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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톨아람 Aug 25. 2022

혐오와 편견, 그래도 할 수 있는 일

-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시작하다

  두려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오는 혐오의 말과 입에 배어 있는 비속어들. 어떤 수업을 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할까. 무엇을 해도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그렇게 손을 놓아버려도 되는 걸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무력감이 두려웠다.


  많이 고민했다. 고민은 많아도 시간은 늘 빠듯했다. 새 학교에서의 한 학기는 마치 360도로 계속 돌아가는 롤러코스터에 오른 것처럼 쉴 새 없이 흔들리며 흘러갔다. 새로운 환경, 처음 해보는 업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낯선 상황은 경력에 관계없이 일상을 숨 가쁘게 만든다. 동료들, 학생들과 물들어가는 시간을 성찰할 짬도 없이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그러다 덜커덩, 끼익- 오래된 롤러코스터가 멈추는 순간처럼 지친 몸으로 방학을 맞이했다.


  다시 다가올 2학기엔 그래도 뭔가 해야지. 이제 아이들과 내가 서로를 어느 정도 알게 됐으니 좀 더 본격적인 수업을 해야지. 1학기가 끝나갈 때 학생들과 함께 워밍업으로 2학기 교육과정을 살펴보며 손그림 보물지도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제법 긴 시간을 들여 고심하며 교육과정 재구성을 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2학기 ‘믿는 구석’ 보물지도


  학생들이 직접 만든 보물지도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원하는 활동을 살피면서 동시에 무엇을 목적으로 가을과 겨울을 보낼지 고민했다.


  이제 드디어 2학기 교육과정 보물지도 완성!


교실 ‘믿는 구석’의 2학기 교육과정 보물지도



  2학기 교육과정의 핵심 키워드는 ‘인권, 생태, 공감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키워드를 연결하는 주요 도구이자 놀이터를 ‘미디어 하고, 한 학기 동안 우리의 ‘리터러시’를 길러나가고자 한다. 활동 프로젝트는 크게  가지- 미디어와 함께 놀고 배우기, 문학 작품 재구성, ‘ 마음을 읽어요공감 대화 프로젝트이다.


 (1) 미디어와 함께 놀고 배우기


  미디어 리터러시의 개념을 함께 살펴보고, 스마트폰 디톡스, 사이버 불링 등을 소재로 매체의 표현 효과와 특성, 제작 의도 등을 비판적으로 읽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에 이어서 같은 사건이나 대상을 다루면서 서로 다른 견해를 담은 뉴스 영상 두 편을 비교하여 살펴보고 관련 드라마 영상 및 과학자의 영상을 살펴보았다. 오늘부터 다음 시간까지 모둠별로 해당 상황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담은 포스터를 제작하기로 했다. 이후 이 활동은 한 학기 한 권 읽기 슬로 리딩으로 연결해나갈 생각이다.


  인권과 생명, 동물권, 환경 등을 다룬 다양한 책들을 두루 살펴 읽었다. 그중 정말 고심해서 학생들 눈높이에 맞을 거라 판단한 책을 여러 권 교실로 가져갔다.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그중 한 권을 선정했다. 소설 <순례 주택>을 함께 읽으며 이를 미디어와 연결해 삶과 사회, 등장인물의 선택 등에 대해 비판적 독해를 함께 해나갈 계획이다.


  여기서 꼭 잊지 않아야 할 것은 ‘남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일’. 학생들이 편향된 정보만 신봉하지 않고, 또 다른 생각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혐오와 편견은 굳어지면 굳어질수록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나는 굳을 대로 굳어버린 성인이 아니라, 열다섯 살 청소년들을 만나는 사람이니까. 학생들의 생각이 아직까지 말랑말랑하게 살아 숨 쉬고 있을 거라 믿는다.


 (2) 문학 작품 재구성


  첫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문학 작품 재구성 활동을 함께하고 싶다. 작년에는 모둠별로 그림책을 선정해서 재구성하는 활동을 했는데 올해는 어떤 책을 소재로 하면 좋을까? 이 부분은 작년처럼 학생들과 논의해서 학생들이 원하는 원작을 직접 선택하여 진행할 예정이다.


  이런 프로젝트는 큰 틀 정도만 계획해두고 어떤 소재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과정과 결과가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즐겁고 신나는 것 같다. 다만 작품을 선정할 때 가급적이면 한 학기 우리의 핵심 키워드를 반영해서 ‘인권, 생태, 공감’의 원작을 선정한다든가, 아니면 키워드 주제를 반영해 재구성하는 등의 장치를 두면 좋을 것 같다.


 (3) ‘내 마음을 읽어요’ 공감 대화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정말 소중하게 여기며 몇 년째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오고 있는 활동이다. 비폭력대화 공부는 아무리 계속해도 결코 그 목마름이 온전히 채워지지 않을 만큼 어렵고, 그래서 더 꾸준히, 성실히 배우고 싶은 공부다. 여러 권의 책을 읽고 학생들과 계속 활동도 해왔지만, 언어 사용은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단기간에 새롭게 변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씩 서서히 물들며 달라져갈 거라 기대하면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비폭력대화 책을 읽어야겠다.


  이런 세 가지 큰 프로젝트와 함께 연결되는 작은 프로젝트들이 공존한다. 흥미를 이끌면서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훈민정음 해례본 도난 사건’과 앎과 삶을 연결하고자 하는 ‘플라[숨:]틱 제로 프로젝트’, 올바른 발음을 익히기 위한 ‘아나운서 게임’ 등을 함께 하고자 한다. 이런 활동들이 우리의 항해를 더욱 신나고 즐겁게 도와줄 거라 믿는다.


  미디어 리터러시,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서 편향적인 정보만 받아들이는 일의 위험성을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겨우 살짝 발가락 끝만 담근 상태지만, 한 학기 동안 우리의 항해가 힘차게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순풍에 닻을 올리며 신나게 나가다가도 암초에 걸릴 수도 있고, 생각지 못한 돌풍을 만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손안에 우리들의 보물지도를 꼭 쥐고, 나침반을 바라보고 먼 하늘을 가리키며 끝까지 나아가 봐야지! 시작했으니 뭐라도 건져 올리자는 마음으로 휘파람을 불며 노를 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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