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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분노 Mar 08. 2021

절망의 교환가치 <헤븐 노우즈 왓>

죠수아 사프디, 베니 사프디, 2014


 주인공 할리 역을 맡은 아리엘 홈즈는 바로 그 주인공처럼 홈리스에 약물중독자였다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든 사프디 형제와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 그녀 얘기를 들려줬고 그래서 본인의 (당시) 미출간 회고록이 영화의 기반이 되어줬다고 한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배우로 데뷔했고 말이다. 

 이후 다른 영화들도 몇 편 출연한 것 같은데 이제 그녀는 홈리스, 약물중독자가 아닌 셀럽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홈리스들 중 그녀가 가장 깔끔해 보인다. 얼굴도 옷차림도... 그냥 봐서는 홈리스처럼 보이지 않는다. 원래 배우였던 이들이 연기하는 할리 친구들은 꽤 너저분해 보이는데 말이다. 

 솔직히 영화보며 그런 생각도 들었다. 

 거지도 일단 예쁜 쪽이 유리하지 않을까? 


 거지는 비하하는 표현인가? 구걸을 하길래 그렇게 불렀다.(매일 구걸해서 매일 약 살 돈을 마련하는게 영화 속 할리와 그녀 친구들의 반복되는 일상이다.) 보통 구걸하는 사람을 거지라고 부르지 않나. 아니 요즘은 인방에서도 많이 하니까... 아니다. 또 말실수했다. 그건 구걸이 아니라 도네지. 아무튼 세계최강대국 그것도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에서 도네받으려면 실제로도 좀 깔끔하고 예쁜 쪽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영화도 예쁜 편이다. 홈리스의 삶을 다루기에 딱 적당할 만큼의 미학?이 있다. 딱 욕먹지 않을 정도. 사프디 형제의 <굿타임>이나 <언컷젬스>에서도 사실적 배경과 현장감 강한 촬영이 돋보였는데 그 기조는 여기서도 일관되고 마찬가지 세련된 전자음의 사운드트랙도 리얼리즘에 몇 방울 몽환성을 섞는다. 물론 그 영화들보다 차분하게 그들의 '보다 일상적인 삶'을 바라본다.  

 하지만 또 <언컷젬스>같은 영화 속 인물들과는 은근 닮아있지 않나 싶다. 

 당연히 그쪽이 훨씬 부자들이고 이쪽이 훨씬 가난하다. 그런데 저마다의 욕망에 집착하며 하루하루 급급하긴 매 한가지다. 그쪽 주인공이 도박에 중독되었다면 이쪽 주인공은 약물에 중독되어 있다. 물론 이쪽에는 다만 욕망이라 치부하기에 깊은 절망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 그쪽 인물들은 절망이 없었을까? 

 

 욕망으로만 중독자가 되는 게 아니다. 

 중독에는 절망 또한 필수적이다. 

 중독자들은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판돈을 걸고 또 주사를 놓는다. 

 나야 뭐 도박, 약물은 커녕 술도 잘 못하지만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연애도 중독성이 있다. 연애도 절망적인 현실에서 회피하고 벗어나려는 동기를 상당경우 지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할리와 일라이는 피학과 가학을 주고받으며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다시 헤어지고 그런다. 얼핏 할리만 일라이에게 매달리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일라이도 할리를 놓지 못한다. 그가 그녀를 떠난다는 것은 언젠가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서이다. 

 그와 그녀가 함께한 절망의 크기만큼 그들 사이는 끈질겼을 수 있다. 

 함께한 절망의 크기만큼 약에 취하고 황홀하게 사랑을 나눈다. 

 그게 딱히 불건전한 관계다, 라는 식으로 품평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면 좀 더 평범한 사람들의 연애도 그런 불건전한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좀 덜 평범한 그들의 연애도 평범하게 불건전한 연애의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솔직히 난 그들이 얼마만큼 깊이 서로를 사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랑한 건 맞는데 거기서 그들의 욕망과 절망까지 제하고 나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순도높은 사랑이 남아있을지... 일라이 뿐 아니라 할리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것만 따지면 그렇다. 오히려 영화로 보지않고 그들의 얘기만 들었다면 이런 의문이 덜했을지도...

 그러니까 할리와 일라이, 그밖의 홈리스중독자들을 롱샷, 클로즈업을 오가며 바라보는 이 영화의 전반적인 접근태도는... 내가 느끼기엔 가장 가깝게 카메라를 들이밀었을 때조차 심정적으로는 거리를 두고 관찰하거나 구경하는 쪽에 가깝다. 그들의 축축한 속내까지 들어가는 것을 좀체 잘 느끼지 못하겠더라. 

 영화 엔딩씬, 던킨도넛? 아무튼 무슨 패스트푸드 식당 테이블에 앉아있는 그들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정확히 그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다른 손님이 호기심어리게 쳐다봤을 법한 눈길이다. 그 호기심을 따라 그들 대화를 엿듣고 더 나아가 그 중 한 명 할리가 여기로 돌아오게 된 역사를 되짚는다, 영화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꼭 피상적이라기보다 딱 세련된 만큼의 거리가 영화 내내 지켜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인간적인 내면을 더 들여다보길 원하는 (나같은) 촌스러운 취향은 다소 냉랭해지고 만다. 그러나 그게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약 살 돈 벌기도 바쁜데... <언컷젬스>처럼 이 영화 역시 돈얘기가 가장 많다. 정말 그들은 약 얘기보다 돈 얘기를 더 자주 입에 올린다.  


 셀럽이든 부자든 길바닥을 방황하는 부랑자든... 누구든 간에 그 대도시의 극도로 물신화된 풍경 속 사물로 전락해있다. 그 냉담한 풍경을 적당히 세련되고 적당히 몽환적으로 묘사하는 이 영화의 스타일 앞에서 나는 그와 그녀의 사랑마저 무덤덤하게 쳐다보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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