을 휘휘 넘겨보다가 수많은 음식 사진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여행에서 우연은 특별함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사실 이 면을 먹으러 간 게 아니었다.


이리저리 검색한 여러 대만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식당을 찾아갔는데, 브레이크 타임에 딱 걸려버렸다.


식사를 하고 지우펀 가는 버스를 타려던 참이라 시간이 별로 없었다.


재빨리 구글 지도를 열고 근처 식당의 리뷰들을 훑기 시작했다.


바로 근처에 있는 중국집으로 보이는 식당의 평이 좋아 보이길래 냉큼 들어갔다.





관광객들이 오는 식당 같지는 않았다.


영어 메뉴가 없어서 대만 번체로 된 메뉴를 읽는데 한자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지만 여간 읽기 힘들었다.


식당 주인에게 추천 메뉴를 물어서 두어 개 더해서 주문했다.


처음 나온 메뉴가 사진의 '량면'이었다.


기대한 맛은 짜장면? 아니면 이상한 짜장면? 이 아닐까 짐작했으나


젓가락을 넣는 순간 "응?" 싶었다.


땅콩 맛이 나는 것이었다.


처음 먹어 보는 맛을 맛있다고 느끼는 건 흔한 경험은 아니다.


그것도 급하게 구글 지도로 찾은 가까운 식당에서 이런 맛을 경험한다면, 어련히 신이 나기 마련이다.


양은 적었지만 처음 먹는 취향 저격의 맛에 훌훌 젓가락으로 말아서 흡입하며 여행 중 행운을 즐겼다.


이후에 물어보니 대만에서 흔하게 먹는 면요리라고 하더라.


맛은 취향이었지만, 양은 적었던 고로 다른 요리로 배를 채워야 했다.



"중국집은 역시 만두지!"라는 생각에 주문한 만두는 적당히 배를 채워주었다.


적당히 두께감이 있는 만두피에 소는 담백한 느낌이었다.


아까의 량면과 만두 둘 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라 또 하나를 더 주문했다.



이 요리도 추천을 받아서 먹은 요리였는데 새콤달콤 입맛에 잘 맞았다. 3번째 그릇을 비우고야 양이 적당히 찼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먹게 된 요리를 연달아 성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 날은 바쁜 일정이었지만 덕분에 기분 좋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여행이 계획된 대로 되지 않고, 계획하지 않은 대로 잘 되는 건 많은 여행자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하필 계획된 일정이 브레이크 타임에 걸쳐서 우연히 들른 그 식당이, 타이베이 여행에서의 식도락 중엔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되었다.


이런 우연과 부대끼며 일상 밖의 경험이 주는 청량감을 맛보지 못한 지 오래됐다.


모두가 기다리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때를 기다리며, 지난 여행 사진으로라도 목을 축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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