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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미 Jan 19. 2022

과거로의 시간여행
군산 신흥동 말랭이 마을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말랭이 마을

군산시 신흥동(新興洞)이 문자 그대로 새롭게 일어나고 있다. 월명산 자락에 있는 신흥동 말랭이 마을이 7080 추억을 담은 근대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 아픈 역사 속에서 형성된 말랭이 마을은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 선정돼 현재 조성사업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발 빠른 관광객들에 의해 벌써 SNS에서는 말랭이 마을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리며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이 산봉우리처럼 이어지고 집마다 복작복작 붙어 있는 이곳 풍경은 그때 그 시절 신흥동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산봉우리의 사투리인 ‘말랭이’는 그래서 탄생했다. 군산을 대표하는 시간여행마을과 연계돼 근대 풍경을 담은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조성된 신흥동 말랭이 마을을 다녀와 봤다.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마을

월명터널 가기 전, 신흥동 공영주차장엔 ‘말랭이 마을’ 표지판이 있다. 마을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산봉우리처럼 솟은 말랭이 마을 지형은 집마다 옹기종기 다닥다닥 이어져 있다. 흡사 미로처럼 좁고 가파른 골목길은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을 초입 표지판에 그려진 그림 한 장이 이곳이 왜 말랭이 마을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빨간 해님 아래 나무처럼 솟은 집들이 하나의 산봉우리처럼 형상화돼 있다. 아기자기한 색채감이 앙증맞고 귀엽게 표현돼 전체적으로 말랑스럽다(?).

말랑스러움은 마을을 걸으면서 더 깊게 느껴진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담쟁이넝쿨과 정겨운 파란, 초록 대문에 벌써 마음이 촉촉해진다. 할머니가 바닥에 널어놓으신 빨간 고추는 왠지 모르게 탐스럽다.  

    

벽면을 가득 채운 트릭아트는 마을을 걷는 재미를 더한다. 낙서 금지가 적혀 있는 벽에 보란 듯이 낙서하는 동네 꼬마와 오줌 누는 강아지는 익살스럽다. 버스를 기다리는 네 명의 소녀와 추억의 버스안내양, 2층 높이의 높고 푸른 바다와 고기잡이배, 양조장에서 얻어먹는 술 한 잔,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먹는 밥상은 그리움을 넘어 다시 돌아가고픈 추억의 한 장면이다.

군산시에서 선택한 포토존은 김수미 집이다. 군산초등학교를 졸업한 배우 김수미 씨는 신흥동에서 태어나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배우가 됐다. 특히 김수미 씨의 대표작 ‘전원일기’의 극 중 역할 ‘일용엄니’를 표현한 김수미 집은 군산 명물 박대와 항아리, 솥단지, 작은 우물 등을 그려 넣어 그때 그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파른 집과 집 사이 작은 쉼터도 곳곳에 마련돼 있다. 나무 그늘 아래 아이들이 즐겨 놀았던 땅따먹기가 그려져 있고, 신흥동 사람들이 수시로 찾았을 우물터도 예스러움 그대로 조성해 놨다. 실제 주민이 살고 계신 집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마을 위로 올라갈수록 월명산 자락은 가까워지고, 집마다 하늘과 맞닿은 하얀 구름을 걸쳐놓은 듯 동화 같은 풍경도 자아냈다. 형형색색의 지붕과 옥상에 널린 빨랫줄은 정겹기 그지없다. 추억과 향수가 깃든 마을을 걷다 보니 정말 마음이 말랑말랑 뭉클해진다.     

 

역사의 소용돌이와 마주했던 추억의 달동네

마을 초입에 자리한 마을 커뮤니티 공간에서 말랭이 마을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군산 신흥동 말랭이 마을 주민 구술 기록 및 자료조사 보고서」에서는 신흥동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식민지 시기를 경험했고 곧 6·25 전쟁의 소용돌이와 마주했다. 미군정, 반공, 군부독재, 새마을운동, 산업화, IMF 시대 등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키워드들이 신흥동을 관통했다. 이와 더불어 신흥동 사람들의 치열한 삶이 현대사의 한줄기에 빼곡히 스며들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근대도시 군산으로 이주해온 타지인은 부두 노동자로 일하며 신흥동 달동네에 정착했다. 1980년대까지도 군산으로의 이주는 계속되었다. 신흥동 주민 누군가는 석탄 기차를 타고 왔고 누군가는 버스를 타고 꼬박 하루를 달려왔다고 증언했다. 군산의 이주민들은 대부분 신흥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각성바지 달동네는 그렇게 형성되었다. 1970년대 이후 신흥동 아버지들은 머나먼 중동 땅으로 떠났다. 그들이 힘들게 번 외화는 새롭게 집을 고치거나 더 큰 집으로 이사할 수 있는 밑천이 되어주었다. 그들의 일생이 켜켜이 모여 오늘의 신흥동 말랭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마다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 말랭이 마을은 이제 도시재생 시대를 맞아 문화예술을 품은 근대문화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우리가 기억하고 추억해야 할 모습,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의 소중한 삶의 터전인 공간을 ‘문화적 스토리’로 새롭게 담아냈다.  

     

군산 핫 플레이스신흥동 말랭이 마을

군산의 관광 지도를 새롭게 바꾼 신흥동 말랭이 마을은 요즘 각종 SNS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아직 조성 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블로거와 유튜버들이 이곳을 찾아 사진과 영상을 올리고 있다. SNS상에서 말랭이 마을은 ‘정겨운 추억을 만나는 골목 여행’,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는 공간’, ‘군산의 옛 추억이 가득한 곳’, ‘비탈길에 숨겨진 애환 스토리’, ‘귀여운 마을’ 등으로 표현되며 군산의 새로운 관광지, 가보고 싶은 곳으로 등극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방영한 KBS2 드라마 「오월의 청춘」이 말랭이 마을에서 촬영돼 화제가 됐다. 80년대 풋풋한 청춘 로맨스를 그린 「오월의 청춘」은 1980년 5월,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운명처럼 서로에게 빠져버린 희태와 명희의 이야기를 담은 복고풍 휴먼 드라마다. 그 시절 풍경부터 택시, 버스, 교복, 교련복 등 시대적 모습이 말랭이 마을을 통해 더욱 풍성하게 표현됐다.       

추억은 방울방울 달리고, 동네는 말랑말랑 이어지는 신흥동 말랭이 마을. 군산시간여행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말랭이 마을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 제대로 떠나보자.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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