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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 Feb 06. 2017

청춘 18

첫째 날

2015.12.30. 수


08:00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시간에 잠에서 깼다. 간단하게 여행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해가 없어서인지 피부에 와 닿는 공기가 더없이 차가웠다. 생각했던 시간보다 늦게 나와 걱정이 되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열차를 놓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도쿄역 개찰구를 통과하며 청춘 18 티켓에 첫 도장을 찍는 순간, 그런 걱정들은 눈 녹듯 사라졌다.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역내는 분주했다. 상점 곳곳에서는 손님을 불러 모으기 위해 열심이었다. 새벽녘부터 저렇게 큰 목소리를 내며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을 보니 어쩐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도쿄에서 우쓰노미야행 열차를 탔다. 그렇게 나의 첫 열차 여행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여행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 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던 상관없다. 나는 지금 여행길에 올랐으니까. 내가 가는 곳이 어떠한 곳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을 테니까.







10:00

열차 안은 조용했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전차의 바퀴와 선로 틈에서 나는 덜컹거리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릴 뿐이었다. 맨 앞자리에 서서 조종실 너머의 선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온 여 승무원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울렸다. 역에 정차할 때마다 열차 밖으로 나가 안전 확인을 하는 그녀의 모습. 다음 역에 도착하기까지 조종실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동작들. 조종대 위에 올려진 네모난 가방과 거기에 달린 미마모리. 선로를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 그런 일련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열차는 북으로, 북으로 향해 달리고 있었다.







14:00

여행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시간에 맞춰 착실하게 다음 역에서 또 다음 역으로 북쪽을 향해 이동했다. 도쿄에서 출발하여 우쓰노미야, 쿠로이소를 지나 코오리야마까지 왔다. 코오리야마에서 잠시 역을 빠져나와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오니기리와 카레빵 그리고 따뜻한 홍차를 사들고 역전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먹었다. 그러는 사이 눈이 내렸다. 나에게는 일본에서 맞이하는 첫눈이었다. 해가 비치고 있었고, 눈이 올 기미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눈은 그 수가 적긴 했지만 확실한 형태를 지니고 하늘 위에서 내려왔다. 이어서 열차를 다시 타고 아픔의 도시 후쿠시마를 지나 센다이로 향했다.







18:00

어느새 해가 졌다.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석양의 이미지는 강렬했다. 내 안 깊은 곳 어딘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듯했다. 차창 너머로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겨울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열차 안은 몇 번을 갈아타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선량의 칸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었지만 한 칸의 인원수는 그대로였다. 이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다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사람이 많아 자리에 앉아서 갈 수도 없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차 안에 덩그러니 홀로 있을 것을 생각하니 나와 같은 곳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열차는 계속해서 달렸다. 열차를 갈아탈 때마다 추위는 심해져만 갔다. 해가 지자 풍경은 사라지고 가로등 불빛만 간간히 보였다. 열차의 전조등 불 빛 아래로는 선로가 보였다. 그 끝없이 이어지는 선로 위에서 나는 작아지고 또 작아졌다.







22:00

홋카이도로 가기 위해서는 혼 하치노헤에서 배를 타야 했다. 모리오카 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하치노헤까지 갔다. 하치노헤에서 점심때와 마찬가지로 로손 편의점에 들어갔다. 가다랑이포가 들어간 오니기리와 야키소바 빵, 뜨거운 레몬 음료를 사들고 역내 대합실에서 허겁지겁 먹었다. 그렇게 열차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소화 불량이 걸릴 정도로 허겁지겁 식사를 해치웠다.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차마 밖에 나가 먹지는 못했다. 하치노헤 선을 타고 혼 하치노헤까지 갔다. 개찰구를 빠져나가며 청춘 18 티켓을 보여주자 역무원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마치 내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청춘 티켓을 내밀고 이 개찰구를 빠져나갔다는 듯이. 혼 하치노헤 역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는 이곳에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은 너무 추웠다. 역내에서 실버 페리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삿포로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홋카이도에 도착하면 가이드 북에서 알려준 경로를 벗어나 곧장 삿포로를 향해 가기로  마음먹었다.







<청춘 18 1일 차 경로>

도쿄(7:50)----토호쿠 본선---->(9:27)우쓰노미야(9:32)----토호쿠 본선---->(10:23)쿠로이소(10:27)----토호쿠 본선---->(11:30)코오리야마(11:56)----토호쿠 본선---->(12:43)후쿠시마(13:00)----토호쿠 본선---->(14:14)센다이(14:34)----토호쿠 본선---->(15:20)코고타(15:35)----토호쿠 본선---->(16:23)이치노세키(16:31)----토호쿠 본선---->(18:05)모리오카(18:37)----토호쿠 신칸센---->(19:09)하치노헤(19:45)----하치노헤 선---->(19:54)혼하치노헤(20:45)----남부 버스---->(20:59)하치노헤 항(22:00)----실버 페리---->(6:00)토마코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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