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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Oct 04. 2023

당분간 2無 농사.

농사를 짓지 못하던 시기에도 

예전에 만들었던 프로필의 글귀는 그대로 두었었습니다. 




무경운, 무투입, 무관수, 무제초, 무살충, 무석유의 야생농사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일부는 당분간 지킬 수 없고 

일부는 영영 포기해야 해서 

글귀를 고쳤습니다. 




위 사진 한 장에 

당분간 혹은 영영 포기한 모든 것이 나타납니다. 


저희 밭처럼 흙 뒤집는 공사를 한 땅은 농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소위 '생 땅'이라고 해서 영양분도 없고 

비 온 후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농사를 시도해 봤었지만 

씨앗에서 올라온 싹이나 키워 심은 모종이나 

모두 얼마 못 버티고 죽어버리더라고요. 


이 땅에 유기물이 쌓여 흙이 좋아지려면 몇 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기다리기만 할 수 없어서 퇴비를 넣었습니다. 

무투입을 못 지켰는데 

앞으로 계속 넣지는 않을 것이고 비료도 안 쓸 겁니다. 


풀 자라지 말라고 덮어주는 멀칭비닐은 

사용한 적 없고 앞으로도 사용 안 할 거지만 

밭 만들고, 돌 고르고, 퇴비 섞느라 

휘발유 넣는 관리기를 사용하고 있으니 

무석유도 못 지키고, 무경운도 못 지킵니다. 



집 아래에 있는 마을 어른들 밭에 

물 줄 때나 농약 뿌릴 때 물이 없어 고생하시길래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 받는 통을 

저희 집에 하나 마련해 드렸는데 

가뭄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져서 

어른들 쓰시기도 부족하고 

저희도 같이 쓰려고 물통을 세 개로 늘렸습니다. 


지하수라면 안 쓸 텐데 흘러내리는 물이라 

오래 가물 때는  그 물을 줄 생각이니 

무관수는 영영 포기입니다. 



아직 밭을 만들고 있어서 내년까지는 일부 포기하고 

제초제와 살충제 뿌리지 않는 것만 지킬 생각입니다. 

그 이후에는 야생에 가까운 농사를 이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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