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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Feb 25. 2024

와일드후드

인간은 죽을 때까지 와일드후드

   여러 종에 걸쳐 동물의 청소년기를 살펴보면 그 기간에 겪는 어려움과 그걸 거쳐 성장한다는 보편성을 찾을 수 있다. 어떤 동물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지구상의 장소나 역사적 시기도 상관없다. 그럼에도 모든 동물이 청소년기에 마주하는 핵심적인 어려움은 동일하다. 그리고 '성숙'은 이러한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이겨내는 것으로 정의된다. 특히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시기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보편성을 우리는 '와일드후드'라고 부른다. 


   동물의 청소년기라는 용어가 어색해서 입에 붙지 않지만 청소년기가 인간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와일드후드는 기나긴 연구를 통해 동물행동의 보편성을 밝혀냈고 궁극적으로 인류를 연구하는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해 준다. 그렇게 밝혀진 안전, 지위, 성, 자립으로 설명되는 삶의 4가지 어려움은 인류를 포함한 모든 동물이 마주하는 문제로 이 시기의 경험과 쌓은 기술은 어른으로서의 삶을 결정하게 되는 기반이 된다. 이러한 경험과 기술은 개개인의 기본적인 소양, 역량으로 각인되기에 4가지 문제는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성인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보다 건전하고 효율적으로 이끌어줄 필요 또는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인류는 다른 동물보다 진화된 지능을 갖추고 있으니까.


안전: 어떻게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것인가

지위: 어떻게 사회적 지위에 적응할 것인가

성: 어떻게 성적 소통을 할 것인가

자립: 어떻게 둥지를 떠나 스스로를 책임질 것인가


   동물의 아이들도 그들의 삶에서 경험을 통해 그리고 어른들의 가르침을 통해 배우고, 스스로 익혀야 하고, 자신을 지켜야 한다. 인간세상과 마찬가지로 금수저가 있고, 흙수저도 있다고 한다. 금수저로 태어난 하이에나 메레게시 이야기는 동물세계에 대해 상당히 신선하면서 놀라움을 준다. 태어나보니 나의 부모는 하이에나 무리의 여왕이었고 흙수저 하이에나가 구해 온 신선한 먹이를 제일 먼저 먹고 가장 좋고 영양분 많은 젖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이러한 권력 구조에서 하이에나 무리는 능력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새로운 새끼가 태어나면 암컷이든 수컷이든 자동으로 어미보다 한 단계 낮은 서열이 주어지고, 무리는 스스로 자신의 서열을 하향 조정한다. 흙수저 하이에나는 먹을 게 부족하여 쓰러질지언정 메레게시는 더 빨리, 더 튼튼하게 성장하고 결국 그 무리에서 높은 지위를 유지한다. 자연에 평평한 운동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하이에나 무리뿐만 아니라 심지어 곤충 무리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동굴 안에 살기 좋은 구역과 그렇지 않은 구역이 나눠지는데 곤충의 무리에서도 특권을 가진 무리가 안전하고 좋은 장소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런 생태계에서 낮은 지위 또는 지위 하락으로 우울감을 느끼는 건 인간뿐만 아니며 조류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관찰된다고 하는데... 어쩌면 평등한 권리를 외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할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딱 와이드후드 시기의 두 아이가 있기에 읽는 내내 두 아이의 행동들이 눈앞에 오고 간다. 두 살 터울이지만 성격, 성향에 큰 차이를 보인다. 두 아이의 내면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건 불가능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어려움으로 지위와 자립에 대한 고민이 두드러져 보인다. '퍼피 라이선스'(어린 동물에게 무리 내에서 나이 많은 동물이 주는 일종의 특혜, 예를 들면 개들이 어린 강아지를 서열에서 일시적으로 제외하고 무례한 행동을 해도 눈감아주거나 너그럽게 타이르는 것)를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지만 경험을 통해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내는 속도에는 차이를 보여주니 눈감아주고 타이르는 방법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이 모습을 편견으로 오해되고 질투를 유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나가서 활발하게 뛰어다니고 아이돌과 유튜브를 즐겨보는 아이와 책과 게임을 즐기는 두 아이가 마주하는 위험의 종류도 다를 것 같다. 동물들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힘이 센지 약한지 모르고 포식자에 아무 정보 없이 덤벼들었다가 잡아 먹혀 목숨을 잃는 것과 같은 야생의 위험은 없을 것이다. 극단적이지만 뉴스에서도 종종 볼 수 사고들, 예를 들면 파도가 무서운 줄 모르고 바람이 강한 날 방파제에서 사진을 찍는 행동, 집에 틀어박혀 수년간 밖으로 나오지 않아 사회성을 잃고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리는 위험,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삶을 갉아먹는 디지털환경의 위험 등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고 촉법소년의 사건 사고를 용서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왜 사고를 치는지는 조금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겠다. 이러한 모습들을 볼 때 어른으로서 책임은 경험을 쌓기 위한 행동과 위험에 다다른 행동을 판단하고 바른 지침을 주어야 하는데 가장 즉각적인 응답은 바로 '잔소리'일 것이다.


    두 아이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적소 찾기'(키, 외모, 나이, 운동 실력, 부모의 재산 등 개인이 통제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제외하고 또는 포기하고, 청소년기 중반에 접어들어 자신의 능력이나 자질이 가치 있게 평가되는 집단을 찾는 과정. 이로 인해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고 하는데,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르거나, 친구들 사이에 무엇을 잘한다고 인정받음으로써 그 무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고 위치를 잡아가는 행동)를 하고 있다는 것도 보인다. 지위가 낮은 청소년기 동물은 잘 놀라고 주변을 경계하며 늘 신경이 곤두서 있고 내세울 지위가 없으니 친구 사귀기도 어렵다고 한다. 친구가 없으면 지위를 유지하기도 힘들고 우울감에 빠져들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어쩌면 그 삶을 경험한 어른이 할 일은 공부해라, 바르게 행동해라가 아니라 너의 지위를 높이라는 조언을 해주는 게 동물적 육감을 자극하는 가장 지능적인 대화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간은 흐르고 경험과 학습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자녀가 떠날 시기가 다가오면 우리는 현재 자녀의 준비 상태를 점검한다. 앞으로 자녀가 혼자서 마주할 어려움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불안을 느낀다. 이미 가르쳤어야 하는 기술을 아직 자녀가 습득하지 못했을 때 걱정은 더욱더 깊어진다. 그 걱정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확실하다면 우리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가르치지 못한 기술을 스스로 습득하는 방법이 마지막으로 남은 기술일 것이다. 부모가 살았던 세상은 지금 우리의 자녀들이 사는 세상과 다르다. 휴대폰과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지금의 어른들이 쌓은 경험이 지금 아이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사냥하는 방법과 포식자를 피하는 방법이 계속해서 달라진다면 그들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결국 시간이 흘렀다. 자녀들은 하나 둘 둥지를 떠날 것이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에 험난한 세상으로. 하지만 복잡한 인간계를 비춰보면 위험은 청소년기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물리적으로 위험한 장난은 줄어들겠지만 주식, 코인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한강으로 뛰어드는 사례, 보이스 피싱, 전세 사기 등 더 이상 누구에게 배우기도 어렵고 퍼피 라인선스도 없는 성인들 역시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독서 등을 통한 간접 경험, 끊임없는 공부가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줄 유일한 방법일 듯 하지만 점점 난이도 높아지는 지적 위험 앞에서 끝없는 공부밖에 없는, 그렇게 해도 완벽히 피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현실에 질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대문사진: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 사는 점박이 하이에나들. (중앙일보 202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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