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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 Apr 17. 2018

찌라시

チラシ

주말에 집 근처 역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전단지를 나눠주는 광경을 보게 된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전단지를 들이미는 카레집 아저씨.

환한 미소와 활기찬 목소리로 티슈를 건네는 통신사 아가씨.

팜플렛을 들고 90도 인사를 하며 역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인사하는 부동산 청년.

우리 동네뿐 아니라 일본 어디를 가도 찌라시(전단지)천국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건네 오는 전단지 혹은 티슈를 그저 무시하며 지나간다.

결국 쓰레기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한동안 도쿄에서 일이 구해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이대로 끝없이 추락할 것만 같은 공포.

이대로 평생 일을 구하지 못할 것 같은 막막함.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 바라본 전단지 배부의 관경은 실로 대단했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손을 내밀고 관심을 가져주다니.

한여름 땡볕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이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그저 귀찮고 성가시게만 느껴지던 그 목소리와 행동들이

나의 눈가에 눈물을 맺히게 했다.


언제나 무시하고 지나가던 그 풍경들이 

그 당시의 나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그들의 수고와 노고에 얼마나 공감을 하게 되었는지.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말을 그때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그 후, 어찌어찌하여 일을 구했고

지금은 다시 예전처럼 하루하루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예전처럼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하루에도 몇 번씩 전단지를 건네 오는 

그들(그녀들)의 호의를 무시하며 살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간사한지

내가 힘들 때만 그들의 힘듦을 알 수 있었고,

내가 아쉬울 때에야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결국 쓰레기가 되리라는 것을 알지만

내일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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