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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다은 Apr 07. 2024

술 없이 못 버티는 날들이 많아졌다

알코올 중독의 시작

대학교 1학년 때 술자리가 길어진다 싶으면 엄마한테 문자를 했다.

'엄마, 나한테 전화 좀 해줘. 엄마 핑계 대고 집 가게.'


어색한 사람들과 술 마시는 건 고역이었다. 술은 맛이 없고, 자리는 재미가 없었다.

근데 술은 좋아했다.

어색한 사람이 아닌 친한 친구와의 술자리에선 어김없이 취했다.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소수과의 혜택 아닌 혜택을 받아,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대부분의 동기와 친해졌다. 취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소리다. 충무로역 화장실에서 토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막차가 끊기고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청소하던 노동자분께서 깨우셔서 셔터가 다 내려간 지하철역 개구멍으로 나온 적도 있다. 

"선생님, 이쪽으로 나오시면 됩니다."라는 역무원님의 말에 조그마한 문으로 잔뜩 수그리고 나올 때의 수치심이란.


하지만 그 수치심 또한 한 잔 술에 날아갔다. 아니, 그 수치심은 일종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주량이 꽤 셌던 나는 남들과 경쟁하듯 마셨고 술을 잘 마신다는 소리를 칭찬으로 들었다. 그리고 나는 칭찬에 목말라있던 사람이었다. 칭찬을 듣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무리해서 술을 마셨다. 그럴수록 신기하게 주량이 늘었다.


그렇게 술과 아주 많이 친해진 나는 혼술을 시작하게 됐다. 잦은 혼술은 대학교 3학년(2016년) 때 하던, 유독 고된 알바를 마친 뒤에 거행되었다. 영화관 바로 옆에 있는 브런치 카페의 주말 알바를 했는데 오픈과 동시에 사람들이 입장하여 피크타임엔 웨이팅 줄이 옆 가게까지 늘어져 있었다. 음료제조, 서빙, 설거지 등을 돌아가며 했는데 7시간 근무 중 휴식시간은 단 30분이었다. 뭘 먹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라 커피 한 잔을 들고 영화관 바깥에 있는 의자에 앉아 멍하니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보면 다시 일할 시간이었다. 


하루종일 쫄쫄 굶으며 일하다 퇴근을 하면 온갖 허기가 몰려온다. 그건 비단 뱃속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 알바를 하던 때에 과 학생회장도 겸하고 있었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집회에도 자주 갔었다(박근혜 정권이던 당시엔 토요일마다 집회가 있었다.). 그래서 알바가 끝나기 무섭게 다음 일정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면 말 그대로 엉망진창인 상태가 되었다. 학생회 일을 하고 집회에 참석을 하게 되면 사람들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만났다.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많이 허전했다. 가끔 어떤 집회를 하고 나면 세상이 끔찍했다. 제정상이 아닌 세상에서 정상으로 살아가는 것이 비정상처럼 생각됐다. 보상이 필요했다. 나를 정말 끔찍하게 만족시켜 줄 보상이. 비정상세상에서 정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나를 잠시나마 해방시켜 줄 보상이 말이다. 그리고 그건 다들 알다시피 술이었다. 


집에 가서 맛있는 걸 차려놓고 맥주를 한 잔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생각만 하며 귀가한다.

맛있는 거라고 해봤자 좀 비싼 컵라면이었다. 편의점에서 라면과 맥주를 한 캔 사서 집에 간다. 오자마자 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맥주를 냉동실에 넣는다. 후다닥 간단히 씻고 나오면 물이 다 끓여져 있다. 그럼 바로 컵라면에 물을 붓고 얼굴에 화장품을 바른다. 그렇게 얼굴 관리를 좀 하면 컵라면이 익는 시간이 되고, 그럼 냉동실에 있던 캔맥주와 라면을 책상 위에 놓은 뒤 경건하게 식사와 반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맥주부터 한 입을 한다. 비어있는 속에 시원하고 톡톡 쏘는 맥주가 들어가면 내 식도가 어딨는지 다 알 정도로 속이 찌르르 떨려온다. 그 느낌에 반했다. 그 한 모금은 알바에서 들었던 모욕적인 말과 학생회에서 힘들게 한 실무, 집회에서 보았던 말도 안 되는 고통을 다 잊게 만들었다. 

주로 라면보다는 술을 더 빨리 섭취했다. 남은 라면을 보면 아쉬움이 몰려오고 지체 없이 지갑을 챙겨 다시 편의점에 간다. 아직 만족할 정도로 취하지 않았음을 느끼며 이번엔 싼 가격에 빨리 취할 수 있는, 가성비 넘치는 술인 소주를 택한다. 라면이 불까, 국물이 식을까 걱정하며 달리듯 도착해서 소주 전용잔을 꺼내 소주부터 한 입을 한다. 그런 후 라면 국물을 호록 마시면 맥주와는 다른 찌르르함이 몰려온다. 그렇게 라면과 소주를 페어링 하여 먹다 보면 어느새 약간 헤롱 할 정도로 취한다. 그때 자는 거다. 그렇게 누우면 잠도 빨리 왔고, 중간에 깨는 일도 잘 없었다. 


술을 좀 많이 마신다 싶었지만 한 번도 심각성을 느끼진 못했었다. 쌓여있는 초록색 병들은 그저 놀림감이었을 뿐이었다. 16병을 모아 편의점에 가져가면 소주 1병으로 돌아오는 재테크이기도 했다.

코로나에 걸리기 전까진 말이다. 


2022년 3월, 몸이 이상해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가는 내내 제일 걱정했던 건 격리기간 동안 편의점을 못 가는 것이었다. 즉 일주일간 술을 못 산다는 소리였고 난 진심으로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병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하루에 640ml짜리 소주를 한 페트씩 먹는다 치고 그 페트를 7개 샀다. 

확진 판정을 받고 집에 돌아와 병원 처방약을 먹었다. 격리는 곧 휴식이라는 약간의 해방감을 느끼며, 그 해방감에 더 취하고 싶어 소주 한 페트를 비웠다. 약을 먹고 바로 술을 마시다니. 누가 보면 기함할 일이지만 당시의 난 내 건강을 철저히 믿고 있었다. 아니 믿는다기보다는 건강에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은 오직 술, 술, 술. 술뿐이었다. 소주 7 페트는 3일 만에 동났다. 


견딜 수가 없었다. 

술 없는 하루하루는 지루했고 얼른 취하고만 싶었다. 시간을 삭제하고 싶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뭘 해도 재미가 없었고, 그래서 뭘 해야 할지를 몰랐다.

심부름 앱을 깔고 소주 7 페트를 심부름값을 포함해 50,000원 정도에 구매하고 나서 생각했다. 

내 인생 진짜 좆됐구나.


그리고 격리 이후 항상 가던 정신과에 찾아가 처음으로 의사에게 말했다. 

"제가 알코올 중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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