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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연 Jan 13. 2020

여의도 스타트업에서의 실패를 복기하다

2020 읽은 책 <1> 금태섭 '이기는 야당을 갖고싶다'




**이북으로 구입 후 읽음.


조직 내에서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좋아하니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리는 것도 당연하다. (아, 물론 반골기질은 투덜대는 것과는 다르다. 자신의 반골 행위가 불러올 파장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남에게 나는 할 말 다 하고 사는 것 같은 인상이 있는듯한데, 사실은 그 정도까진 아니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충동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는 때가 많지만, 주저하느라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기분이 나쁜 건 내 소신을 밝히지도 못했으면서, 뒤에서 후회할 때. 더욱 기분이 나쁜 건 불만이 있다는걸 상대에게 들키고 말았을 때.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에 씁쓸함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조직 생활을 하며 여러 번 후회하고, 내 선택이 맞았나 반추해보고, 때로는 잘못된 판단과 주워 담을 수 없는 실언으로 괴로울 때가 있다. 그걸 돌이켜보고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타인에게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더욱더 괴로운 일일 것이다. 그 괴로운 일을 해낸 금태섭의 이 책은 하루에도 수십번 조직 내에서 '반골'이 될까 말까 고민하는 나에게 '역시 금태섭'이라는 감상을 남겼다. ㅎㅎ 타사 동료 기자가 "이 책 출기용(촐판기념회용)인가요?"라고 물어봐서 무슨 책인가 살펴봤고, 언뜻 출간 당시(cf. 기자 준비를 막 시작해보려 하는 대학생이었다) 내부자의 폭로 같은 내용 때문에 언론에서 화제가 됐던 정도는 기억이 났다.


읽어보니 그 폭로의 주 내용이었던 '안철수 비선라인 박경철'에 대한 내용은 길지 않고, 오히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 있었던 원년 멤버가 복기하는 실패의 경험담+조직관리에 관한 책들(<카오스멍키>류의 책)과 비슷한 인상이 풍겼다. 낯뜨거운 자기 자랑과 'TV동화 행복한 세상'도 울고 갈 미담으로 가득 찬 출기용(출판기념회용) 책은 절대 아니란 말씀. 그리고 또 다시 느낀다. 잘 쓴 글을 결정짓는 건 화려한 수식어가 아닌, 저자가 독자에게 얼만큼 솔직함을 내보이냐의 여부라고.


책 제목의 바람대로 야당은 20대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가져갔다. 예상치 못한 탄핵 정국과 대선을 거치며 여당 지위까지 올라섰다. 금 의원이 제시한 네 가지 이기는 야당의 조건을 다 갖춰서 이긴 거라면 참 좋겠지만, 어느 정도 자유한국당의 실패로 인해 얻은 위치라는 건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경쟁하는 야당, 의제를 설정하는 야당, 20대 청년위원장이 있는 야당, 결단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야당. '야당'에서 '여당'으로 명사는 바뀌었다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조국 사태 때 여당이 침묵으로 반성과 책임의 적기를 계속 놓쳤던 것들, 너무나도 과잉된 검찰개혁에 묻힌 수많은 진보적 의제들, 여전히 시혜적으로 느껴지는 청년 정치인에 대한 태도나 청년 관련 정책들. 민주당에 간간히 실망과 아쉬움을 느꼈던 1년이 파노라마 같이 흘러간다. 물론 애정이 없다면 실망할 리도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정말 우리당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금 의원의 진심을 따라 읊으며. 정말 민주당이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



<밑줄긋기>


때문에 야당이 승리하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새누리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애써 막말까지 동원하며 나서지 않아도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은 많다. 오히려 그런 비판은 논의의 소재를 정부, 여당에 고정시키는 역효과를 낸다.


제퍼슨은 "비판은 가장 고귀한 형태의 애국"이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비판도 나오는 법이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로 정계에 진출한 이들은 이후 3선 의원급을 배출했는데도 쓰는 언어는 예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배타적인 태도도 여전해서 운동권 출신이 아닌 사람들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다. 그들은 기존의 구도에 안주하는 무기력하고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며 윗세대보다 오히려 더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은 뒤에 앉아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평론이나 훈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살마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나는 그 노력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고 한 것이지 여러 정치인들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들을 때마다 얹짢았는데, 심지어는 그때그때 언론에 비치는 친소 관계에 따라 '최측근', '핵심측근'이라는 말까지 쓰였다...'측근'으로 지칭하는 기사를 보고 화가 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보면 우연히 기밀 사항을 알았을 때 과시하기 위해서 외부에 발설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만다. 말하자면 지나치게 보안을 강조하다 보면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이 불신당하고 있따는 느낌을 주게 되고 이것은 역설적으로 보안을 지키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된다.


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공적인 영역에 있어서의 책임'을 이해하지 못해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순수하다'고 착각하는 데 있었다.


정치가 해야 할 임무는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갈등을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조정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얻었던 48퍼센트의 득표가 야권이 변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가진 것만을 모았을 때 받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야권이 완벽한 단일화를 이룬 선거였고 투표율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렇다면 야당 고요의 스타일은 무엇일까. 바로 토론과 비판 정신이다. 일견 시끄럽고 중구난방으로 보이지만 수평적인 의사소통과 자유로운 공방은 그대로 역동성으로 이어지는 힘이 된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집단 지성을 발휘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그에 반해서 일사불란함은 새누리당의 최대 강점이지만 최대 약점이기도 하다.


우리보다 정치 문화가 발전한 선진국에서도 야당에 대안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그렇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나는 야당의 역할은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곳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 의제를 설정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이든 새정치민주연합이든 어느 당을 믿고 내 삶을 맡겨도 좋을지에 따라 투표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 '어느 편이 보다 정의로운지' 같은 것은 부차적인 기준이다.


때로는 외부에서 혜성처럼 나타나는 인물도 있어야겠지만, 그보다는 정당 내에서 체계적으로 활동하면서 정치 역량을 키워가는 사람이 훨씬 더 간절히 필요하다.


다른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사람들이 정치판에 와서 실수를 저지른 후에 흔히 "이번에 많이 배웠다.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란 공적인 일이고 그 결과는 사람들의 삶에 즉각 영향을 미친다. 개인이 경험을 쌓아가는 곳이 아니다.


몸조심은 부자가 하는 것이다. 현재의 정치판에서 야당은 가난한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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