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융 Apr 18. 2018

나로서 살아가기

네, 너는 그렇지만 저는 그렇지 않답니다.

관계. 관계. 관계. 어려운 그 단어. 부쩍 좋은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언어의 온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신경 끄기의 기술...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는 책들이다. 베스트셀러라는 건 가장 많이 팔렸다는 뜻이고, 이런 제목을 가진 책들이 많이 팔렸다는 건 그만큼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 아닐까. 왜 우리는 이렇게 사람에 상처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서로 상처 주지 않으면 될 텐데. 상처받지 않으면 될 텐데.     



우리는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연예 가십부터 시작해 집 숟가락 개수까지 얘기해야 대화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적당히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 대화를 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사생활을 공유하는 걸 친밀감의 표시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사생활 침해라고 느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말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한 배 속에서 태어난 자식들의 성향도 모두 다르다. 하물며 몇십 년 이상을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랑 같을 수가 없다. 같기를 바라는 게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이 다름을 인정하면 된다. 상호 간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내 기대만을 투영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내가 보는 관점만으로는 상대방의 세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관점과 상대방의 관점 차이를 인정할 줄 아는 것. 내 기대가 받아들여지기 원하는 만큼 상대방이 기대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 서로의 기준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그 기준을 존중해줄 줄 아는 것. 좋은 관계를 위한 전제조건이 아닐는지.      

    


서로를 인정하기


너는 (나처럼 안 하고) 왜 그래?
나는 네가 아니기 때문이야


가끔 누군가와 얘기를 하다 보면 굉장히 기분이 나빠질 때가 있다. 뭔가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나면 찝찝한 기분이 든다.


"됐고, 내 말이 맞아."

"알겠는데, 그거 아니라니까."

"넌 왜 그러냐?"


대화에는 맥락(Context)이 있다. 말은 표면적인 단어 그 이상의 것으로 사용된다. 누군가와 대화를 마쳤는데 기분이 나빠진다면 그 사람이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보냈기 때문일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가치관을 나에게 강요했다. 자신의 기준만으로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고 그 기준을 강요한 것이다. 


하지만 네가 너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나다. 너는 너다. 나와 너는 다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다. 

다른 성향과 다른 기준과 다른 기대로 살아가는. 다른 사람.


아이들은 ‘관점 바꾸기’를 쉽게 배운다. 선천적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남들이 어떻게 하는가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내 관점이 옳다’는 편견이 적다. 하지만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에게는 이게 쉽지만은 않다. 타인의 렌즈(관점)를 존중하기보다 타인의 삶과 스토리조차 내 렌즈로 판단하는 일이 잦다. 

‘관점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진심을 다해 노력하고 용기를 내보고 실수도 해보고 또 그 실수에 당당하게 맞설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유일한 것이 아니며, 수많은 것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中


다른 건 나쁜 일이 아니다. 그냥 당연한 일일 뿐. 각자의 기준과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일. 좋은 관계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 아닐까.


상처받지 말 것


하지만 문제는 이거다.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사람에게 역지사지를 들이미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 그 사람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역지사지를 바라는 건 (그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무례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정말 미치고 팔짝 뛰고 돌아버릴 것 같지만 그 감정을 고스란히 그 사람에게 표현할 수는 없다. 맞지 않는 사람에게 초등학생 때처럼 '너랑 절교야!'를 외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랑 절교야!'라고 외치고 싶지만, 우리에겐 그러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들이 존재한다.)


보통 안하무인으로 타인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은 자신이 내뱉은 말의 결과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열 받는 포인트는 이거다. 나 혼자 열 내는 상황이라는 점. 그 사람은 내가 상처를 받든지 말든지, 화가 나든지 말든지, 기분이 상하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길길이 날뛰는 모습에 묘한 희열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상처받으면 결국 나만 손해인 거다. 


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큰 소리로 욕하기, 맛있는 음식 먹기, 노래방에서 소리지르기 등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아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다시 울화통이 치밀기 때문. 안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음,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시나 봐요.

아, 그래요?


저 두 가지 말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내 생각과 너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구분해주는 한편, 내 감정과 기분을 보호해준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배력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 (가치관을 강요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대응법은 무관심과 무대응이다. 굳이 그 사람의 도발에 내가 넘어갈 필요는 없다. 저렇게 생각과 감정을 구분하는 순간 상대하기 싫은 누군가에게 영향받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좋아하는 풍경을 떠올리는 일. 행복해.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 하며 살기에도 쉽지 않은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인간관계. 사람을 웃게 하기도 하고 울게 하기도 하는 것. 어쨌든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싶은 만큼 타인을 존중하며 살아야지. 누군가로 인해 스트레스받을 시간에 예쁜 풍경 하나라도 더 봐야지. 재밌는 거 하나라도 더 해야지. 그래야지. 으쌰.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